지난 2월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터진 중동 전쟁이 발발 2개월이 됐는데도 전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쟁 당사국들은 물론 세계의 모든 나라가 엄청난 충격파에 휩싸인 가운데, 뉴질랜드 역시 전쟁 발발 직전까지 조금씩 되살아났던 경제가 다시 외부 충격으로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뉴질랜드는, 유가 급등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의 가격 상승은 가계 부담은 물론 기업 비용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다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가신용등급의 조정까지 겹치면서 정부의 경제 대응 능력도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급등한 연료값, 주유소 가격에 빠르게 반영>
이란 사태 이후 국제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 US달러 선을 진작에 넘어섰고, 여기에 국내 주유소가 공급하는 가격도 빠르게 반응했다.
4월 17일 나온 통계국 자료를 보면, 지난 3월까지 연간 휘발유 가격은 18.6%, 디젤(경유)은 이보다 배 이상 높은 42.6%의 상승률을 보였다.
이와 같은 급등 추세는 3월에 집중됐는데, 아래 도표를 보면 지난해 12월과 올해 1, 2월에 걸쳐 떨어지면서 2월 26일에는 1,377을 기록했던 ‘휘발유 가격 지수’가, 3월 26일에는 1,633으로 급변하면서 단기간에 얼마나 빨리 가격이 올랐는지 잘 나타나 있다.
4월 24일(금) 현재 주유소 가격 비교 앱인 ‘Gaspy’가 발표한 수치를 보면, 당일 기준으로 옥탄가 91 보통휘발유 평균 가격은 1리터당 3.31달러, 그리고 경유는 1리터당 3.47달러이다.
그나마 휘발유는 28일 전보다 2.53%인 8.6센트가 떨어졌지만, 운송과 농업 부문을 비롯해 산업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유는 같은 기간에 또다시 2.58%인 8.67센트가 오른 상황이다.
뉴질랜드는 국내에 하나뿐인 정유공장을 폐쇄했으며, 이번 사태 이전까지도 정제한 기름을 주로 싱가포르와 한국에서 수입해 왔다.
그러다 보니 국제 유가 변동이 소비자 가격에 거의 실시간으로 반영되는데, 특히 이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급등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산업 구조적인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가뜩이나 남북섬으로 분리된 지역적 특성으로 연료 비용의 부담이 큰 물류업계는, 경유값 상승으로 운송비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는 곧 다양한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가격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곧바로 인플레이션과 맞물리고 있다.
정부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 US달러 수준에서 유지될 경우 올해 물가 상승률이 다시 3% 후반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유가가 180 US달러까지 치솟는 최악의 상황에는 인플레이션이 7%대를 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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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발유 가격지수 변동(기간: 2016.3~2026.3)
<정부 “연료 재고와 공급은 여전히 안정적”>
한편, 정부는 연료 가격 상승과 별도로 공급 부족 우려를 차단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기업혁신고용부(Ministry of Business, Innovation and Employment, MBIE)’는 4월 20일 발표한 자료에서, 국내 연료 재고량이 여전히 정상 범위 안에 있다고 밝혔다.
4월 19일(일) 밤 11시 59분 기준으로 집계한 전체 연료 재고는 다음과 같다.
• 휘발유: 51.2일분
• 디젤: 41.6일분
• 항공유: 47.4일분
이와 같은 재고는 4월 15일(수) 밤 기준의 휘발유 54.5일과 경유 44.8일, 그리고 항공유 51.4일보다는 감소했다.
정부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재고량 중에는 국내에 이미 도착해 탱크에 저장한 재고뿐 아니라, 뉴질랜드의 ‘배타적 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EEZ)’ 안과 밖에서 현재 국내로 들어오는 중인 선박에 담긴 물량까지 모두 포함된다.
EEZ은 영해(12해리)의 바깥 경계부터 200해리(약 370km)까지 뻗어있는데, 섬나라인 뉴질랜드의 EEZ은 국토 면적의 15배에 달한다.
현재 재고량을 이 기준에 의해 구체적으로 나눈 수치와 운송 중인 선박 숫자, 도착 일정은 아래 도표와 같다.
정부는 이들 외에도 싱가포르에서 들어올 예정인 선박에 기름을 싣는 중이라면서, 현재까지 공급 차질 조짐은 없으며 국민이 기름 사재기에 나설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2025년부터 최소 비축 의무를 강화해 수입업체가 일정 수준 이상의 재고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으며, 향후 경유 비축량을 더 늘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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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료 재고 현황(4월 15일 밤 11시 59분 기준)
<다시 상승 압력에 직면한 인플레이션>
4월 21일 통계국이 발표한 2026년 3월까지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연간 3.1% 상승률을 보였다.
이는 직전인 2025년 12월 분기와 같은 수준의 상승률이지만, 여전히 중앙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 범위인 1~3%를 벗어난 수치이다.
3월 분기까지 이와 같은 연간 물가 오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연간 12.5% 오른 전기요금과 함께 8.8% 오른 재산세를 비롯한 지방세와 공과금이었다.
하지만 1월과 2월에 내림세를 보였던 휘발유를 비롯한 연료비가 3월부터 급격히 오르면서, 지난 3월 분기까지는 휘발유가 연간 1.1%만 오르는 등 전체 물가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앞으로는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연료비는 모든 분야의 물가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그 파급력도 훨씬 큰 만큼, 앞으로 물가 상승세에서 핵심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이란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6월 분기부터 연료비는 물론 운송비와 식품 가격 상승이 본격적으로 물가에 반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웨스트팩을 비롯한 주요 은행은 올해 중반 인플레이션이 다시 4% 안팎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하며, 이는 당연히 중앙은행이 ‘기준금리(OCR)’를 인하하려는 조치를 늦출 가능성이 아주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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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응안 발표한 니콜라 윌리스 재무부 장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니콜라 윌리스 재무부 장관은 4월 22일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중동의 석유 위기가 혼란은 있겠지만 국내 경제 회복을 ‘지연시킬 뿐 탈선시키지는 않을 것(only delay, not derail)’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전쟁 발발 이후 유가 변동성을 반영해 다음 달 예산안 발표에 앞서 경제 전망을 재검토한다면서, 3가지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이는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 대한 것일 뿐, 재무부가 실제로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의 불안정한 휴전이 유지되고 있지만 여전히 핵심 해상 통로가 폐쇄된 상태로, 해외 에너지 시장의 전반적인 혼란은 훨씬 더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나리오에 쓰인 수치들은, 유가가 배럴당 110 US달러일 때의 단기적 분쟁부터 180 US달러까지 치솟을 때의 심각하고 장기적인 차질까지 다양했는데, 윌리스 장관은 가장 낮은 시나리오가 발생할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말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3.9%에 달하면서 경제 성장률은 2%로 둔화하고, 실업률은 5.3%까지 치솟는다.
한편, 최악의 시나리오는 유가가 현재 수준의 거의 2배로 상승하는 경우로, 2027년 중반까지 인플레이션은 7.4%까지, 실업률은 6.6%까지 급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윌리스 장관은 지금은 불확실성이 만연하고 있으며 정부는 최선을 바라면서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악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면서, 지금 국민에게 그러한 맥락을 제시하는 게 아주 중요하며, 실제 가능성보다 더 나쁜 시나리오를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무부의 중요한 조언은 “경제 회복은 지연됐지만 탈선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며, 선물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유가가 배럴당 80 UD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사태를 단순한 유가 충격이 아니라 뉴질랜드 경제 구조를 다시 점검해야 하는 계기로 보면서, 향후 몇 주 안에 2026년도 예산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재정 건전성 유지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재정적자 확대를 억제해 국가 재정 신뢰를 유지한다는 방침인데, 윌리스 장관은 추가적인 대규모 경기부양보다는 예산 통제를 우선하겠다고 밝혔다.
윌리스 장관은, 많은 국민이 지금 우리가 돈을 펑펑 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많은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도 덜어주고 싶지만, 국가가 당장 그렇게 하는 것은 책임감 있는 행동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지출과 차입을 늘리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두 번째는 연료 공급망 관리로, 정부는 MBIE와 업계 간 비상 대응 체계를 강화해 입항 일정과 재고 흐름을 실시간 점검하고, 공급 문제가 발생하면 우선순위 배분도 검토한다고 밝혔다.
세 번째는 취약계층 보호로, 연료와 식료품비 상승으로 타격받는 저소득층에 대해 기존 생활보조금 조정과 추가 지원 가능성을 검토하는 한편, 유류세 인하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네 번째는 경제 전망 재조정인데, 예산안 발표 때 성장률과 실업률, 물가 전망을 모두 다시 수정해 보다 현실적인 재정계획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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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신용등급 변동과 금리 전망은?>
한편, 국제 신용평가 기관들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뉴질랜드의 재정 여건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Moody’s)’는 뉴질랜드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로 유지했지만, 전망은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낮췄다.
무디스는 긴축 통화 정책, 부채 상환 부담 증가, 성장 둔화는 물론 연료비 상승, 인플레이션 압력과 공공 및 전기요금 상승 등이 경제에 압력을 줄 것이라면서, 정부 부채가 2026년 6월까지 GDP의 53.9%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무디스의 ‘부정적 전망’은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향후 등급 하향 조정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경고를 의미한다.
이에 앞서 지난달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 역시 뉴질랜드의 AA+ 등급은 유지했지만,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는데, 피치는 정부 부채 감소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점이 위험 요소라고 평가했다.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실제로 일어나면 정부 국채 금리가 오르고, 이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과 기업 대출 금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금융시장에서는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현재 정부의 전망과 이에 맞춘 기본 대응 시나리오는, 경제 회복이 예상보다는 늦어지겠지만 경기 침체로 다시 빠지지는 않는다는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뉴질랜드 경제는 생활비 상승과 금리 인하 지연, 그리고 이에 따른 소비 둔화 등의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금리를 보자면, 4월 초에 ‘기준금리(OCR)’를 2.25%로 동결한 중앙은행은, 아직 경기 회복이 약하고 실업률이 높아 즉각 금리를 올리기보다는, 유가 상승이 일시적인지 지속적인지를 먼저 지켜보겠다는 자세를 보이면서, 동시에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지속하면 ‘단호한 대응이 준비돼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올해 중반 물가가 오르고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금리 인상에 나설 거라는 해석인데, 결국 은행과 경제 전문기관에 따라 시기와 인상 폭에서 차이가 있지만, 빠르면 올해 7월부터 늦어도 연말을 거쳐 내년까지는 적어도 0.25%, 많으면 0.75%까지의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미 뉴질랜드 국채 2년물 금리가 상승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가능성이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달 들어 대부분의 시중은행들도 이를 반영해 이미 금리를 잇달아 인상했다.
한편,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에서 뉴질랜드가, 중동 사태 자체보다는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경제 구조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에너지와 운송 비용이 많이 드는 섬나라 구조상 국제 지정학적 갈등이 반복될 때마다 같은 충격파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이처럼 이번 이란 사태는 단순한 해외 분쟁이 아니라 뉴질랜드 경제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 시험대가 됐으며, 결국 대외적인 상황 변화와 함께 앞으로 몇 달간 정부의 대응이 경제 안정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