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 “어디까지가 ‘생활 흔적’인가?”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 “어디까지가 ‘생활 흔적’인가?”

0 개 774 서현

이달 초 한 언론에서는 임대주택을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불거진 분쟁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집을 빌려 사는 인구가 늘어나는 가운데 이에 따른 분쟁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면서, 이미 예전부터 상당한 사회적 이슈로 제기됐던 문제가 최근 들어 더 주목받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임대 부동산 현황과 함께 어떤 종류의 분쟁이 많이 발생하고, 또한 문제가 나오면 어떻게 처리되는지, 그리고 분쟁 대처 요령 등을 관련 통계와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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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생긴 작은 자국으로 시작한 갈등>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갈등은 종종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하는데, 벽에 난 작은 자국이 ‘손상’인가, 아니면 ‘생활 흔적’인가를 두고 실제 법정까지 간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언론이 소개한 사건 중에는 집 내부 벽에 난 ‘아주 작고 움푹한 자국 또는 검은 얼룩(very small dent or black mark)’을 두고 벌어진 분쟁이 포함됐다. 


집주인은 세입자가 벽을 손상했다고 주장하며 임대 보증금에서 수리비를 공제하려 했지만, 분쟁을 심리한 ‘임대차 재판소’는 이를 ‘일반적인 생활 흔적(fair wear and tear)’으로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 임대차 재판소 심판관은 ‘아주 작은 움푹한 자국이나 검은 자국은 정상적인 거주 과정에서 생길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이와는 반대로 세입자가 음료 가루인 ‘라로(Raro)’를 카펫에 쏟은 사건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재판소는 카펫 얼룩은 단순한 사용 흔적이 아니라면서, ‘고의 또는 부주의로 발생한 손상( intentional or careless damage)’은 세입자가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한편, 또 다른 사건에서는 집주인이 ‘걸레(mop)’와 ‘양동이(bucket)’가 망가졌다면서 단돈 28.82달러라는 교체 비용을 요구했지만, 결국 주인이 물건이 망가진 게 일반적인 마모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해 청구가 기각되기도 했다.


이처럼 뉴질랜드에서의 주택 임대 분쟁은 다양한 원인으로 불거지지만, 실제로는 일상적인 ‘생활 흔적’과 실제 ‘손상(damage)’의 경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에서 벌어진 임대 분쟁 사례 중 첫 번째로 많은 것은 카펫과 벽의 손상 문제이다. 


벽에 작은 못 구멍이 생기거나 카펫이 낡으면 주인이 수리비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지만 재판소는 세입자가 장기간 거주했다면 일정 정도의 마모는 집주인이 감수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특히 세입자가 10년 이상이나 장기간 거주했다면 벽 페인트나 카펫 교체는 일반적인 사용 결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시설물 사용 방식의 문제로 주방의 오븐을 요리가 아닌 난방기기로 사용하다가 고장이 난 경우가 있었는데, 재판소는 이를 정상적인 사용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결국 세입자가 책임지게 됐다. 


세 번째는 집의 상태를 관리하는 문제인데, 이 경우 집주인이 주택을 임대하기에 적절한 상태로 유지하지 않아 처벌받은 사례도 꽤 된다. 


이런 경우는 특히 보딩하우스처럼 주로 학생이 대상인 임대 부동산에서 자주 발생하는데, 집주인이 주택 상태를 장기간 방치한 책임으로 수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사례도 있다. 


이처럼 뉴질랜드의 임대 분쟁 처리는, 단순히 세입자의 책임뿐만 아니라 집주인의 관리 책임도 함께 엄격하게 묻는 상호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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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해 ‘임대차 재판소’ 신청만 3만 여건> 


뉴질랜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주택 소유율이 점차 낮아지면서 임대 주택 거주자의 비중이 커지는 나라이다. 


통계국(Stats NZ)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으로 자가 소유 가구는 약 117만이었으며 임대 주택 거주 가구는 약 60만 가구로, 전체 가구 중 1/3 정도가 임대 주택에서 사는데 1991년에는 이 비율이 23%였다. 


이를 인구 숫자로 보면 2023년 현재 520만 명의 총인구 중 153만 명, 즉 전체 인구의 1/3이 임대 주택에 살며, 특히 젊은 층과 이민자, 대도시 거주자일수록 그 비율이 높다. 


임대 주택 중 85%는 개인이 소유하며, ‘공공주택(Kainga Ora)’은 11.2%,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소유는 1.7%에 불과하고 커뮤니티 주택이 1.5%, 그리고 마오리 토지 재단이 0.3%로 국내 임대 부동산 시장이 개인 투자자 중심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임대 주택의 절반 가까이가 3채 이하 주택을 소유한 개인이 갖고 있으며, 국내에 있는 주택의 31% 정도가 임대 주택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집값이 오르면서 임대 가구주가 임대를 사는 기간도 점차 길어지는 추세인데, 임대 가구는 평균적으로 개인 소득의 40%나 임대료로 지출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임대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분쟁도 따라 느는 추세인데, 임대차 분쟁을 심리하는 ‘임대차 재판소(Tenancy Tribunal)’에는 2024년 한 해 동안 2만 9,300건이 넘는 사건이 접수되면서 그 전해보다 약 14%가 증가했다. 


한편, 통계를 보면 임대 분쟁의 대부분은 집주인이 제기하는데, 전체 사건 중 약 84%가 집주인 또는 부동산 관리인이 신청했고 세입자 신청은 16%에 불과했다. 


임대차 재판소 통계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임대 분쟁의 순위별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1. 임대료 체납: 전체 사건의 약 66%가 임대료 문제 

2. 보증금(bons) 반환: 계약 종료 후 보증금 공제 문제

3. 주택 손상 여부: 손상인지 생활 흔적인지에 대한 다툼

4. 집주인의 관리 의무: 난방 단열 등 건강한 주택 기준 준수 여부 

5. 임대차 계약 위반: 반려동물이나 거주 인원수, 시설 사용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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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와 의무에 대한 세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 


뉴질랜드의 주택 임대는 ‘주거임대차법(Residential Tenancies Act 1986)’에 의해 규제를 받는데, 이 법은 크게 다음과 같은 원칙이 있다. 


1) 생활 흔적과 손상의 구분: ‘생활 흔적(fair wear and tear)’은 정상적인 사용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마모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카펫이 닳거나 수도꼭지가 오래돼 고장 나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 세입자는 책임지지 않는다.


2) 부주의 또는 고의 손상: 세입자가 부주의하거나 고의로 손상하면 배상 책임이 발생한다.


3) 배상 책임의 한도: 세입자의 부주의로 발생한 손상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최대 4주치 임대료 또는 보험 자기부담금 중 더 적은 금액까지만 책임이 있다.


4) 주택 상태 유지 의무: 집주인은 주택을 거주가 가능한 상태로 유지해야 하며, 난방과 환기, 단열 기준 등을 규정한 ‘건강한 주택 기준(Healthy Homes Standards)’을 지켜야 한다.


한편, 정부는 임대 분쟁이 생겼을 때 다음과 같은 절차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1) 당사자 간 협의


대부분의 분쟁은 집주인과 세입자가 직접 대화하거나 이메일 등으로 협의해 해결하도록 권장한다. 이때 입주 당시의 상태 기록이나 사진과 영상, 수리 영수증이나 임대 계약서 등이 중요한 증거가 된다.


2) ‘Tenancy Services’ 상담


임대차 재판소로 가기 전에 뉴질랜드 정부 기관인 ‘임대 서비스(Tenancy Services)’를 거치도록 권장하는데, 여기에서는 임대차 법률 설명이나 분쟁 해결 절차와 권리 등을 무료로 상담하고 안내한다.


3) 임대차 재판소 신청


당사자 협의와 임대 서비스를 통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임대차 재판소(Tenancy Tribunal)’에 ‘중재(mediation)’를 신청할 수 있는데, 양측이 합의하면 분쟁은 이 단계에서 종료하며 실제로 양측이 중재에 모두 참석하면 약 90%가 합의로 종결된다. 


4) 최종 합의에 실패하면 임대차 재판소가 사건을 심리하는데, 심판관이 양측의 증거를 검토해 법적 결정을 내리며, 임대차 재판소는 법원과 마찬가지로 법적 강제력을 가진 ‘명령(order)’을 내린다. 


한편, 임대차 재판소 심리는 전국의 주요 지방법원(District Court)에서 열리며 실제 참석도 하지만 요즘은 전화나 온라인 화상 회의로 더 자주 열리는데, 변호사 없이 직접 의견을 변호할 수 있고 절차가 일반 법원보다 덜 형식적이다. 


또한 상대방이 먼저 신청했더라도 본인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교차 신청(Cross-application)’도 가능하다. 


<분쟁 대비한 집주인의 준비와 세입자의 권리> 


먼저 집주인 입장에서 분쟁까지 겪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1. 입주 전 집 상태를 사진과 영상, 문서로 상세히 기록해 둔다. 

2. 법적으로 허용한 범위 내에서 정기적으로 집 상태를 점검한다.

3. 주택 보험과 임대 보험을 통해 손실 위험을 줄인다.

4. 보증금(bond)을 정부 기관에 등록하고 임의 공제하지 않는다. 


한편, 세입자 역시 자신의 권리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1. 생활 흔적에 대한 책임은 없으며 정상적 사용으로 생긴 마모는 세입자가 부담하지 않는다.

2. 집이 안전하지 않거나 시설이 고장 나면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할 수 있다.

3. 긴급 상황에서 집주인이 대응하지 않으면 세입자가 직접 수리 후 비용을 청구할 수도 있다.

4. 부당한 보증금 공제나 주택 관리 문제는 임대차 재판소에 제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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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평소 양측의 생산적 대화가 중요> 


주택 임대차 분쟁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 대부분 큰 문제가 아니라 벽의 작은 자국이나 카펫 얼룩, 못 구멍과 같은 사소한 문제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결국 “생활 흔적인가 또는 손상인가?”라는 감정적인 논쟁 끝에 때로는 법적 절차까지 밟아야 하는 일로 커지고 만다. 


소득 수준에 비해 갈수록 집값이 올라가고 임대 시장 규모도 커지는 뉴질랜드의 현실에서 앞으로도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갈등은 계속 늘어날 게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부동산 기관의 한 관계자는, 합리적인 게 무엇인지를 판단할 때 사람마다 그에 대한 해석이 각각 다르고 안타깝게도 명확한 기준 역시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분쟁 심리 시 집에 거주하는 사람 수, 임대 기간, 세입자가 처음 입주했을 때의 상태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면서, 합의까지 도달하려면 무엇보다도 모든 당사자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집주인이나 세입자들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눠 본 경험을 되돌아보면, 집주인으로서는 세입자가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세심하게 집을 관리해 주기를 기대하는 게 당연하다면서, 솔직히 우리가 렌터카를 빌릴 때 차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 알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들을 꼬치꼬치 따지기보다는 세입자와 집주인이 상식적인 기준에서 양측 모두 실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갈등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 방법은 계약 조건부터 우선 명확히 하고, 입주 전 상태를 사진이나 영상 기록 등으로 남기면서,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두 주체가 서로의 책임과 권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평소에도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한데, 이는 결국 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는 일을 피하는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분쟁이 터졌을 때는 양 측이 그동안 쌓인 감정을 자제하고 법적 절차를 차분히 활용하면서 대응하는 것 역시 모두가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 남섬지국장 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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