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평화위원회’ 참여 거절한 뉴질랜드

미국의 ‘평화위원회’ 참여 거절한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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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가 미국이 제안한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참여를 거절했다. 크리스토퍼 럭슨(Christopher Luxon) 총리는 지난달 30일 짧은 성명을 통해 “뉴질랜드 정부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평화위원회 초대를 검토했고 현재와 같은 형태에서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평화위원회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휴전 후 평화 정착과 재건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해 최근 출범시킨 기구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뉴질랜드가 추진하고 있는 외교정책에 대해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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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위원회 “현재 형태”로는 참여 않겠다
 

럭슨 총리는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뉴질랜드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위원회 초대를 고려한 결과 현재 형태로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발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던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있는 이 기구는 본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휴전 이후 가자 지구의 평화를 복원하는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으나, 이후 다른 국제 분쟁을 다루는 기구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평화위원회에는 10억 미국달러의 회원비와 러시아 초대, 그리고 유엔의 역할과 겹칠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의 크리스 힙킨스(Chris Hipkins) 대표는 “특히 러시아가 회원으로 포함될 경우 뉴질랜드가 이 기구에 참여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윈스턴 피터스(Winston Peters) 외교부 장관은 럭슨 총리의 입장을 되풀이하며, 뉴질랜드는 평화위원회의 진행 상황을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터스 장관은 “뉴질랜드는 평화위원회의 현재 형태로는 참여하지 않지만 향후 진행 상황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며 “뉴질랜드는 가자 지구에서 평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미국의 지도력을 인정하며 해당 지역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터스 장관은 “평화위원회가 가자 지구에서 맡은 역할에 대해 유엔 안보리 결의 2803에 따라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며 “여러 국가가 가자 지구와 관련해 평화위원회 역할에 기여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뉴질랜드가 여기에 추가로 의미 있는 가치를 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뉴질랜드는 유엔의 주요 창립 회원국이자 오랜 지지국”이라며 “평화위원회 활동은 유엔 헌장과 상호 보완적이고 일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위원회는 새로운 기구인 만큼, 현재와 향후 역할과 관련된 여러 사안에 대한 명확성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뉴질랜드는 평화위원회 설립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기존 국제기구인 유엔을 계속 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피터스 장관은 럭슨 총리, 데이비드 시모어(David Seymour) 부총리와 협의해서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덧붙였다.


평화위원회 명확성 필요, 유엔 지지 입장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해 최근 출범한 평화위원회는 애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재건과 평화 정책을 위해 소수의 세계 지도자들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총회에서 평화위원회 구상을 공개했다.


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아랍에미리트(UAE)•아르헨티나 등 19개국이 창립 헌장에 서명한 평화위원회는 지난달 22일 공식 출범했다.


평화위원회는 지난해 9월 미국이 발표한 가자지구 평화 구상 20개항에서 처음 거론됐다. 당초 과도기 가자 지구를 관리하는 임시 국제기구 성격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야망은 이를 전 세계적인 분쟁의 중재 기구로 확장시키며, 국제 평화와 안보를 책임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능가하려는 미묘한 시도로 보여지면서 세계 주요 국가들의 반대로 인해 예상치 못한 역효과를 낳고 있다. 


일각에서는 종신 의장을 맡은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위원회로 유엔을 대체하려 한다고 의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기자회견에서 “평화위원회가 유엔을 대체하기를 원하나”라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답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평화위원회 헌장에 “분쟁으로 영향이나 위협받는 지역에 지속적 평화를 확보한다”는 폭넓은 역할이 적혀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서명식에서 유엔과 협력하겠다면서도 “가자 지구에서 성공하면 다른 사안으로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평화위원회 헌장에는 임기와 관련한 조항이 없으며 “도널드 J. 트럼프가 평화위원회 초대 의장으로 재직한다”고만 돼 있어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종신직을 보장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위원회 활동과 회원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도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호주 공영 ABC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약 60개국이 초대를 받은 가운데 25개국 이상이 수락했다.


현재까지 평화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국가는 프랑스, 노르웨이, 크로아티아 등이다.


미국의 핵심 우방국인 영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 중인 러시아도 평화위원회에 초대받은 사실을 지적하며 가입을 유보한 상태이고 한국•일본•인도•호주 등은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캐나다의 경우, 마크 카니(Mark Carney) 총리가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 “캐나다는 미국 덕분에 사는 게 아니라, 캐나다인이기 때문에 번영한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이후 초대가 철회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위원회의 역할을 확대하고, 이 기구가 “세계적 분쟁 해결을 위한 대담한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자칭하는 발언은 주요 강국들의 반발을 일으켰고, 유엔 관계자들은 이를 일축했다. 


안토니오 구테레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안전보장이사회만이 모든 국가에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다른 어떤 기구나 연합체도 모든 회원국이 평화와 안보에 관한 결정을 따르도록 법적으로 요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 국가는 유엔의 강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중국의 푸 총(Fu Cong) 유엔 대사는 지난달 26일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어떤 한 국가도 자신의 힘을 근거로 조건을 지시해서는 안 되며, 승자 독식 접근법은 용납될 수 없다”며 “안전보장이사회의 지위와 역할은 대체 불가능하고 유엔을 우회하여 대체 기구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평화위원회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했다. 

 

뉴질랜드의 다자주의적 접근과 충돌하는 트럼프 정책


오타고 대학의 로버트 패트먼(Robert Patman) 국제관계학 교수는 뉴질랜드가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위원회에 참여했다면 위선적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패트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 기구를 이끌 신뢰성과 자격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평화를 위한 위원회를 이끌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두 민주주의 동맹국의 영토를 위협한 전력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뉴질랜드와 같은 작은 국가에게 많은 도전 과제를 안겨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정부는 특히 다자주의와 국제 협력보다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파리 기후 협정 탈퇴, 이란 핵협정 탈퇴, 세계보건기구(WHO) 대한 불신 등을 표명하는 등 국제 기구나 다자간 협의체에서의 역할을 약화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뉴질랜드와 같은 국제적인 협력이 중요한 국가의 외교적 비전과 충돌했다.


뉴질랜드는 기후변화, 자유무역, 인권과 같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다자주의적 접근을 강조해왔다.


지난달 3일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여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를 체포한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뉴질랜드 외교부는 국제법을 지지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뉴질랜드는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적인 접근에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니콜라 윌리스(Nicola Willis) 재무장관은 지난해 뉴질랜드 경제가 예상보다 부진했던 원인을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정책에 돌렸다.


미국은 지난해 8월부터 뉴질랜드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10%에서 15%로 상향 조정했다.


이번 뉴질랜드 정부의 평화위원회 참여 거절 결정은 뉴질랜드가 중립적이고 다자적인 접근을 고수하며 국제적인 평화와 안보에 대한 역할을 더욱 강화하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중국, 인도, 유럽연합 등 다른 주요 국가들과의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파이브 아이즈’도 중대 위기 

 

뉴질랜드를 포함해 미국•영국•캐나다•호주 등 영미권 5국의 안보 동맹체로 전후 자유 진영의 눈과 귀 역할을 해온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도 중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는 파이브 아이즈의 근간인 미국과 영국의 비밀 정보 교류 협정이 체결된 지 80주년 되는 해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이고 고립주의적이며 모욕적인 대외 정책에 영국과 캐나다 정상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며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파이브 아이즈의 원년 멤버이자 중심 축인 미국과 영국의 갈등은 올해 들어 걷잡을 수 없이 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2021년)에서 함께 싸웠던 나토군을 언급하며 “우리는 그들이 필요했던 적이 없다. 그들은 전선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457명의 전사자를 낸 영국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영국 총리는 즉각 “모욕적이고 끔찍하다”며 반발했다.


파장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영국군을 사랑한다. 그들은 위대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또 다른 파이브 아이즈 멤버이자 미국의 이웃 캐나다도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13~17일 카니 캐나다 총리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환대를 받으며 중국과 전방위적 경제 협력 확대 방침을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를 겨냥한 적대적 조치를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니 총리를 미국의 ‘주지사’로 지칭하며 “카니 주지사가 캐나다를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 하역항으로 만든다면 모든 제품에 즉각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캐나다를 자국의 51번째 주로 간주한다는 특유의 비하 표현을 되풀이한 것이다. 


동시에 불거진 ‘미국•영국’, ‘미국•캐나다’ 간 갈등으로 파이브 아이즈가 결성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모습이다. 


파이브 아이즈는 과거에도 회원국 간 이견이 표출된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갈등이 표면화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한때 미 정치권에서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과 일본 등 다른 자유 진영 국가들을 파이브 아이즈에 참여시키는 방안이 수차례 거론됐지만 흐지부지됐다. 


그런 혈맹이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1년 만에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으로서 정보 공유와 방위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독립적이고 균형 잡힌 외교 정책을 지향하려는 경향이 있다. 


중국과의 관계나 개인정보 보호 등과 같은 이슈에서 뉴질랜드는 때때로 다른 회원국들과 상반된 입장을 보이기도 하며 파이브 아이즈의 역할과 범위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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