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에 외딴 산지로 혼자 트레킹을 떠났다가 실종됐던 60대 남성이 19일 만에 기적적으로 발견되는 드라마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이 구조 작전을 포기하고 나흘 만에 무사히 발견됐던 그의 이야기는, 평소 등산 애호가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외지고 험악한 지형이 널린 뉴질랜드에서 안전하게 야외활동을 즐기려면 어떤 대비가 필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줬다.
이번 사건과 그 이전에 발생했던 유사한 사례를 되짚어 보면서, 경찰과 산악 안전 단체에서 산을 찾는 이들에게 재차 당부하는 내용을 함께 소개한다.
▲ 실종 19일 만에 무사히 발견된 그레이엄 가넷
<목숨을 건 사투가 시작됐다>
2025년 12월 26일, 그레이엄 가넷(Graham Garnett, 66)은 카후랑기(Kahurangi)국립공원의 배턴/엘리스(Baton/Ellis)강 일대로 혼자 트레킹을 떠났다.
그런데 평소에도 산행을 즐기던 경험자였지만 시야를 가리는 짙은 구름과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가 그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12월 30일까지 귀가해 가족과 연말을 보내려던 계획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단 한 번의 실수로 깨지고 그는 결국 생사의 갈림길에 빠지는 위기에 봉착했다.
당초 목표했던 루트가 아닌 고도와 방향이 다른 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서 그는 어떤 구조물이나 표지도 없는 울창한 숲과 계곡의 미로 속에서 헤매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식량이 떨어진 그는 계곡물을 마시고 덩굴과 열매로 연명하면서도 걷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밤에는 돌과 나무로 임시 피난처를 만들고 체온 유지를 위해 불을 피우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신이 지친 가운데도 그는 끊임없이 물소리와 산세, 지나온 루트를 기억하려 애썼지만, 빽빽한 숲과 계곡은 방향 감각을 무너뜨리면서 그를 점점 더 깊은 밀림으로 빠져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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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험난한 지형을 수색 중인 지상 수색구조팀
<대규모 수색 작전도 물거품, 희망과 절망의 교차>
귀가 예정 날짜인 12월 30일까지도 그가 돌아오지 않자 가족은 실종 신고를 했고, 경찰은 곧바로 본격적인 수색 작전에 돌입했다.
수색에는 협곡 구조 전문가를 포함한 ‘지상수색구조팀(Land Search and Rescue, LandSAR)’과 함께 공군의 NH90을 비롯한 5대의 헬리콥터가 동원돼 그가 지나갔을 법한 계곡과 능선을 촬영하는 등 공중과 지상에서 흔적을 뒤쫓았다.
6개나 되는 지상 수색팀은 윌킨슨(Wilkinson) 트랙과 배턴 새들(Baton Saddle), 화레파파/아서스 산맥(Wharepapa/Arthur Range)과 같은 주요 루트와 그 주변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하지만 수색 대상 지역 대부분이 험준한 암벽, 깊은 계곡, 우거진 숲으로 이뤄져 레이더 탐지 장비와 드론 등 첨단 장비를 동원했음에도 어려움을 겪는 등 수색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민간 자원봉사자까지 수색에 대거 참여했지만 아무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결국 경찰은 2026년 1월 15일에 공식적으로 대규모 수색은 일단 중단한다고 발표해 가족이 충격을 받은 가운데 함께 수색에 나섰던 이들도 허탈한 상황이 됐다.
이후에도 일부 수색팀은 실종자가 갔던 지역을 계속 수색했는데, 하지만 발견 뒤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가넷은 집중적으로 수색이 이뤄진 지역은 이미 벗어나 서쪽의 다른 지역으로 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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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너스 산장(Venus Hut)
<외딴 산장에서의 극적인 만남>
그런데 대규모 수색이 중단되고 딱 나흘이 지난 1월 18일 일요일 오후 2시 30분경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는데, 이 날은 실종 신고를 한 지 19일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해충 제거 작업 전에 자연보존부(DOC)를 위해 표지판 설치 작업에 나섰던 웨스트 코스트 시청 직원과 헬기 조종사가 비너스 산장(Venus Hut)에서 뜻밖에도 실종자를 만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산장은 그가 애초 트레킹을 하던 지역에서 서쪽으로 상당히 벗어난 곳에 있는데, 레슬리-카라메아(Leslie-Karamea) 트랙의 중간쯤에 있는 산장은 워낙 외딴곳이어서 평소 찾는 이도 거의 없다.
이 지역을 잘 아는 한 등산가는, 트랙의 시작점에서 끝까지 가려면 8~9일 걸리지만 지형이 험하고 관리가 잘 안돼 사용 빈도도 높지 않아 체력이 어느 정도 돼야 하고 적절한 장비도 갖춰야만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인근으로 차로 접근하는 도로가 지난해 중반에 홍수로 폐쇄돼 찾는 사람이 더 적어져 여름에도 9일간 트레킹하면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운이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배턴 밸리에서 비너스 산장까지 걸어가려면 최대 6일이 걸릴 수 있으며, 트랙을 보면 해발 1,300m에서 몇 km만 내려서도 300m나 고도가 떨어지는 등 가파르고 험준하다면서, 가넷이 3주 동안 이동한 지역은 대단한 험한 곳으로 그가 살아서 발견된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야말로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들의 만남은 극적이었는데, 길을 잃은 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했던 그는 개울과 능선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자신이 알아볼 수 있는 카라메아(Karamea) 강을 발견하고 강을 따라 산장까지 이동했다.
더욱이 그는 발견 하루 전에서야 산장에 도착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동 과정에서 다쳤던 그는 발견 직후 헬기로 넬슨 병원으로 이송됐고 가족과 재회했으며, 탈진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생명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수색이 중단된 후 점점 희망을 잃어가던 가족은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환희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그가 살아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면서, 수색에 나서준 모든 이에게 감사를 전했다.
언론 성명을 통해 가족은, 경찰과 Land SAR, 군과 민간 자원봉사자는 물론 무전기와 동결 건조 식품, 전문 장비 등 수색 장비를 지원한 모든 이를 하나하나 거명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한 그가 불굴의 의지와 회복력을 가진 덕분에 기적이 가능했다면서, 그의 생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산에서 안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카후랑기 국립공원 지도(구글 맵)
<거친 자연으로 유명한 카후랑기 국립공원>
남섬 북부의 넬슨과 태즈먼, 웨스트 코스트 지역에 걸쳐 펼쳐진 ‘카후랑기 국립공원’은 면적이 4,528km2로 13개의 국립공원 중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12,607km2)’에 이어 두 번째 크기를 자랑한다.
‘카후랑기’는 마오리어로 ‘소중하거나 값진, 희귀한 물건’을 뜻하는데, 이곳은 다양한 식생을 가지고 있으며 화강암과 더불어 석회암이 많아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하면서 동굴과 싱크홀 등이 산재해 지질 다양성이 국내 보호구역 중에서 가장 복잡하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07년에는 카후랑기 국립공원과 인근의 페어웰 스핏(Farewell Spit) 자연보호구역, 와이코로푸푸 스프링(Waikoropupu Springs), 카나안(Canaan) 카르스트 지형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추가됐다.
또한 공원 전체는 열대림이 우거진 해안부터 해발 1,800m의 고산 지대까지 다양한 지형을 포함하고 있으며, 길이 78km에 달하는 히피(Heaphy) 트랙과 같은 장거리 트레일 코스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방대한 공원은 평소 방문자가 많지 않은 야생 지역이 대거 포함돼 길도 잘 표시되지 않은 구간과 급류, 암벽이 많은 데다가, 특히 고지대 날씨가 수시로 변하면서 비라도 많이 쏟아지면 강과 계곡은 곧바로 통행할 수 없어 숙련된 등산인에게도 아주 도전적인 곳이다.
특히 이번에 가넷이 실종된 배턴 밸리와 엘리스 베이슨(Ellis Basin) 일대는 수일에서 일주일 이상의 등산 일정이 필요한 루트이며, 뉴질랜드의 많은 곳이 그렇듯이 휴대폰 신호도 안 잡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히피 트랙에서도 과거 여러 차례 실종 사건이 발생했는데, 1980년대 한 단독 등산가가 페리 새들(Perry Saddle) 산장 인근에서 길을 잃고 9일간 헤매다가 구조됐는데, 당시에도 폭우와 불량한 길 상태로 정상 루트를 벗어나면서 방향 감각을 잃은 것이 원인이었다.
또한 지난 2012년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도 한 등산가가 오웬(Owen)산 인근에서 실종돼 수일간 지상과 항공 수색이 진행됐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이곳은 곳곳에 균열이 많아 추락 사고를 조심해야 하는 지형이다.

▲ 개인용 위치 발신기(Personal Locator Beacon, PLB)
<산악 전문가가 권하는 등산 준비와 행동 요령>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을 비롯한 수색 구조 기관과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기본 안전 수칙을 거듭 강조했다.
• 등산 계획 수립 후 가족/친지에게 공유(출발일과 예상 복귀일, 경로와 숙박 계획- 이는 비상 상황에서 수색구조대에게 중요한 정보가 됨).
• 안내소나 산장의 방명록에 기록을 남긴다(수색대의 이동 경로 추적에 도움).
• 종이 지도와 나침반, PLB(휴대폰은 배터리 수명이 짧고 통신 범위 제한).
• 날씨 정보 체크: 산악 날씨는 급변하므로 출발 전 최신 일기예보 확인 필수.
• 적절한 장비: 충분한 음식, 물, 방한 장비, 비상용 키트, 여분의 배터리 등.
• 루트 표시에 주의: 트레일 표시를 벗어나지 않고 표지판과 지형을 수시로 확인.
• 길을 잃었을 때: 무작정 이동보다는 안전 장소에 머물며 구조 신호를 보낸다.
• 불을 피우거나 호루라기나 작은 거울, 밝은 색깔의 물건으로 위치를 알리거나 신호한다.
이런 가운데 이른바 조난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비컨(Beacon)’ 지참이 또 다시 강조됐는데, ‘개인용 위치 발신기(Personal Locator Beacon, PLB)’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단추 하나만 누르면 위성 통신으로 현재 위치의 좌표가 해상/항공 구조기관으로 전송된다.
PLB는 산속, 깊은 계곡 등 휴대폰 신호가 닿지 않는 곳에서도 작동하고 전 세계 구조 당국과 직접 연결되는데, PLB 사용 시 수색 범위가 좁혀져 구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가넷이 이 장비만 갖고 있었다면 생명을 위협받는 지경까지 빠지기 전에 수월하게 구조될 수 있었다.
다만 장비가 최소 300달러 이상으로 고가이고 법적으로 사용자를 등록해야 하며 사용법 숙지가 필요한데, 자연보존부(DOC)의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나 아웃도어 용품점에서 빌릴 수 있으며 대여료는 하루 15달러, 사흘은 30달러, 일주일은 40달러 정도이다.
송출 전파가 강력해 나뭇잎이나 구름을 통과하지만 완벽하진 않아 하늘을 직접 볼 수 있는 시야 확보가 필요하다.
일부 모델은 무선과 위성 주파수(406MHz/121.5MHz)를 모두 사용해 헬기가 접근하면 무선망에 연결해 PLB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최신 모델은 GPS 기능도 탑재해 구조팀에 사용자 위치 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
전문가와 산악 안전 기관은 장거리 트레킹에서는 위급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는 핵심 장비라면서 반드시 지참하도록 강조하는데, 현재 뉴질랜드에는 10만 대가량의 PLB가 등록돼 있다.
한편, 이번 사례는 극한 조건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실종자의 생존 의지와 더불어 기적과 같은 만남이 함께 만들어 낸 ‘해피 엔딩’의 실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또한 <자연은 예측 불가능하며 준비하지 않은 산행은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라는 중요한 교훈을 다시 한번 전하는 사례도 됐다.
기후변화로 갈수록 폭우 등 이상 기후가 빈번해지는 가운데 산으로 나서는 이들은 뉴질랜드 자연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속에 도사린 위험에 대한 진지한 고려와 철저한 준비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