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 가까이 뉴질랜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빠와 세 자녀의 동반 숲속 잠적 사건’이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종적이 묘연했던 톰 필립스(Tom Phillips)가 지난 9월 8일(월), 경찰관과 총격전 끝에 숨지고 아이들은 무사히 구조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뉴질랜드에 갖가지 사회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많은 논란도 일었는데, 그동안의 언론 보도와 경찰의 발표를 종합해 지금까지 사건의 진행 과정과 사회적 쟁점 등을 정리했다.

▲ 톰 필립스 (Tom Phillips)
<죽은 톰 필립스는 어떤 사람?>
본명이 ‘Thomas Callam Phillips’인 그는 북섬 와이카토의 와이토모(Waitomo) 디스트릭에 있는 소규모의 농어촌 마을인 마로코파(Marokopa) 출신으로 알려졌다.
마로코파강 하구에 있는 이곳은 19세기에 산림 노동자들이 정착했으며 마을 인구도 2023년 센서스 기준으로 42명에 불과하고, 1982년에 학교가 문을 닫은 후 가장 가까운 학교도 20km 떨어진 피리피리(Piripiri)에 있을 정도로 외딴곳이다.
필립스는 2021년 12월에 본격적으로 사라지기 전까지는 해밀턴에서 남쪽으로 33km 떨어진 ‘오토로항가(Otorohanga)’에서 아이들과 살았으며, 현재도 그의 부모가 살고 있는 마로코파에 아이들과 함께 자주 들렀다.
경찰 브리핑에 따르면 그는 1987년생으로 사망 당시 38세였으며 공개된 보도들을 보면, 그는 ‘농업과 목장 배경’의 가정에서 자라 가족 농장과 토지와 밀접한 삶을 살았으며, 사냥과 야영 등 야생에서의 생활 경험이 풍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신 학교나 학력, 직업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공개된 기록은 찾기 어려운데, 언론 보도에는 주로 ‘가족 농장 생활’, ‘야외 생존 능력’, ‘홈스쿨링으로 자녀를 가르친 정황’ 등이 반복적으로 언급됐다.
또한 친지와 지역 주민의 인터뷰를 종합하면, ‘침묵을 즐기고 고립을 택하는 성향’이 있었다는 평인데, 특히 가족과 친지는 그가 ‘머리를 식힐 공간을 원했다(he wanted space to clear his head)’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지역사회에서는 특히 그가 캠핑과 사냥, 그리고 자급자족식 생활에 능숙하다고 알려졌는데, 이와 같은 능력은 그들이 오랜 시간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숲속에 머물 수 있었던 배경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해진 그의 성격 묘사나 숲으로 사라진 동기 등은 주변 증언에 의존한 부분이 많은 데다가 결국 그가 사망하는 바람에 갖가지 의문을 남기고 추정만 가능하게 됐다.
한편, 그는 캐트리오나 매리스(Catriona Marris, ‘캣’이라고 불림)라는 여성과 결혼했고 언론은 이들의 결혼 기간을 대략 8년가량으로 보도했는데, 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별거 상태였으며 가정법원에서 분쟁이 벌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분쟁 과정에서 법적 양육권에 대한 기록이 ‘오랑가 타마리키(Oranga Tamariki, Ministry for Children)’에 있는 것으로 보도됐지만, 이들 부부의 결혼이나 이혼 여부, 법적 합의 내용 등은 따로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 사건이 벌어졌던 주요 장소들(X 지역은 마지막 총격 사건이 벌어진 곳)
<필립스 가족이 사라진 이후 어떤 일이?>
언론과 경찰 발표를 정리하면, 필립스는 크리스마스 직전인 2021년 12월 말에 마로코파 인근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는데, 당시 제이다(Jayda, 당시 9세)와 매버릭(Maverick, 7세), 그리고 엠버(Ember, 6세) 등 세 아이가 아빠를 따라나섰다.
경찰과 가족은 그의 행동이 당시 벌어졌던 양육권 등 가족 분쟁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데 이때를 전후해 지금까지 일어난 그의 행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2021년 9월: 이들은 그해 말에 본격적으로 도피하기 전까지도 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등 이미 여러 차례 마로코파에서 부모의 집을 들락거리는 일이 반복됐다.
• 2021년 9월: 필립스와 아이들이 사라지고 그의 차(ute)가 해변에서 발견돼 비행기와 선박까지 동원한 대규모 수색이 18일이나 이어졌지만 9월 30일 이들이 돌아왔는데, 경찰은 수십만 달러의 경찰 자원을 낭비하게 만든 혐의로 그를 기소해 그해 11월 법원에 출두하도록 했지만 팬데믹으로 다음 해 1월 12일로 출두가 연기됐다.
• 2021년 12월 9일경: 기소된 상태인 그가 자녀들을 데리고 본격적으로 ‘숲으로 들어간’ 시점으로 추정되며 가족은 12월에 다시 실종 신고를 했고, 그는 이듬해 1월 12일 법원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의 차는 1월 말에 망가토아(Mangatoa) 로드에서 발견됐다.
• 2023년 8월 초: 필립스가 훔친 것으로 보이는 토요타 하이럭스(Toyota Hilux)가 발견되는 등 새로운 단서가 포착돼 일대에 대한 수색이 재개됐다.
• 2023년 8월: 필립스가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해밀턴의 2군데 버닝스(Bunnings) 지점에 나타나 상당한 현금을 내고 물건을 샀는데, 헤드램프와 배터리, 씨앗과 양동이, 고무장화 등으로 경찰은 그가 숲속에 캠프를 만들었다고 추정했다.
• 2023년 9월: 필립스가 테 쿠이티(Te Kuiti) 일대에서 은행 무장 강도와 상점 직원에게 총을 쏘는 등 중범죄를 저질러 수사와 기소 대상에 올랐으며, 이 사건 이후 경찰은 수사를 본격화했다. 당시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나던 그의 뒷자리에는 자녀로 보이는 한 명이 함께 있었다.
• 2024년 6월: 와이카토 경찰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귀환하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이에게 8만 달러의 보상금을 내걸면서, 그를 도운 사람이 나서면 면책권까지 주겠다고 발표했고 제보 50여 건이 있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 2024년 10월 3일: 사냥꾼들이 필립스와 자녀들을 마로코파 부근에서 목격하고 촬영까지 했지만 무장했을 가능성으로 추적하지는 않았으며 이후 이어진 경찰 수색에서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 2025년 8월 27일 밤: 피오피오(Piopio)의 상점 CCTV에 필립스와 자녀 중 한 명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찍혔는데,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망을 더 좁히는 계기가 되었다.
• 2025년 9월 8일 새벽: 피오피오의 농업용품 판매점(PGG Wrightson)에서 경보가 울려 경찰이 출동해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가 결국 당일 총격전이 벌어지고 필립스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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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 쿠이티에서 은행 강도 범행 후 도주하는 장면(2023년 9월)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2021년 말부터 이듬해까지 경찰은 사건을 일단 ‘가정 문제’로 국한해 수색은 하면서도 전면적인 개입까지는 안 했는데, 하지만 2023년 테 쿠이티에서 은행강도 사건이 벌어진 뒤부터는 범죄 수사와 더불어 지역에 대한 수색을 본격화했다.
경찰은 수차례 공개 수배와 CCTV 공개 및 지역 감시는 물론 보상금을 내거는 한편 조력자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신고하면 이들의 책임을 면제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혔지만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일부에서 목격담과 함께 CCTV 영상의 단서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수색 범위를 좁혀 나갔는데,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해 특수부대 투입은 배제한다고 확인한 바 있다.

▲ 피오피오의 상점 앞에서 찍힌 CCTV 영상(2025년 8월)
<짧은 총격전 끝에 필립스 사망, 경찰관도 중상>
9월 8일 새벽 2시 30분경, 피오피오의 상점에서 경보가 울리자 경찰이 즉시 현장으로 출동해 인근에서 헤드램프를 착용한 필립스와 아이로 보이는 2명을 발견해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륜 오토바이(quad bike)를 타고 와이푸나(Waipuna) 로드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확인됐고 경찰은 테앙가(Te Anga) 로드 교차로에 로드 스파이크를 설치해 멈추게 했지만 곧바로 총격전이 벌어졌다.
처음 접근했던 경찰관이 근거리에서 머리와 어깨에 총탄을 맞고 중상을 입은 가운데 두 번째 팀이 현장에 도착하면서 치열한 총격전이 짧은 시간 벌어진 끝에 필립스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필립스는 화력이 강한 소총을 갖고 있었는데,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사건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면서 경찰이 위협에 대항해 불가피하게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총격전에 가담한 경찰관들은 업무 복귀 전 심리적 지원을 받으며 규정에 따라 사건은 ‘경찰 독립조사국(Independent Police Conduct Authority)’에 회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이 중 한 명은 당시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구조됐으며, 그 아이의 협조를 받아 경찰은 총격전이 벌어진 뒤 12시간이 지난 후 인근 숲에 있던 2명의 아이도 마저 찾아냈다.
중상을 입은 경찰관은 헬리콥터로 와이카토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고 중태이지만 안정된 상태라고 경찰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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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발견된 숲속 캠프
<은밀한 곳에 만든 반영구적인 캠프>
이후 경찰은 이들이 머물던 캠프 사이트의 사진을 곧바로 공개했는데, 사이트는 깊숙한 숲속에 은밀하게 만들어진 데다가 접근로에도 나무가 우거져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꽤 오랜 기간 머물렀을 것으로 보이는 텐트와 주변에는 생존을 위한 잡다한 물건과 함께 가스통과 스토브를 비롯한 살림살이와 공구류, 자전거, 타이어 등이 널려져 있었고 상당한 양의 식량도 비축돼 있었다.
이러한 반영구적인 캠프 사이트 모습은 필립스가 자녀들과 함께 문명과 단절된 삶을 지내기 위해 얼마나 철저히 준비하고 유지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인데,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인근에는 또 다른 캠프도 있었다.
또한 그가 만들거나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도구와 함께 다수의 총기와 탄약도 나왔는데, 캠프 발견 당시 한 아이가 총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설득 끝에 무사히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캠프를 감식 대상으로 지정해 현장에서 DNA와 지문, 사용 흔적과 물품의 출처 등을 조사하는 한편, 발견한 물품들을 보면 누군가 이들을 도왔을 가능성도 많아 이에 대한 수사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당일 구조한 세 아이는 무사했으며 건강상 큰 문제는 없었지만 경찰은 4년간이나 문명과 단절된 삶을 살아온 만큼 심리적 안정과 적응에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해 일단 ‘오랑가 타마리키(Oranga Tamariki, Ministry for Children)’의 보호를 받게 했다.
실제로 아이들은 숲속에서 장기간 이어진 삶과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갑작스러운 문명 세계로의 복귀로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겪게 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구조 직후 조사를 미루고 의학 및 심리적 검진부터 받게 하면서 보호와 치료가 우선이라고 밝혔는데, 이후 아이들은 엄마와 재회했으며 현재 심리학자와 아동 전문가의 집중적인 상담과 지원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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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 내부의 모습
<다큐멘터리 제작 시도, 엄마는 결사적으로 반대>
톰 필립스 사건은 워낙 사회적 파장이 컸던 만큼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가운데 진작부터 다큐멘터리 제작도 추진됐다.
한 언론사와 유명 프로듀서는 이 비극적인 가족사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나 시리즈 제작 의사를 밝혔으며, 이미 이들은 경찰의 일부 수색 작전에 동참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들 가족의 삶, 잠적 동기, 그리고 뉴질랜드의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보낸 시간 등을 조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소식을 들은 세 자녀의 엄마는 이를 성토하면서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고, 법률 대리인을 통해 일부 정보와 자료의 공개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 웰링턴 고등법원에서 승인받았는데, 라디오 NZ를 비롯한 언론사들은 이에 반발해 이의를 제기했으며 10월 17일 추가 심리가 열린다.
엄마는 사건 직후 가진 인터뷰를 통해, “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형태의 다큐멘터리 제작도 원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하게 밝히면서, 아이들이 겪은 충격적인 경험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심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한 아이들이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는 상황에서 언론의 과도한 관심과 조명이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프라이버시와 심리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지켜줘야 한다고 호소하고, 모든 미디어 관계자에게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제작 시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경찰도 마지막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의 무전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는 등 언론의 무분별한 취재 행태에 대한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뉴질랜드 사회에 심각한 질문들을 던졌는데, 한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이 가족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동 보호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가정 안의 문제를 공적인 사회적 안전 문제로 전환하는 시점’ 등 공권력 개입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또한 극적인 사건에 대한 언론의 취재 및 보도 자유, 범위와 함께, 특히 아동이 특정 사건에 포함됐을 경우 이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등 개인 인권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를 비롯한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도 함께 제기됐다.
그리고 지역사회나 이웃의 ‘묵인’이나 ‘도움’은 어떻게 규명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와 트라우마 노출 가능성이 큰 미성년자에 대한 보도와 창작(다큐멘터리나 프로그램)의 윤리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등 근본적 질문이 제기되면서, 언론과 공공기관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신중히, 아동 최우선 원칙을 지키며 보도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뉴질랜드 국민으로서는 톰 필립스 사건을 단순한 실종과 도피극을 넘어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되짚어보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하게 됐다. (※ 이번 기사는 경찰 발표와 언론 보도 등 공개적으로 알려진 자료를 바탕으로 했으며 현재 수사 중인 내용은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사실관계가 바뀔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