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한인 사회, 보이지 않는 정신건강의 경고음

뉴질랜드 한인 사회, 보이지 않는 정신건강의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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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아시아 가정 서비스(AFS) 웰빙 보고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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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아시아 가정 서비스(Asian Family Services, 이하 AFS)가 발표한 ‘뉴질랜드 아시아인의 웰빙과 정신건강 보고서’는 우리 교민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다.


팬데믹을 거치며 악화된 정신건강 문제가 이제는 구체적 수치와 함께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한인 사회는 우울 위험, 삶의 만족도, 차별 경험, 지역사회 소속감 등 여러 지표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하며 심각한 취약계층으로 나타났다.


이 특집은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토대로, 뉴질랜드 한인 사회가 직면한 정신건강 위기를 조명하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자 한다.


1.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 ― 한인의 우울 위험 69.1%


AFS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아시아인의 절반 이상이 우울 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이는 이미 심각한 수치지만, 한인 응답자만 따로 떼어보면 무려 69.1%가 우울 위험군으로 드러났다. 이는 아시아 집단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이다.


청년층(18~29세)에서는 그 수치가 더욱 높아져, 10명 중 7명 이상이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특히 여성 응답자의 경우 위험도가 더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이민 생활에서 겪는 언어 장벽, 사회적 고립, 가정 내 돌봄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숫자가 주는 의미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실제 한인 사회에서 이 수치는 곧 우리 이웃, 친구, 가족의 문제이며, 교민 사회의 건강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2. 삶의 만족과 의미, 그리고 소속감의 결핍


정신건강 지표는 단순히 우울 여부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삶에 대한 만족감과 의미, 지역사회 속에서 느끼는 소속감 또한 중요한 지표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인들은 ‘내 삶이 가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아시아 집단 중 최저인 71.8%에 불과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만족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인정 부족과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또한, ‘지역사회에 소속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46.6%에 머물렀다. 절반 이상이 “나는 이 사회에 충분히 속해 있지 않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이민자로서의 뿌리 내림 과정에서 느끼는 고립감, 언어적•문화적 장벽, 직장•학교에서의 차별 경험 등이 이 소속감 부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차별 경험 ― ‘보이지 않는 벽’


한인 응답자의 90.5%는 최근 경험한 차별의 이유로 인종•민족을 꼽았다. 아시아 전체 평균보다도 높은 수치다. 게다가 성별 정체성과 관련한 차별 경험을 보고한 비율도 한인 집단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실제로 교민 사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름 때문에 면접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무시당하거나 무례한 말을 들었다.

•학교에서 자녀가 ‘너는 한국 사람이니까 영어 못하지?’라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


이러한 차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벽’으로 작용해, 개인의 자존감과 공동체 소속감을 약화시키며, 결국 정신건강에도 직접적 악영향을 미친다.


4.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 ― 부모의 불안


아시아계 학부모의 절반 가까이가 자녀가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괴롭힘 유형 중 가장 흔한 것은 언어폭력(71.8%)과 사회적 배제(36.9%)였다. 하지만 문제는 학교가 이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학부모 중 절반 이상이 학교의 대응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 부모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가해 학생 부모와 직접 대화할 자신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4%도 되지 않았다.


한인 학부모들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피해를 알려도 학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언어 장벽 때문에 내 주장이 왜곡되거나 무시될까 두렵다”고 호소한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자녀는 더 깊은 상처를 안게 된다.


5. 도움을 받기 어려운 이유


많은 교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실제로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는 그 장벽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서비스 정보 부족(48.6%)

•치료 효과에 대한 불신(41.1%)

•정신질환에 대한 낮은 인식(39.8%)

•프라이버시 우려(37.8%)

•낙인(Stigma)에 대한 두려움(36.1%)


특히 한인 사회는 낙인 문제가 매우 크다. ‘정신건강 문제는 숨겨야 한다’, ‘상담을 받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담이나 치료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도 첫걸음을 내딛지 못하게 하는 큰 장벽이 된다.


6. 왜 한인 사회가 더 취약한가


한인 사회가 특히 더 높은 위험군으로 나타난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다.


1. 언어 장벽

의료 서비스 접근, 학교 소통, 직장 내 의사소통에서 언어의 벽은 한인을 더 고립시킨다.


2. 이민자의 불안정성

비자, 취업, 정착 과정에서 겪는 불안정성이 스트레스를 증폭시킨다.


3. 사회적 고립

소수민족으로서 겪는 차별과 배제 경험은 곧 ‘외로움’으로 이어지고, 이는 우울 위험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4. 문화적 낙인

한국 문화권에서는 정신건강 문제가 여전히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인식은 문제를 숨기고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7.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응 ― 3단계 솔루션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첫째,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학교 차원의 안티-불링 프로그램을 정규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공공 정신건강 서비스에 한국어 통역, 문화적 상담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

•인종차별•증오표현 신고 핫라인을 한국어로 접근할 수 있게 강화해야 한다.


둘째, 서비스 기관 차원에서


•‘한인 네비게이터’를 두어 교민들이 서비스에 접근하는 길잡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심리 교육 프로그램을 한국어로 보급하고, 남성 가장을 겨냥한 특화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학교 교사들에게 문화적 감수성과 트라우마 인식 훈련을 의무화해야 한다.


셋째, 커뮤니티 차원에서


•‘우울은 병, 치료는 용기’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알리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부모 대상 교육을 통해 학교 괴롭힘 대응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야 한다.

•청년 리더를 양성해 또래 상담자 역할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8. 독자를 위한 실천 가이드


•상담 창구 활용: Asian Family Services는 한국어 상담을 제공한다. 전화, 대면, 온라인 모두 가능하다.

•자가 점검: 2주 이상 무기력, 불면, 집중력 저하가 지속된다면 상담을 권장한다.

•학교 대응법: 괴롭힘이 의심되면 증거를 확보하고, 담임이나 담당 교사에게 공식 보고하며, 필요 시 통역 지원을 요청하라.


보고서가 보여주는 수치는 차갑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목소리와 고통이 숨어 있다. 한인 사회의 정신건강 지표가 유독 낮게 나온 것은 단순한 통계적 우연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실제로 겪고 있는 현실이며,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용기 있는 대화와 제도적 뒷받침, 그리고 공동체의 연대다. 숫자는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선 우리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


“우울은 병, 상담은 치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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