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 죽음이 휘몰아 치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그 해 겨울, 죽음이 휘몰아 치다

yws_c90
0 개 1,278 이익형

그 날은 그저 보통의 여느 날과 다름 없었을 것이다. 일상의 바쁜 아침이 그렇듯 아이들과의 짧은 실랑이에 조금은 언짢았을 것이며 분주한 마음에 들어선 고속도로의 정체에 살짝 짜증도 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싱그러운 안개비와 차 안에서 들려오는 김광석이면 난 여전히 그런 아침을 즐거워했을지 모른다. 아무 다를 것 없이 조금은 바쁘지만 나름 여유를 찾아가는 그런 아침이 그 날도 지나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상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마을입구엔 어김없이 마리 할머니가 주차장 옆 의자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밖을 응시하고 있었고, 케니 아저씨는 주차할 곳을 고르느라 서성이는 내 차로 다가와 나를 맞는다. 그 마을에서 맞이한 첫 겨울의 어느 날, 죽음은 그렇게 평범히 그리고 너무도 조용하게 찾아오고 있었다.    


지금은 정부의 주거시설에 대한 새로운 기준과 정책으로 목재로 만든 작은 캐빈이 제공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 캐빈들이 서 있던 자리엔 그 보다 더 비좁고 허름한 이동식 캐라반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나무로 지어진 캐빈은 크기의 문제만 제외하면 그럭저럭 한겨울의 추위를 버틸 간이숙소가 되고 있지만, 오래되어 낡은 캐라반은 덧대어 이어진 철판에 이음새 마다 구멍이 뚫려 비 많은 오클랜드의 겨울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5d018a52cf5747cb316bc7ebd88af19f_1624322746_8879.png
 

▲ 사진: 지금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오래된 거주형 캐라반 모습


낡고 헤어진 캐라반의 양철 표면은 틀림없이 그 주인의 외투만큼이나 후들거렸고, 비라도 세차게 내릴라 치면 양철을 때리는 빗소리에 고함을 지르지 않고는 어지간한 대화는 불가능 했다. 


“에이든, 오늘 아침은 기도가 필요해.” 


어느덧 운전석 앞까지 걸어 온 케니 아저씨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눌하지 않았으며 그의 눈빛은 흔들려 슬퍼 보였지만 빛나고 있었다.


“??” 


“너 목사잖아. 네가 토니를 위해 기도해 줘야 할거 같아.” 


그날 아침 한 생명이 스러졌다. 이틀 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너무도 무심한 일상의 인사를 나눈 토니는 내가 맞이한 그 아침의 싱그러움을 맞이하지 못했다. 이 마을에서 사역을 시작하며 누군가의 죽음 앞에 마주 서 있게 될 나 자신을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이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와 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케니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그의 작은 처소에는 수년간 세탁되지 못한 듯 곰팡이가 피어 새카메진 이불에 그가 덮여 있었다. 변변히 허리 조차 펼 수 없는 작은 공간에 누여진 그의 몸을 더듬어 발견한 그의 발은 너무 거칠었고 검게 변해 있었다. 그의 발등을 부여잡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손을 통해 그가 경험했던 이 땅의 고난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만 같았다. 나는 케니에게 부탁 해 젖은 수건을 준비해 그의 발에 묻은 흙을 조심스레 닦아냈다.



그의 마지막을 위해 기도하며 나는 차라리 고통으로부터 이제 자유로워진 그의 영혼이 축복되다 생각했다. 이 땅의 시간은 비록 무언가에 끊임없이 얽매였었더라도 이제부터는 자유로워 지기를, 눌리었던 고통의 무게를 벗고 가볍게 날아 오르기를 나는 간구했다. 나는 그 시간 드려진 나의 기도가 떠나 보내는 한 생명에 대한 위로와 추모의 기도였는지 아니면 그 기나긴 고통의 터널을 마친 그의 새로운 시간에 대한 축복의 기도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믿음이 이 세상의 축복에만 머물러 있지 않음에 감사했다.


굳어진 그의 발등에 손을 떼고 돌아서니 좁은 캐라반에 함께 들어 오지 못한 몇몇의 이웃이 함께 기도를 마치고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 생명의 마지막은 그렇게 그들 사이에서 추모되었고 그렇게 다시 주변인들에게 잊혀져 갔다. 이제 그의 몸은 부검을 거쳐 남아있는 가족이 없을 시 변변한 장례조차 없이 무연고로 처리되어 뿌려질 것이다. 이렇게 그 겨울의 초입에 조우한 죽음은 그 계절이 끝나기까지 3개월 남짓의 시간 동안 4번이나 더 나를 찾아왔다


그 해 겨울, 난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경험한 죽음 보다 더 많은 죽음을 보아야 했다.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가난은 죽음에 너무도 취약 했고, 삶의 모든 영역에 고통으로 자리잡은 빈곤은 그렇게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지막을 고할 수 있었다. 그 작은 공간 속에서 가난에 지쳐가는 그들의 시간은 여간 해선 스스로의 회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에 기다리는 죽음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담담하게 우리를 찾아 오고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케니의 작은 캐라반에서 토니의 사진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가장 잘 보이는 입구 한쪽에 액자도 없이 걸려진 그의 사진은 지금도 그렇게 위로 받고 있었다.

(* 글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 입니다.) 


■ 이익형 간사 (낮은마음 간사 / BTh, MTh)
레이드로 대학 (Laidlaw College)에서 각각 성서연구 (Biblical Study)와 공공신학 (Public Theology)으로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나눔 공동체 낮은 마음과 문화 공간 <숨, 쉼>에서 일하고 있다. - 낮은마음 이야기는 나눔공동체 낮은 마음이 서부 오클랜드 지역에서 활동하며 지역 이웃들과 함께 나눈 사역을 정리해 엮은 칼럼이다.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

댓글 0 | 조회 121 | 7시간전
팻 분(Pat Boone)의 감미로운 노래 ‘April Love(4월의 사랑)’를 듣고 싶은 4월(April)이 찾아왔다. 1957년 미국 폭스(Fox)사 영화 … 더보기

로렐라이의 선율과 제주 4·3

댓글 0 | 조회 138 | 10일전
▲ 영화 ‘비정성시’ 포스터지난해 출간된 현기영 작가의 장편소설 ‘제주도우다’에는 제주 4·3 시절 산에 올라 투쟁에 나섰던 청년들이 부르던 노래가 소개된다. 이… 더보기

공부가 나를 망쳤다

댓글 0 | 조회 290 | 10일전
공부를 하라고 해서 공부만 했는데, 과연 그것이 정답일까?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어릴적 부모님을 따라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기라도 하면 듣고 … 더보기

그 곳에 있었다 - 부처님도, 우리 마음도

댓글 0 | 조회 108 | 10일전
경주 남산 용장골 ~ 연화대좌 순례용장골에서 설잠 스님(매월당 김시습)용장골 골 깊으니 茸長山洞窈오는 사람 볼 수 없네 不見有人來가는 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 더보기

비자 심사 지연엔 다 이유가 있었네

댓글 0 | 조회 1,487 | 10일전
본국 외의 그 어느 국가를 방문하더라도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 것이 Visa(또는 국가에 따라 Permit)입니다. 영구한 거주를 가능하게 해 주는 영주권도 비자이… 더보기

이번달 수도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어요!

댓글 0 | 조회 1,055 | 10일전
안녕하세요. 넥서스 플러밍의 김도형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전문 플러머 회사로서, 물 문제와 관련하여 고객님들로부터 다양한 문의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달에도 예외… 더보기

시인

댓글 0 | 조회 149 | 10일전
시인 :파블로 네루다전에 나는 고통스러운 사랑에 붙잡혀인생을 살았고, 어린 잎 모양의 석영 조각을소중히 보살폈으며눈을 삶에 고정시켰다.너그러움을 사러 나갔고, 탐… 더보기

축기의 비결

댓글 0 | 조회 133 | 10일전
* 제가 단전호흡을 할 때, 계속 비운다고 생각하면 편안한데요. 단전에 축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답답해지거든요. 더 안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이렇게 했다… 더보기

마이너스 인생 살아가기

댓글 0 | 조회 870 | 2024.04.09
개념적으로 마이너스 인생이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적자만 기록한 인생, 빚진 인생,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헛되이 보낸 인생 등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 더보기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픈 기억에 마주했을 때

댓글 0 | 조회 393 | 2024.04.09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예기치 않게 충격적인 사건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건을 현장에서 경험했거나 목격했다면 사람들은 공포와 고통을 느끼고 우… 더보기

현대인의 심리 불안, 대추차가 좋아요

댓글 0 | 조회 186 | 2024.04.09
최근 한방의 질병 예방 및 치료 효과가 부각되면서 주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한약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남용이나 오용의 위험이 상대적… 더보기

장내 미생물총과 유전

댓글 0 | 조회 156 | 2024.04.09
장내 미생물, 사람의 체내 세포수보다 더 많은 생명체들, 사람의 유전자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존재. 제2의 뇌라 불리우는 곳에 사는 제2의 나, … 더보기

유년의 부활절

댓글 0 | 조회 85 | 2024.04.0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부활절 아침에어머니가 흰 봉투에 넣어준부활절 헌금은 십원짜리지폐 한 장이었습니다교회선생님이 출석부 이름을 부르면나는 자랑스럽게 선생님께 드렸… 더보기

잇몸의 날

댓글 0 | 조회 274 | 2024.04.06
‘잇몸병’은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이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국민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엔 감기 환자(약 1200만명)보다 잇몸병 … 더보기

독감 및 최근 COVID-19 개량 백신 접종

댓글 0 | 조회 990 | 2024.04.05
4월 1일부터 독감 접종 시작합니다여러분과 사랑하는 이들을 독감으로부터 보호하세요.독감(인플루엔자)은 일반적인 감기와는 다릅니다. 독감 증상은 갑자기 나타나며, … 더보기

2024학년도 한국대학 입시 분석 결과 리뷰

댓글 0 | 조회 625 | 2024.03.28
2024학번 수험생들은 2020년부터 약 3년 여간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판데믹을 거치며 고등학교 3년 대부분을 보냈던 코로나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극단적으… 더보기

액티브 인베스터 플러스 비자

댓글 0 | 조회 564 | 2024.03.27
뉴질랜드의 투자 기회를 높이는 액티브 인베스터 플러스 (Active Investor Plus Visa) 비자 소개중요한 발전으로, 액티브 인베스터 플러스 비자가 … 더보기

매일 아침 10분 모닝 요가

댓글 0 | 조회 331 | 2024.03.27
아침마다 침대에서 나오기 힘드신 분들, 특히 눈은 떠져도 몸이 말을 듣질 않아 한참을 이불 안에서 뭉그적거리게 되는 분들을 위한 영상입니다. 굳이 매트를 찾아 깔… 더보기

장 건강의 중요성

댓글 0 | 조회 515 | 2024.03.27
저는 한의사도 아니고 기능의학자도 아니며 자연치료사도 아니다. 다만 자연치료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저는 그들이 지향하는 치료 방향에 공감을 하며 그들… 더보기

가을논에서

댓글 0 | 조회 231 | 2024.03.27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한적한 양구 벼 베낸 논에공 하나 들고 들어가논물 막았던 돌멩이로 골대 만들고혼자 이리저리 차며 논다지나던 논 주인일까뭐하슈어릴 적 생각이 … 더보기

참으로 좋은 삶, 늦복에 있네

댓글 0 | 조회 310 | 2024.03.26
처음 영정사진을 찍었을 때가 육십대 후반 칠순을 목전에 두었을 즈음이다.친구들이 앞다투어 몰려가는데 나는 사실 가고싶지 않았다. 마음은 아직도 새파란 청춘인데 영… 더보기

우화루에 꽃비 내리는 날

댓글 0 | 조회 102 | 2024.03.26
완주 화암사와 파주 보광사의 목어“이곳에도 부처님이 오실까요?” 가까스로 길을 물어 절에 다다랐을 때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무심코 새어나온 물음. 완주 불명산 시루… 더보기

왕초보를 위한 워크비자 입문서

댓글 0 | 조회 604 | 2024.03.26
뉴질랜드에서 합법적인 노동을 하기 위한 최적의 비자는 단연코 워크비자(work visa)입니다. 워크비자가 아니더라도 세금(PAYE)을 납부하면서 당당하게 근무하… 더보기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댓글 0 | 조회 176 | 2024.03.26
시인 이 해인먼 하늘노을지는 그 위에다가그간 안녕이라는 말보다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하자그대와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아련한 노을 함께 보기에 고맙다바람보다, 구름… 더보기

호흡이 안 되는 이유

댓글 0 | 조회 385 | 2024.03.26
호흡이 안 되는 것은 대개 불안해서입니다. 초조하고 근심걱정이 많으면 가슴 부위에 기운이 뭉칩니다. 잡념이 많으면 호흡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지요. 숨 쉴 때만이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