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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현숙


‘똑똑, 택배입니다.’


아들이 보냈군요. 큼지막한 두 개의 상자가 사진첩으로 빼곡하네요. 웬만한 것은 버린다더니 추억까지 버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지요. 며칠 뒤면 아들은 가족이 있는 뉴질랜드로 떠납니다.


포장을 열어 첫손에 잡히는 앨범을 펼쳤어요. 어린 시절 사진이군요. 금방이라도 엄마를 부르며 달려 나올 것 같은 모습이 반가워 한참을 눈 맞추며 놀았습니다. 할머니와 찍은 졸업사진, 운동회 날 도우미 아줌마와 손잡고 달리는 장면에선 울컥했네요. 무슨 큰일을 한다고 아이를 외롭게 했는지. 느릿느릿 한 권을 떼고 다음 것을 뒤적이는데 포개진 앨범 사이로 낯선 사진첩이 보입니다. 잡았던 것을 밀어두고 그것 먼저 꺼내 들었어요.


그 앨범의 주인공도 꼬마입니다. 알록달록 반짝이 선물을 안고 산타 품에 안겨 있어요. 유치원 때인가. 무대에서 춤추는 사진에 또래들과 물장구치는 모습이 귀엽군요. 자그만 얼굴에 동그란 눈, 입매가 야무진 증명사진도 예쁘고요. 교복 차림의 초등학생을 보니 며늘애의 어린 날이 분명하네요. 소풍이나 학예발표회 같은 특별한 날의 밝은 얼굴들. 그 해맑은 표정이 눈을 돌릴 수 없게 합니다.


중학생이 된 날도 있어요. 그날의 앳된 얼굴은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부쩍부쩍 잘도 자라는군요. 사진 사이 끼워놓은 메모장 읽는 재미도 여간 쏠쏠하지 않고요. 고교시절은 제법 의젓합니다. 저 교복을 입기 위해 중학교 3년은 마음 놓고 놀지도 못했겠지요. 그리고 대학교정과 여행지에서의 어울림. 아이의 성장이 한눈에 보이는 학창시절을 나는 한달음에 건넙니다. 내색은 않았지만 며늘애의 어릴 적 모습이 궁금했던 터에 아들네의 해외 이주로 그 원을 이루게 되었네요. 찬찬히 들여다보는 반가운 얼굴 뒤로 내 젊은 날이 겹쳐 보입니다.


나도 사진첩이 여러 권이었지요. 코흘리개 시절 가족사진을 시작으로 여러 남매가 옹기종기 끼어 앉은 촌티 나는 흑백사진들. 학생이던 때와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이 갈무리된 추억의 저장고. 나는 그것들을 혼수 트럭에 실었고 시댁에 머무는 동안 저녁마다 꺼내어 설명을 했답니다. 그것은 시집살이 중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마다할 수가 없었어요. 아버님이 바라시기 때문이었죠. 그 불편한 관심에서 멀어지고만 싶었던 며느리는 며느리를 얻고서야 그것이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이제 사진 속 그 아이가 아닙니다. 그때의 꼿꼿했을 자신감은 어디 두고 제가 바라는 삶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은 사람 같아요. 둘째아이를 가지면서 직장보다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 했지요. 내 아이보다 남의 자녀 가르치느라 분주했던 엄마를 가진 아들부부. 그들의 결단이 고맙고도 미안하더군요. 고교와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하고 패기 넘치게 일하던 아이는 그렇게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가족에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그토록 예뻐 보인 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요. 먼 곳에서 홀로 두 아이를 돌보며 편히 쉴 틈도 없었을 며늘애의 헛되지 않았을 2년을 믿고 응원합니다.


사진첩은 흔적입니다. 나와 가족의 삶이 새겨진 공간이지요. 그러나 이제 간편한 휴대폰의 등장으로 퇴물이 되어 나에게는 아들이 보내온 것밖에 남은 것이 별로 없네요. 아이들 것은 주인 따라 떠나고 짐스럽던 우리 것은 일찌감치 정리했거든요. 그런데 뒤늦게 앨범 속의 사진에 더 정이 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일없이 허전하거나 그리울 때면 아들이 보낸 사진첩을 자주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보는 횟수가 늘어갈 때마다 내 속의 그리움도 커가겠지요.


보름 뒤면 아들이 가족 곁으로 가는군요. 간절한 그날이 며늘애에게 꿈을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리하여 새로이 만들어갈 사진첩은 그 꿈을 이루는 모습으로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유능한 선장은 험한 바다가 만든다고 했으니까요.


■ 최 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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