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젊은날의 초상(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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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젊은날의 초상(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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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인생을 뒤돌아 볼 때가 찾아온다.

막상 기억 속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들 그리고 가슴 속에서 몽우리져 있는 이그러진 꿈들이다.

그 기억들 중 하나가 떠오른다. 군대를 제대하고 무작정 도전한 것이 사법고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고 실현되기 힘든 꿈이었지만 그 당시는 세상을 전부 내 손안에 쥘수 있다고 느꼈었다.

무엇이든지 마음먹으면 가능할 것이라 자신했던 시절이었다.


가까운 헌책방에서 1차 기본 법률서를 사고 낯선 용어와 한자들과 씨름을 했다.

몇달이 지나 12월 중순쯤 김철수교수의 헌법학개론을 완독했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힘이들었지만 성취감 또한 크게 왔다.

그 당시는 대통령선거가 한창이었다. 

민주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하고 군부독재를 종식시킬 절호의 기회를 양 김씨의 분열로 인해 실패로 돌아갈 위기속에서 선거 유세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헌법학개론을 완독한 그 날이 군부정권후보 노태우가 부산 수영만에서 유세가 있던 날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수영만 유세장으로 옮겨가던 도중 인파가 너무 많아서 버스에서 내려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현장에 도착했다.

광활한 매립지라서 그런지 한 겨울의 바닷 바람이 크게 일어났고 바람은 살갗을 뜷고 들어올 정도로 매서웠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 유세는 이미 파장이었고 백만이 넘는 인파가 왔다간 흔적은 칼바람을 타고 날카롭게 귓전을 스쳐지나갔다.

선거용 찌라시가 곳곳에서 날리는 가운데 몇군데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패잔병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모닥불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나도 얼어붙은 몸이나 녹이고 가려고 그 중 사람이 적어보이는 한 곳으로 향했다.

곁불을 쬐면서 귀동냥을 해보니 역시 정치적 토론이 벌어졌다. 그런데 사람들 중 범상치않은 말투와 모습을 한 사내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이는 30살 정도로 보였고 밤색 바바리코트에 정장바지와 검은색구두를 신은 모습에 눈매가 아주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군부독재에 대한 비판과 양김씨분열의 안타까움에 대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견해를 펼치는 그의 논변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대화속으로 끼어들었다.

사실 토론보다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대충 그 자리가 마무리되고 그와 나는 서로 인사를 나누게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나보다 9살이 많았고 그 당시 그는 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다

그 이전에 그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현대그룹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나 몇년 지난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의 꿈을 펼치기 위해  전공을 바꾸어 다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결혼도 했었고 이미 아들하나 딸하나의 가장이었다.

요즘 시대의 시각으로 보면 돈키호테 처름 보일수도 있으나 그 당시에 나에게는 다른 시선으로 보여졌다.


인사를 나눈 직후 그의 제안으로 근처 호프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런저런 얘기 도중 그의 정치적 경향성과 활동을 전해듣는 동안 나는 내심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부산의 재야 인사들과의 폭넓은 교류와 국제정세에 대한 세밀한 정보와 관점 그리고 정치인들과의 인맥들에 관해 얘기를 듣고 독특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서로 대화를 하다보니 호프집이 거의 마칠시간이었다. 무려 7시간반을 서로 마주보고 있었던것이다 .

우연히 처음보는 인연인데도 반나절을 같이 보낸셈이다.

애인을 만난것도 아닌데 남자끼리 처음본 사이에 그리고 나이가 거의10년이 차이가 나는데도 서로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의 선물이었다고 느껴진다.

아무튼 내 삶에는 이런 드라마같은 일이 종종 벌어져왔다.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그와 만남에 대한 기억이 자주 떠올랐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마땅히 볼일도 없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책을 뒤척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간 후 그에게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주말에 후배 생일 파티가 있는데 나를 초대하고 싶어했다 .

모이는 대부분 사람들이 내 또래이거나 같은 세대여서 어색하지 않을거라는 설명도 곁들여서 말이다.

사실 주말에 학교 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었으나 다음으로 미루고 초대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때 내 복장은 주로 검은색 반코트에 청바지 아니면 군대 항공점퍼 차림이었다. 아직 군대 물이 덜 빠진 상태였다.

생일파티 주인공은 황창수라는 나와 동갑의 친구였고 그는 정외과 학부생이었다.

나머지 참석자들도 대부분 정외과 학부생 그리고 창수의 여동생과 그녀의 친구 두사람이 같이했고 장소는 창수의 집이라 시간 공간의 제한이 없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도 흥미로웠다. 이번에는 정치적 토론이나 긴장은 전혀 없었고 그의 자유로운 모습과 인간적인 여유도 함께 볼수있었다.

그렇게 그와의 두번째 만남이 끝나고 나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금이야 휴대폰이 있어서 마음 먹은대로 연락을 할 수있지만 80년대만 해도 집 전화외에는 서로 연락할 방법은 편지나 우연한 만남이 전부였다.



그 날 이후 다시 나는 형법 케이스 문제를 보고 있었고 문제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건들이 재미있었다. 시험을 떠나서 아! 내가 전공을 잘못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도 가져보고 전공을 바꾸어볼까 하는 허망한 생각에 사로 잡히기도 했다.

그렇게 일상에 다시 빠져 시간을 보내던 중 그에게서 세번째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좀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전화받은 그날 저녁 우리집근처 호프집에서 오랫만에 다시 재회를 하고 서로 반가워하는 표정에 마음이 편했다. 

나는 이번에는 호칭을 제대로 정해야 겠다고 마음먹고 형님이라 부를까 아니면 선배라 불러야 할지 물어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도 정중히 말을 놓으시라고 권유할 생각이었다.


늘 그랬듯이 500cc 생맥주 두잔을 시키고 쏘쎄지 안주하나 그리고 새우깡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내가 계산하기로 마음먹고 주문도 내가 불러서 직접 시켰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저번 생일파티 얘기에 즐거워하며 그때 만난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다는 안부도 전해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맥주한잔씩을 다시 시키고 나서 그는 "나에게 같이 일을 할 수있겠냐”고 물어봤다.

나는 무슨일인가? 반문을 했고 그는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내년 1988년 4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그가 잘아는 동료가 출마를 하는데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 당시 진보 진영에서는 대통령선거에 대한 패배로 인해 기존 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상당했고 새로운 진보세력을 정치적으로 현실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미 진보정치연합과 한겨레민주당이라는 두개의 정당이 만들어진 상태였고 그의 동료는 한겨레 민주당으로 출마한다고 설명했다. 선거캠프는 대부분 학교 선배후배들로 구성이 되고 기성정치의 패턴을 탈피해서 아마 학생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였다. 그 당시 한겨레민주당은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신생정당이었다.

지금은 고인이된 빈민운동의 대부 제정구, 박정희시대 삼선 개헌반대의 주역 예춘호가 주역이었다. 

진보 정치연합은 이재오 / 이부영 / 이우재 / 김문수가 주축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는 특유의 치밀하고 폭넓은 논리를 전개하면서 나에게 참여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진지하게 말하고 부탁해왔다.

나는 답을 미루고 시간을 달라고 전달하고 그날의 제안을 거절 할 작정이었다.

봄에 복학도 해야하고 또 시작한 공부도 진행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독자여러분 지면 분량상 1부는 여기까지 올립니다

다음주에 2부를 마저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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