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풍경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오래된 풍경

0 개 954 수필기행

‘풍경은 자기 안의 상처를 경유하면서 해석된다.’고 하던가. 그럴지도 모른다. 풍경 속에서 떠올리는 것들은 대개 자기 안의 익숙한 어떤 것들이다. 자라면서 독특하게 기호화된 정서들은 어떤 풍경과 접촉하면서 순간적으로 발화한다. 돌아오지 않는 것들일수록 흡인력은 강하고, 그렇게 재생되면서 추억은 굳건하게 내장되어가는 것일 게다.


갈매기다방


서해안의 작은 포구 한진에 가면 ‘갈매기다방’ 이란 곳이 있다. 낡은 살림집의 내부를 개조해 만든 1970년대 식 다방이다. 시멘트 날바닥에 놓인 다섯 개의 탁자와 분홍 비닐 커버를 씌운 의자, 장식이라곤 없는 휑한 벽 그리고 나이를 분간할 수 없는 한 여자가 다방을 지키고 있다.


“이 다방 생긴 지 삼십 년 됐대요.” 여자는 묻지도 않은 말을 들려주며 석유스토브에 불을 붙인다. 긴 파마머리에 짧은 가죽반바지,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 평범하지 않은 화장. <삼포가는 길>에 나오는 국밥집 여자 백화가 겹쳐진다. 오래된 단편소설에나 나올 법한 다방까지 흘러들어온 그녀의 순탄치 않았을 삶을 헤아린다. 텔레비전에선 신파 드라마가 재방송 중이고, 차 주문을 받는 여자의 말투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허물이 없다. 다방이 아니라 이웃집에 마실 온 느낌이다. 


하얀 사기잔에 내온 쌍화차가 꿀물처럼 달달하다. 손님이래야 뱃일을 마친 어부들이 십중팔구일 거고, 걸쭉하게 계란을 띄운 쌍화차만큼 허기를 달래주는 차도 없을 것이다. 반쯤 마시다 내려놓는다. 곰팡내와 함께 올라오던 지하다방의 쓴 커피 냄새는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던 젊은 날의 지문이다. 한 기억이 불러내는 애잔함은 낯선 포구의 옛날 식 다방을 순식간에 정감 넘치는 풍경으로 각색시킨다. 여자는 다시 텔레비전에 시선을 박은 채 혼자 히히거리고, 희부연 유리창 너머론 12월의 마른 눈이 흩날리고 있다.


순덕할머니의 가을


순덕할머니는 내가 시골로 이사를 오면서 알게 된 이웃이다. 영감님은 진작 돌아가시고 가교리 산자락 외딴집에서 홀로 산다. 하나 있는 딸자식도 제 앞가림하고 살기 바빠 얼굴 본 지 오래다. 흙집은 주인을 따라 얼기설기한 수숫대가 삐져나올 만큼 쇠락했다. 안방에선 오래된 괘종시계가 뎅그렁뎅그렁 느리게 열두 시를 치고, 봉당에서 바장대던 햇살은 할머니의 꼬부라진 등을 어루만진다. 


어쩌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건넛마을 사는 황가네 할머니뿐이다. 그나마 요즘은 관절통이 도져 마실 오는 횟수가 드문드문해졌다. 종일 말 한 자락 나눌 사람이 없으니 말 못하는 신세나 다를 바 없다. 벼농사는 접은 지 오래고, 텃밭을 가꾸는 일도 힘에 부쳐 올 농사가 마지막일 것 같다고 한숨을 쉰다. 수확이래야 마른 고추 열 근 남짓, 마늘 예닐곱 접이 전부다. 


그래도 면사무소에서 주는 정부미와 독거노인들에게 제공되는 반찬으로 이만큼 살 수 있다며 고마워한다. 할머니가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명절에 쓸 고추꼭지를 딴다. 눅눅해진 고추꼭지를 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힘대로 잡아 떼다보면 꼭지 끝에 살점이 많이 묻어나간다. 꼭지만 똑 떨어지게 떼려면 끝을 바짝 쥐고 살짝 비틀어 잡아당겨야 한다. 손끝에 기운이 없으니 고추 한 소쿠리를 다듬는 것도 한나절 일거리다. 


할머니는 혹시나 찾아올지 모를 자식을 위해 나박김치라도 담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벌써 수년째 얼굴도 안 비치는 자식이 야속하지 않느냐는 내 말에, “못 오는 그 심정은 오죽헐텨…….” 그러면서 물끄러미 동구 밖 신작로를 내다본다. 어릿어릿 흐린 눈에 물기가 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거셨던 내 어머니의 마음이 저러했을 터다. 마당가 늙은 밤나무 쭈그렁밤송이 하나, 제풀에 툭 떨어진다.



웃음


한 장의 흑백사진에 시선이 박힌다. 사진작가 이형록의 <우리 집>이란 작품이다. 배경은 1950년대 면목동. 흙벽에 낸 바라지 창 사이로 한 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다. 동글넙데데하니 복스러운 얼굴이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깨금발을 했을 아이의 무구한 눈빛이 사랑스럽다. 아마도 골목엔 동네 꼬맹이들의 지껄임이 왁자할 터다. 다부진 굴뚝이 수호신처럼 흙담집의 온기를 지킬 테고, 손끝 야문 아버지 그늘 아래 아이는 푸른 나무처럼 자라겠지. 


연기에 검게 그을리고 갈라진 흙벽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또 어찌 그리 자애로운가. 한참을 서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나를 본다. 


비루한 삶의 풍경을 전복시키는 치유의 웃음, 살아 있는 벽화다. 새벽 군불을 때는 소리와 함께 문틈으로 스미던 청솔연기에 잠 깨어 나른하게 뒤척이던 어린 시절, 그때 내 웃음도 저리 환했을까. 문득 잃어버린 나의 웃음과, 더 이상 ‘즐거운 우리 집’을 노래하지 않는 고독한 개인들을 떠올린다. 


1950년 남짓한 세월의 눈부신 변화는 우리 마음의 황폐를 대가로 이루어진 것인지 모른다. 이 풍요한 물질문명의 시대에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의 가난은 잘 웃지 않는 얼굴로 드러난다. 아니, 웃음조차 상품화 되어버린 세상이다. 과연 웃음을 내어주고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더 이상 우리 집일 수 없는 이 시대 ‘우리’의 부재, 그것의 성찰에서 잃어버린 나의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오래된 풍경 속에서 내가 만나는 것은 결국 나의 흔적들이다. 잊힌 채 잠들어 있던 내 안의 기억들이다.‘기억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낡은 풍경 속에서 풀려나온 기억의 한 끄트머리가 풍화된 추억을 재현해 낼 때 나는 오롯이 잃어버린 시간과 재회한다. 


회억의 정서란 다분히 낭만 일색이기 쉽지만 때론 외면하고 싶은 상처와의 화해의 대면이기도 하다. 굳이 기쁨이 아닌들 어떠랴. 나는 가끔 그 풍경들과 만나고 싶다. 그리고 마침내 그 풍경과 하나가 되어도 좋겠다.


                                                                                                             - 출처 <수필과 비평>


■ 노 혜숙

≪수필과비평≫ 등단,  저서: ≪조르바의 춤≫.

2024학년도 한국대학 입시 분석 결과 리뷰

댓글 0 | 조회 411 | 2일전
2024학번 수험생들은 2020년부터 약 3년 여간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판데믹을 거치며 고등학교 3년 대부분을 보냈던 코로나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극단적으… 더보기

액티브 인베스터 플러스 비자

댓글 0 | 조회 438 | 2일전
뉴질랜드의 투자 기회를 높이는 액티브 인베스터 플러스 (Active Investor Plus Visa) 비자 소개중요한 발전으로, 액티브 인베스터 플러스 비자가 … 더보기

매일 아침 10분 모닝 요가

댓글 0 | 조회 194 | 2일전
아침마다 침대에서 나오기 힘드신 분들, 특히 눈은 떠져도 몸이 말을 듣질 않아 한참을 이불 안에서 뭉그적거리게 되는 분들을 위한 영상입니다. 굳이 매트를 찾아 깔… 더보기

장 건강의 중요성

댓글 0 | 조회 358 | 3일전
저는 한의사도 아니고 기능의학자도 아니며 자연치료사도 아니다. 다만 자연치료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저는 그들이 지향하는 치료 방향에 공감을 하며 그들… 더보기

가을논에서

댓글 0 | 조회 126 | 3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한적한 양구 벼 베낸 논에공 하나 들고 들어가논물 막았던 돌멩이로 골대 만들고혼자 이리저리 차며 논다지나던 논 주인일까뭐하슈어릴 적 생각이 … 더보기

참으로 좋은 삶, 늦복에 있네

댓글 0 | 조회 144 | 3일전
처음 영정사진을 찍었을 때가 육십대 후반 칠순을 목전에 두었을 즈음이다.친구들이 앞다투어 몰려가는데 나는 사실 가고싶지 않았다. 마음은 아직도 새파란 청춘인데 영… 더보기

우화루에 꽃비 내리는 날

댓글 0 | 조회 58 | 3일전
완주 화암사와 파주 보광사의 목어“이곳에도 부처님이 오실까요?” 가까스로 길을 물어 절에 다다랐을 때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무심코 새어나온 물음. 완주 불명산 시루… 더보기

왕초보를 위한 워크비자 입문서

댓글 0 | 조회 451 | 4일전
뉴질랜드에서 합법적인 노동을 하기 위한 최적의 비자는 단연코 워크비자(work visa)입니다. 워크비자가 아니더라도 세금(PAYE)을 납부하면서 당당하게 근무하… 더보기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댓글 0 | 조회 128 | 4일전
시인 이 해인먼 하늘노을지는 그 위에다가그간 안녕이라는 말보다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하자그대와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아련한 노을 함께 보기에 고맙다바람보다, 구름… 더보기

호흡이 안 되는 이유

댓글 0 | 조회 334 | 4일전
호흡이 안 되는 것은 대개 불안해서입니다. 초조하고 근심걱정이 많으면 가슴 부위에 기운이 뭉칩니다. 잡념이 많으면 호흡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지요. 숨 쉴 때만이라… 더보기

직원의 번아웃

댓글 0 | 조회 764 | 4일전
번아웃이란 과도한 업무량, 충분하지 않은 보상, 붕괴된 일과 사생활의 균형, 스트레스 등으로 발생하는 육체와 정신의 붕괴 현상을 말합니다. 피고용인이 번아웃에 빠… 더보기

체질이 궁금하세요?

댓글 0 | 조회 260 | 4일전
서양의학의 발전에 가려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던 한의학이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이것은 서양의학이 환자 자신이 느끼는 증세보… 더보기

뉴욕의 말똥 걱정, 그리고 파괴적 혁신기술

댓글 0 | 조회 229 | 4일전
아내가 암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중일 때에 누가 자기 혈액의 백혈구(NK세포)를 추출해 증식시켜 도로 주입하면 치유와 회복이 빠를 것이라고 해서 그걸 해 보았다. … 더보기

품위 있는 죽음(Well-dying)

댓글 0 | 조회 893 | 7일전
지난주 아내와 함께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1층 소재 메가박스에서 영화 <소풍>(러닝타임 114분)을 관람했다. 지난 2월 7일 개봉한 <소풍>… 더보기

리커넥트 “Care to Self-care?” 정신건강 프로젝트

댓글 0 | 조회 264 | 2024.03.13
리커넥트는 다가오는 4월을 시작으로, 정신건강이라는 주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웰빙을 향상하는 목표로 Henderson High School에서 “Care to… 더보기

건양하면 다경하다고?

댓글 0 | 조회 185 | 2024.03.13
1년을 24개로 나누어 절기(節氣)를 두니 한 절기는 반 달(15일) 만에 돌아온다. 절기의 시작은 입춘(立春)이고 올해는 2월 4일이다. 입춘이 지나고 15일(… 더보기

‘내 잘못’보다 ‘세상의 악’ 더 성찰해야 하는 사순절

댓글 0 | 조회 365 | 2024.03.13
지난 2월 14일 수요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 판결을 받은 날이면서, 교회성당에서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사순절, 즉 40일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죽음 이… 더보기

한 사람을 사랑했네

댓글 0 | 조회 357 | 2024.03.13
시인 이 정하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내 길보다자꾸만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네.함께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슬픔과 그리움은내 인생 전체를 … 더보기

우선순위가 있는 삶

댓글 0 | 조회 277 | 2024.03.13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갈등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의 우선 순위를 생각해보면서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더보기

호미로 일군 미각 혁명, 망경산사

댓글 0 | 조회 185 | 2024.03.13
사찰음식 초짜의 사찰 탐방기무던히 잘만 달리던 소나타가 비탈길을 만나 고속의 알피엠(rpm)으로 헐떡이더니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연이은 굽잇길에 휘청였다. 좌회… 더보기

욕실 리모델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댓글 0 | 조회 527 | 2024.03.13
안녕하세요. 넥서스 플러밍의 김도형입니다.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간 중 하나인 욕실을 새롭게 꾸미려고 할 때, 그 설렘이란 이루 말할 수 없죠. 하지만, 어… 더보기

입만 벌려도 턱이 너무 아파요 ㅠ ㅠ

댓글 0 | 조회 355 | 2024.03.13
말을 하거나 음식을 씹는 행위를 제외하고도 하루 중 우리의 턱관절은 침을 삼키기 위해 잠을 잘 때에는 1분에 1번, 잠을 자지 않을 때에는 1분에 2번 움직인다.… 더보기

기업 감사(audit)를 준비하는 방법

댓글 0 | 조회 398 | 2024.03.12
특정 규모의 기업들에게는 정기 감사는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감사를 위해 최대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재무를 준비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감사 준비는 철저해야 하며… 더보기

하체 집중 케어 요가

댓글 0 | 조회 375 | 2024.03.12
볼록한 앞벅지 1cm 얇아지는 운동과 스트레치“유독 앞벅지 살이 툭 튀어나와 고민이에요 ㅠㅠ”“이상하게 엉밑살(엉덩이 밑의 군살)에 살이 잘 안빠져요..”제 유튜… 더보기

남자의 마음

댓글 0 | 조회 297 | 2024.03.12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비가 그친 강물에마음 설레고 싶어홀로 강가를 걷다가심하게 넘어진 날약 발라주던 아내가그냥 넘어가지 않는다교회에 있어야 할 시간에땡땡이쳐 받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