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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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도 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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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진모 


말에도 뿌리가 있다. 어떤 말은 뿌리가 얕아 유행처럼 사라지는가 하면, 어떤 말은 뿌리가 깊어 왕조가 무너져도 살아남는 말이 있다. 그렇게 뿌리깊은 말 중에는 ‘人 間’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사이’라는 뜻의 이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그리하여 순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도 예외적으로 아끼는 한자어이다.


인간의 본질은 사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間)의 관계에 있다’는 그 심오함을 생각하면 마치 어두운 집안에 문(門) 이 열리고 그 사이로 해(日)가 드는 느낌(間) 이다. 그리하여, 이 인간이라는 말 속에는 오늘날의 말세의 병, ‘물질광신’을 치유할 수 있는 깨달음이 들어 있다고 주장을 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물질광신은 정신이 붕괴할 때 오는 질환이다. 인간의 정신성을 믿지 않는 정신질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주의가 낳는 허무를 견디기 위해 물질을 소비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인간은 욕망기계에 불과하다고 물질중독자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생태계의 약육강식은 진화의 바퀴를 굴리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후위기같은 ‘점진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콧방귀도 안 뀐다. 


기후위기도 적자생존을 위한 자연선택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물질로 치환하려는 물질주의는 증기기관차를 닮았다. 증기기관차는 미세한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데, 수증기는 욕망으로 들끓는 개인을 상징한다. 물이 물인 것인 물분자들 간의 연대고리가 길기 때문인데, 물분자들을 욕망으로 들끓게 하면, 개인들 간의 연대고리가, 마치 불어터진 라면처럼, 뚝뚝 끊어져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증기가 된다.


물의 욕망을 들끓게 하는 것은 자나 깨나 쉬지 않고 돌아가는 광고이다. 광고를 통하여 나는 욕망으로 들끓지만 그것은 나의 욕망이 아니라 물신의 욕망이다. 나는 물신의 욕망을 나의 욕망처럼 욕망한다. 물신에 들린 나는 물신의 세계지배를 위해 싸운다. 그러나 신앙을 위해 싸운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여자를 포함한 전리품과 신분상승, 즉 출세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자아중독이다. 자아에 중독되면 개인이 사회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그러한 자가당착은 아무리 건강한 사회도 오래 견딜수 없다. 신이 인간에게 이성의 불을 주었다면 그것은, 인간내면의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을 퇴치하라는, 그리하여 인간사회의 약육강식을 극복하라는, 뜻이었을텐데, 물신주의자들은 약육강식을 극복하기는 커녕, 세상에 악을 포화시켜 종말을 재촉하려는 듯, 인간과 생물을 가리지 않고 절멸의 벼랑으로 밀어 붙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물신의 이러한 죽임의 의지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걸 이해하려면 자본체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전쟁수행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평화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살리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처럼 그것은 ‘끝내기’ 위하여 태어난 것이다. 인간을 달에 실어간 아폴로로케트는 위대한 신세계로 인류를 실어 나르는 상징조작에 동원되었지만, 사실은 인류를 수십번 절멸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를 나르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그러한 전쟁놀음은 1989년에 이르러 동서냉전이 끝났음에도, 자본체제의 광기와 폭주는 멈추기는 커녕, 오히려 가속화되었다.


30년간 지속된 자본의 광란에 의해서 거덜난 지구는 생태위기의 벼랑 끝에 서 있다. 기울어 가는 배 속에서 사람들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갑판으로 박차고 올라가지 못한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교훈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반복하면서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일부 사실이기도 하다. 


미래를 위해 싸울 자유가 나에게는 없다는 생각은 ‘초식동물’들의 마음에 평화를 준다. 그것은 중독성이 있는 평화이다. 어디를 찔러도 피가 나오는 피부를 갖고 살아가는 삶은 늘 불안하다. 그러한 삶에게 빤쓰만 입은 물신이 찾아와 속삭인다. 재화가 너희를 구원하리라. 가난은 용서받지 못할 죄이니라. 그런데 그것은 불교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이다.


무지는 우리를 묶는 반면 깨달음이 우리를 풀어준다고, 석가는 말한다. 물질은 힘이고 그 힘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물신은 말하는데, 석가는, 물질은 정신을 가두는 감옥이라고 말한다. 소수에 의한 물질의 집중은 당연히 그것을 뺏긴 다수를 양산하여 빈곤과 굴종을 확산시킨다.


그럼에도 물질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은 힘이 세다. 그 이유는 우리는 살기 위하여 산 것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삶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삶은 우리를 먹이사슬과 모순의 사슬로 이중으로 묶는다. 우리를 회유하고자 물신은 말한다. 다수가 굴종하는데 너 혼자 반항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세뇌한다.


설령 너를 희생하여 세상이 바뀐다 하더라도 너 없는 세상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회유한다. 좋은 사람들은 요절하는데 도척은 천수를 누리고 전두환은 골프를 치는 것을 보라고,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은 신흥 기득권이 되고, 임진왜란에 쫓겨가면서도 선조를 둘러싼 간신들의 당파싸움은 오늘에도 지속된다고, 회유하는 사이 우리가 탄 배는 더욱 기울어간다.


사람은 얼어죽는 순간 아늑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것은 살고 싶지만 죽어야 하는 삶의 모순 속에 내장된 죽음의 의지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몽롱함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진실은 몽롱한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만, 거짓은 마음에 평화를 주면서 몰락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모순적인 존재이지만 자신을 묶은 모순을 하나씩 풀어나갈 때 인간은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예를 들어 ‘아는 것이 힘’이면서 ‘모르는게 약’이라는 모순이 있다. 이 모순을 풀어보면, 인간은 ‘진실(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용기)에 의해서 자유로워진다’는 뜻이 된다.


거짓이 우리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해도 그것은 결국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이성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갑판 위로 올라가 진실을 인양할 수 있다. 감추려는 자들은 ‘침몰원인’에 집중하며 문제를 호도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왜 구하지 않았는가?’이다. 세월호는 결국 선거조작으로 궁지에 몰린 국정원의 공작이라는 ‘북한공작설’과 최순실의 ‘인신공양설’ 두가지로 압축된다.


이 둘을 종합하여 인신공양을 북한 공작으로 위장하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휴전선 부근이 아니라 목포 앞바다에서 침몰된 사실은 북한공작을 핑계될 수 없음에도 학살을 감행했다는 인신공양설에 무게를 실어준다. 얼마나 미친 시대인가를 알려주는 부분이다. 그런데 ‘인신공양’이라니!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인가. 진실도 중요하지만 전세계의 이목도 있으니, 국제망신을 피하려고 진실을 덮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용기가 진실을 진실이게 만든다. 그러한 용기는 머리와 가슴이 만날 때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래야만 할 시기가 무르익었다. 생태위기를 마주한 상황에서는 ‘굴종의 평화’마저 오래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가축들을 살처분하듯, 힘없는 다수가 무자비하게 희생될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데, 알만한 사람들이 알면서도 침묵을 하는 이유는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실한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믿음도 상실한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러므로 각자도생을 위하여 우리가 함께 탄 방주(생태계)를 해체하여 조각배와 뗏목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감당할 수는 없다. 굴종에 의한 평화의 시대는 이미 지났으므로, 어느 쪽으로 붙을까 계산기를 두드리는 기회주의 시대도 이미 지났으므로, 진영논리에 빠져 맹목적 행동주의자가 되거나 냉소적인 방관자가 되는 것도 더 이상 의미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굴종하여 살아 남으려는 아집 또한, 석가의 말씀처럼, 그저 환각일 따름이다. 나의 흔들림은 나를 흔들고간 바람의 속성일 뿐, 나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人 間’은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 있을 뿐, 몸 속에 갇힌 무엇이 아니다. 그러므로 먼저 해야 할 일은‘인 간 회복’이다. 정신과 물질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사람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면 사회도 자연이 치유된다.


그러므로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이성과 가슴이 만나야 한다. 이성과 가슴의 만남은 활화산처럼 격렬하게 세상을 일시에 바꿔놓을 힘이 있다. 때로는 끊임없는 따스함으로 흐르는 온천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활화산은 지하수(이성)와 마그마(열정)이 만났을 때 터져오르는 근원적인 힘이다. 그러므로 머리와 가슴이 만날 때 우리는 겁이 난 아이처럼 엄마 등에 얼굴을 묻지 않고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죽임의 세력에 맞설 수 있다. 살겠다고 바둥거리는 어린 것들을 맘몬의 제단에 공양하려는 세력을 요절낼 수 있다. 생태와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 연대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지금은 위기극복의 성공가능성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옳은 방향으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를 위해 우리가 ‘나만큼은 예외’라는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의 꿈이 나의 생전에 이뤄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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