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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sane inside insanity(비정상 속에서 정상으로 살라).”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영국 영화 속 대사였다. 오늘 문득 이 대사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를,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가장 잘 설명 해 주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요즘 너무 어지럽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세계 어떤 나라가 안 그렇겠냐만 한국은 조금 심각한 수준이다.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이래 지금처럼 시끄럽고 어지러웠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보수-진보 이념 충돌의 장이자 데모의 상징적 장소가 된 광화문광장에서는 연일 집회가 열린다. 같은 날, 같은 시간 한쪽에서는 현 정권의 코로나 방역 실패를 규탄하는 교회집회가 열렸고,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노총 집회가 열렸다. 최근에는 여기에 의사들이 정부의 의사정원 확충 계획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파업에 나서 시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고, 수출규제 여파로 수개월째 진행되고 있는 일본 불매운동을 외치는 사람들도 거리로 나왔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난달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임대인들의 항의 집회도 빈번하고, 코로나19의 폭발적 확산세로 인해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자 강제로 가게 문을 닫게 된 PC방, 노래방, 등의 자영업자들도 데모에 가세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지금 엉망진창이다.
이렇게 한국의 무질서한 민낯을 마주할 때면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뉴질랜드로 다시 가야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아버지는 뉴질랜드를 ‘무질서’ 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나라로 인식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조금은 단조롭지만, 그래서 평화로운 곳. 늘 뉴질랜드에 있는 친구들에게 그곳 소식을 듣는 나는 오클랜드의 코로나 경보 3단계 생활을 들었다. 그들의 불만은 기껏해야 모든 음식점이 문을 닫아 요리를 직접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거나 혹은 집 앞 정원에서만 운동을 해야 해서 답답하다는 것이 전부다. 뉴질랜드에 사는 사람들이 3단계 경보에 분노를 표출하며 아오테아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데모를 한다든지 또는 요리하기 싫어하는 주부들이 집단으로 플래카드를 들고 퀸스트리트에서 시위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뉴질랜드와는 확연히 다른 한국의 현 사정을 들려주었다. 주로 이런 내용들이었다.
-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청년이 마스크를 안 쓴 아저씨에게 마스크 쓸 것을 요청했다가 아저씨한테 우산으로 폭행당했다.
- 한 버스기사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객의 탑승을 제한하자, 그 승객이 버스기사의 목을 물어뜯었다.
- 코로나 확진자가 격리시설로 이송 중 자신을 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깨문 뒤 도주했다.
- 코로나 확진자가 자신만 확진된 것이 억울하고 분하다며 의료진에게 침을 뱉었다.
- 한 확진자는 자신의 확진 사실을 알면서도 숨긴 채 별다른 자가격리 없이 수일 동안 출근했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Oh my gosh”와 “Are you okay?”를 연발하며 나를 걱정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서 쏟아지는 한국의 어지러운 소식 때문일까. 아니면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아직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예약하지 못한 채, 코로나가 잠잠해지기만 기다려야 하는 현실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마주 앉아 한국과 뉴질랜드 양국의 시민 의식을 비교하며 그 어느 때보다 뉴질랜드가 그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