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소박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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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박이 (2)

0 개 1,686 수필기행

이민 10년차인 한씨아줌마는 남편이 한인교회에서 허드렛일을 봐주며 살아간다고 했다. 이민선배라고 해서 별반 사정이 나아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고향친구의 말만 믿고 이민 왔다가 몽땅 날리고 이제 겨우 안정이 되었다고 했다. 안정이 되었다는 말은 경제적인 안정이라기보다는 사기를 당하고 입은 상처로부터 몸과 마음을 이제야 겨우 추스르게 되었다는 의미로 보였다.


“네에, 난 내가 한 씨예요.”


한씨아줌마 역시 조금 전에 경애가 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했다.


“아줌마, 절 주방장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도 ‘한씨 아줌마’ 대신 ‘언니’라고 부를게요.”


마흔 아홉인 자신에겐 둘째 언니 터울쯤 되는 주방보조 한씨아줌마로부터 ‘주방장님’ 이라고 불리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해서였다.


“그럼 내가 뭐라고 부를까?”


“진수엄마요.”


“아하, 아들 이름이 진수구나. 그럼 그러지 뭐.”


경애는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자신이 진수의 엄마임을 스스로에게 새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 호칭을 바꾼 후로 두 사람 사이는 한결 친숙하고 편안해졌다. 가끔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삐딱한 분위기가 될 땐 ‘주방장님’ 이나 ‘한씨아줌마’로 돌아가긴 했지만.


“잠깐 나갔다 올게요.”


절여지고 있는 오이들을 확인하며 경애가 말한다. 한씨아줌마가 대답대신 바라본다. 어디 다녀올 거냐고 묻지도 않는다. 한씨아줌마는 성격 탓인지 아니면 타국 생활의 경험을 많이 한 탓인지 몰라도 비교적 사려가 깊다. 그런 한씨아줌마에 대한 예의로 한 박자 늦은 대답을 한다.


“은행에 잠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체국에도 아예 다녀 올 작정이다.


“알았어. 오래 걸리지 않지 진수엄마?”


“녜, 갔다 와서 이거 담을 테니까 양념 준비 끝내 놓으세요, 언니.”


경애는 앞치마를 벗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진다.


은행까지 걸어서 5분 거리, 그 동안 마음속에 오간 생각은 닷새 분량이다. 아니 5년치도 넘는 분량이다. 진수 통장으로 3천불을 송금한다. 한화로 환산하면 3백만 원 조금 넘는 정도이다. 마음 같아서야 이곳으로 데려와서 공부시키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그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열심히 모은 돈이다. 경애에겐 큰돈이면서 적은 돈 이기도 하다. 진수의 대학 등록금에 보태고 싶었다. 물론 경주가 염려 말라곤 했지만 어미로써 그냥 말 수가 없다.


은행에서 나와서 근처의 우체국코너가 있는 대형 잡화점 샤퍼즈 드럭 마트(Shoppers Drug Mart)로 간다. 먼저 카드 판매코너로 가서 한 동안 살펴보다가 ‘Love’라고 인쇄되어 있는 카드 한 장을 골라 창가의 의자로 간다. 처음으로 부치는 카드. 가슴이 떨린다. 떨리는 손가락에 힘을 모아 자신의 가슴에 박음질 하듯이 천천히 써 내려간다.


<미안해 진수야. 힘들지? 조금만 기다려줘. 전문대학 간다면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리라고 믿어. 고마워, 언제나 엄마가 미안! >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해서 미안하다는 말로 끝나는 이 짤막한 문장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동안 가슴 속에 쌓여있는 말들이 고작 이것 뿐 이라니. 먹먹하기만 하다. ‘사랑해’ 라고 쓰고 싶었지만 ‘고마워’로 썼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언제 엄마가 나를 사랑했느냐고 진수가 따지고 대들 것만 같다. ‘언제나 엄마가 미안!’을 쓸 때쯤엔 울컥했다. 아직도 내가 엄마일 수 있을까? 아직도 어미 자격이 유효한가? 그래서 ‘이곳으로 너를 초청할게.’ 라는 말을 차마 쓰지 못했다. 불안한 미래를 짐작할 수도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장담했다가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진수를 더욱 실망 시킬 것 같아서다.


카드를 부치고 돌아오는 거리의 바람이 한결 서늘하다. 이번 겨울이 따뜻할 거란 예감이 들기도 한다. 아니, 이번 겨울은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바람결에 밀려온다.



잘 절여진 오이와 준비한 양념들을 알맞게 버무려 소를 박는다. 사흘 후면 제임스가 회사동료들을 몰고 오기로 한 예약 일이다. 제임스는 갓 담은 오이소박이도 좋아하지만 새콤한 맛이 날 정도로 숙성된 오이소박이를 더 좋아한다. 그 날짜에 맞추어서 제 맛을 살리려면 오늘 담아야 한다.


“역시 진수엄마 손맛이 최고라니까.”


한씨아줌마가 오이소박이 한쪽을 입에 넣고 씹으며 하는 말이다.


“간 맞죠, 언니?”


한씨아줌마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제를 돌린다.


“제임스 그 사람 참 괜찮아 보이잖아?”


은근히 속을 떠보지만 경애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마음을 열지 않는 경애가 안타깝다. 젊은 여자 혼자서 치루는 타국생활이 얼마나 힘들까? 자세한 내막이야 모르지만 자식 떼어놓고 혼자서 낯선 나라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보면 피치 못할 사연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돌아갈 것 같진 않으니 그럴 바엔 누군가와 맺어져 사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들어서다. 여전히 귓등으로 흘려보내며 버무려진 오이소박이를 항아리에 담는 경애가 얄미워서 목소리의 톤을 높인다.


“안 그래요, 주, 방, 장, 님?”


“여기 진수엄마 밖에 없는데요.”


“그거나 저거나……”


“뭐가 그거나 저거나예요? 어 다르고 아 다른데···”


경애는 자신의 발끈하는 기세에 눌린 한씨아줌마를 잠깐 눈 흘김으로 째려본다.


“숨죽여가며 들락날락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낮은 소리로 웅얼거리듯 하는 한씨 아줌마의 그 말은 영주권도 없이, 가끔 나이아가라를 통하여 미국영토로 나갔다 들어오기도 하는 등, 곡예를 하듯, 고비를 넘겨가며 체류기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경애도 안다.


“그런가요, 한, 씨, 아, 줌, 마?”


“이그. 알았어, 알았어, 진수엄마.”


속이 시원하지 않은 채 어설픈 웃음으로 그 순간을 봉합한다.


아리랑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게 되기까지 고생도 할 만큼 했고, 토론토바닥을 뒤질 만큼 뒤지기도 했다. 덕분에 이젠 토론토 시내의 한인사회 사정을 알 만큼 알게 되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20년 전에 이민 와서 간호보조사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생인 희숙이네 집 지하방신세를 졌다. 희숙이의 주선으로 희숙이가 근무하는 병원 건물의 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희숙에 대한 보답으로 짬을 내어 희숙이네 집 반찬을 만들어 주었다. 희숙은 경애가 만든 한식 반찬을 좋아했다. 혼자 먹기 아까운 맛이라고 하면서 주변의 한인들에게 입소문을 내던 것이 차차 돈을 받고 반찬을 공급기에 이르렀다. 반찬 솜씨가 알려지면서 어느 한인식당에서 반찬 납품을 요청받았다. 식재료를 사다가 주문하는 양만큼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건물 청소와 반찬 만들기, 투 잡(two job)이었다. 아니, ‘개새끼’를 찾기 위해 한인사회를 뒤지는 일까지 더한다면 쓰리잡(three job)이었다. 반찬주문을 하는 식당이 세 군데로 늘어나자 한인타운 근처에 수도시설과 난방시설이 되어있는 빈 공간을 얻어 독립했다. 일인용 중고간이침대를 사들이고, 싱크대와 요리할 수 있는 집기 몇 가지를 갖추었다.


‘개새끼’를 찾기 전에는 결코 토론토를 떠날 수 없었다.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이 더욱 절실해졌다. 경제적으로 자립만 된다면 진수와 시어머니를 모셔올 수 있다. 오로지 그 생각으로 쓰리 잡(three job)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에 한인타운의 아리랑 식당에서 고정으로 주방장으로 근무하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하늘이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곳에서 고정으로 일하며 월급을 받는 것도 좋지만 더하여 인권변호사인 아리랑식당 주인의 동생이 이민자들의 정착만이 아니라 불법 체류자들의 문제해결에도 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언젠가 그의 도움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언제든 처먹으러 나타나겠지. 지가 안 처먹고 견뎌? 나타나기만 해라. 구덩이 파놓고 기다리마!’


아리랑식당의 주방에서 일을 시작한 첫 날, 경애는 그렇게 이를 악물었다.


한국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교민들도 많지만 한국의 정통 음식 맛을 보고 싶은 카나다 사람을 포함한 외국인들도 상당수이다. 한국 사람들에겐 고향의 맛이고 외국인들에겐 한국의 맛이다. 집에서 주문받은 음식을 만들 때보다 훨씬 더 신경을 쓰며 반찬을 만들었다. 김치를 비롯하여 호박나물, 콩나물, 무나물, 배추나물 등의 한국식 나물류와 오징어채무침, 멸치볶음, 감자볶음, 땅콩조림 그리고 오이소박이 등이다. 한국 식당이면 다 하는 일반적인 반찬들이지만 주 요리와 함께 나오는 반찬들에 대한 평도 무시할 수가 없다.


경애가 일하기 시작하면서 아리랑식당의 음식 맛이 좋다는 평이 나돌고 손님들도 늘었다. 뭔가 특색 있는 자신만의 반찬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떠올린 것이 오래전 한국에서 살 때 주변에 인기 있었던 ‘경애표파김치’였다. 한국의 품종과 같은 쪽파가 없었다. 캐나다 산(産)의 파로 몇 차례 파김치를 담아봤다. 그 맛을 낼 수가 없었다. 마음을 바꿔 진수가 좋아하던 오이소박이를 담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의 오이와 똑같은 품종을 찾기 어려웠다. 한국의 오이를 최소한 서너 개는 합쳐야 할 만큼 큰 캐나다의 오이, 팔뚝만한 크기에서부터 사람을 질리게 했다. 맛도 없어 보인다. 실제로 맛도 없다. 다행히 육질이 단단하여 사각거리고 맛도 한국 오이와 비슷한 피클용이나 통조림용으로 쓰이는 품종을 발견했다. 여러 번의 실험과 이런 저런 궁리 끝에 담가낸 오이소박이가 한국에서의 담가 먹던 오이소박이처럼 사각거리고 고들고들, 맛이 좋았다. 아리랑식당을 찾아오는 한국 손님들은 물론, 한국음식이 좋아서 찾아오는 외국손님들도 오이소박이를 즐겨 찾았고, 오이소박이 때문에 단골이 되기도 했다. 주로 샐러드로 이용하거나 피클로 만들어 햄버거사이에 끼워 먹는 오이를 김치로 만들어 먹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달콤하면서 매운 맛이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셈이다. 손님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아리랑식당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경애에게는 가슴 아픈 메뉴이기도 하다.


■ 권 천학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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