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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겨울은 몹씨 음산하다. 눈내리고 얼음 어는 경우는 없지만 잦은 겨울비로 인해 체감온도는 무척 냉냉하다. 당연히 겨울 담요는 한결 포근하고 여러 가지 연료로 열을 발산해내는 난로를 가까이 하게 된다. 나이든 이에게 베풀어지는 난방비 지원제도가 있어 다행이지만 이런 온기만으로는 겨울을 넘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창 일할 때야 뭐 젊은 혈기로, 사랑을 넘칠 때는 연인의 온기로, 고뇌에 가득찬 장년기에는 알콜의 도수로 이겨낸다고 들 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위축된 이번같은 겨울은 그 상황이 녹녹치 않게 느껴진다. 특히나 비 내리는 저녁 추위와 공허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지혜를 동원하게 된다.
북극에서 겨울을 나야하는 백곰들은 겨울 추위에는 겨울잠을 잔다고 하질 않던가. 가을철에 열심히 먹어서 체중을 불린다음 눈 속에서 겨울을 넘기는 전략이다. 아무리 체중관리에 민감한 현대인 일지라도 두툼한 겨울 외투속에 약간은 늘어난 체중을 숨겨두게 된다면 이 또한 인간적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가을철 풍성한 수확물로 겨울철 따뜻한 보양식으로 조금은 느슨해 져야 하는 계절이다. 겨울철에는 음식이나 음료에도 따뜻하고 매운 맛을 더해보라는 전문가의 조언이다. 고유의 향기만으로도 즐거움이 뿌듯하겠지만 몸을 따뜻하게 하는 진정한 효과를 기대해 보면서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겨울철에 가장 흔하게 우리의 몸을 데우는 것에는 생강을 활용한다. 우리에게는 김치에 빼 놓을 수 없는 재료로 알고 있지만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겨울철이면 꼭 챙기는 식재료 알려지며, 또한 한약재로도 널리 이용된다. 어떤이는 설탕에 졸여서 말린 편강으로 어떤 때는 생강차로 그 활용도가 다양하다. 가을철 동네를 지나다 만나게 되는 생강을 달이는 강렬한 냄새는 커피향에도 뒤지지 않는다. 서양인들은 레몬과 꿀의 조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기에 생강을 곁들여 환상적인 조화를 이끌어 내려 한다.
다음으로는 계피를 들수 있다. 역사 이래로 주로 외국에서 아주 다양하게 활용되어 온 향신료에 속한다. 한국인들은 생강차에 섞어서 그 진가를 높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요리에 차에 그 이용새가 우리보다 더 다양하다. 또한 카레의 원료로 알려진 강황도 있다. 인도에는 음식과 차의 원료로 이용하지만 노란색을 내는 염료로 행운을 비는 주술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부엌 한켠에 말린 강황을 걸어 놓기까지 한다. 최근들어 한국에도 강황의 매력에 빠진이들이 점점 많아 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겨울철 콩나물국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고추가루의 매운맛도 우리 몸의 긴장된 근육과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 뿐아니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온갖 허브류에서도 이와 버금가는 긍정적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꿈속에서 형형색색의 찬란한 꽃들을 보았네
그렇지 5월의 꽃들이었어
풀밭도 보였지
거기에서 조잘대는 새들의 지저귀는 노래소리도 들었는 걸
하지만 새벽닭 우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다네
주변은 춥고 어두운데 지붕위에는 까마귀만 울고 있네
창문에는 누가 나뭇잎을 그려 놓았는가
지붕위에 몽상가를 비웃는 다면
어떻게 한겨울에 핀 꽃들을 볼 수 있겠는가
나는 아가씨와 진정한 사랑을 꿈꾸었네
한 마음이 되어 나눈 입맞춤
사랑의 기쁨과 환희를 느꼈었지
닭 우는 소리와 함께 내 심장은 고동치네
나는 여기 홀로 앉아 꿈을 그리고 있네
눈을 감으니 나의 심장은 다시 뜨겁게 요동치고 있다네
창문에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물들게 된다면
나의 사랑도 다시 돌아 올 수 있게 되는걸까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속의 ‘봄날의 꿈’에 나오는 구절이다.
19세기 독일의 시인 뮬러가 쓴 시에다 슈베르트가 곡을 붙였다. 이 노래를 디트리치 피셔-디스카우가 부른 음반이 널리 들려진다. 내가 이 연가곡을 처음 만난 것도 젊은 날의 겨울밤이었다. 문화방송 고전음악 해설가로 일 했던 한상우님의「나의 음악실」에서다. 그리고 겨울철이면 으레 한번쯤은 들어 왔다. 19세기 초 젊은 예술가들의 고뇌를 만나는 것도 추운 겨울밤의 작은 위안이었다.
다행이도 오클랜드에서는 한 겨울인데도 장미와 부겐빌리아의 꽃을 발견하게 된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일상 주변에서다. 뭐 제대로 핀 것들은 아니지만 한 두송이 핀 꽃이 애처럽게 바람에 날리고 있어 그런대로 꽃들의 정취를 읽어낼 수가 있다. 그리고 이웃집 담장에서 만나게 되는 붉거나 흰 동백꽃도 구성진 조 영남의「모란동백」을 떠올려서 한결 정겹다. 무엇보다 동네 군데군데 피어 있는 티부치나Tibouchina 꽃의 강렬한 보라색은 충격 그 자체다. 그 다음은 철 이르게 봄을 기리며 피어나는 자목련의 우아한 자태다. 이런 겨울 꽃들이 생활에 지친 겨울 나그네를 반기니 이 또한 위안이 아니겠는가.
비 내리는 겨울 저녁은 슈베르트의「겨울 나그네」를 만기 좋은 시간이다.
‘거리의 악사여/ 당신의 여정에 나를 데려가 주렴/ 그리고 나의 노래도 연주해 주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