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소박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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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박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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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라먹을 짜식!”


입안의 담뱃가루를 뱉어내듯, 뱉어낸다. 아리랑식당의 뒤뜰, 울타리 가의 벤치 위에 쏟아지는 오후 3시의 초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경애는 주방장 모자를 벗어 벤치 위에 떨어진 햇살을 툭툭 날려버리고 걸터앉자마자 앞치마의 주머니에서 담배부터 꺼내 문다. ‘진수가 전문대학 한식요리과를 지원했어. 언니, 놀랐지? 너무 뜻밖이라서 나도 놀랐어.’ 방금 끝낸 전화기 속에서 튀어나온 경주의 말이 귓가에서 뱅뱅 돈다. ‘너 혹시 진수에게 내가 식당주방에서 일한다는 말 한 거 아냐?’ 너무 어이없어서 지난 일을 확인했다. ‘아~니, 안했어. 언니가 그 말을 하지 말랬잖아.’ 경주는 완강하게 부인했다.


경애가 주방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수에게 말하지 말라고 경주에게 당부한 것은 진수가 힘든 엄마의 처지를 생각하며 자포자기에 빠질까봐서였다. 머지않아 스스로 옷 가게를 차리거나 조그만 식당이라도 차려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진수를 데려올 작정이라고, 좀 성급하지만 이른 언질을 준 것도, 사실 지금 상황으로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더 진수에겐 희망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수가 4년제가 아닌 전문대학을 간다니. 더구나 한식요리과를 택하다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엄마가 미워서 맞지 않는 신을 억지로 꿰신으려고 하는 것만 같다. 어미에 대한 반감으로 빗나간 걸까? 아이의 적성도 모르게 떨어져 산 5년 넘는 세월이 또 다시 죄의식으로 덮쳐온다. 삶이 이토록 빗나갈 줄이야. 이게 다 내 탓이지. 아니 그 ‘개새끼’ ‘배라먹을 짜식’ 탓이지.  


여자라 해서 다 요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경애가 그렇다. 어릴 때 가끔 어머니를 도와 밥상을 차리면 식구들이 맛있다고 했었다. 어쩌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가지나물을 만들어 상에 올리면 아버지는 늘 ‘니 엄마가 한 것 보다 더 맛이 있구나’ 했었다. 그것은 빵 공장에서 일하고 늦게 퇴근하는 엄마 대신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경애에게 미안함을 대신한 칭찬이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결혼 후에도 주변에서 경애가 담근 파김치는 유난히 맛있다고들 했다. 남편은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경애표 파김치’ 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애 자신이 요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거나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방장이 되다니. 요리가 삶의 방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진수까지 요리를 전공하겠다니. 참 묘하게 되는구나 싶다.


9월, 벌써 들쭉날쭉 늘어선 지붕들 너머로 보이는 크리스티 피츠 파크(Christie Pits Park)의 나무들이 가을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가슴에 맺힌 울분도 가을을 맞이하여 색이 바래지는 나뭇잎처럼 바래지면 좋으련만, 턱도 없다. 경주와의 통화로 오히려 묵직한 쇳덩이가 가슴에 얹히고 그 ‘배라먹을 짜식’에 대한 분이 다시금 치밀어온다.


“개새끼!”


입술 양 끝이 당겨질 정도로 혀에 힘을 주어 더 독하게 뱉어낸다.


처음엔 그냥 ‘빌어먹을 자식’ 이라고 했었다.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말을 비틀어 ‘배라먹을 짜식’ 이라고 했지만 그걸로도 부족하여 ‘개새끼!’ 라는 한 마디를 더 붙였다. 그 욕 두 마디로 마음을 다 풀어낼 수는 없지만, 당장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속에 쌓인 울화 한 귀퉁이를 눈곱만큼이라도 삭여내는 기분이어서 치밀어 오를 때마다 내뱉다보니 입버릇이 되어 마치 육자배기의 후렴처럼 된지 오래다.


오늘따라 그 육자배기를 뱉어 내도 시원치가 않다. 점심식사 시간이 끝나고 저녁식사 준비에 들어가기 직전에 잠깐 나와 피우는 담배의 꿀맛도 사라졌다.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고 나서 가슴 밑바닥에 니코틴과 버무려져 고여 있을 울분을 뽑아내기라도 하듯, 후욱~ 머금은 연기를 길게 토해낸다. 어디 4년제 대학만 대학이냐. 중요한 시기에 어미 떨어져 할머니와 살면서 이모의 보살핌을 받았으니 뭔들 충분할 것이며 뭔들 힘들지 않을까. 다 내 탓이고 내 잘못이지. 그래, 전문대학이라도 가서 취업이라도 하겠다니 그것만 해도 신통방통이지.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고 있는데 경주의 다그치듯 한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그나저나 언닌 어때? 건강하구? 언니 일이 풀려야 오든지 가든지 빨리 합치지. 진수 할머니도 연세 치곤 아직까지는 짱짱하시지만 그래도 어디 노인네 건강 믿을 수 있어? 그러니까 언니, 언니가 빨리 마음잡기 위해서라도 포기할 건 포기해버려. 이제 분을 삭일 때도 됐잖아.’ 



분을 삭일 때가 됐다고? 흥,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마지막 화풀이라도 하듯 타고 있는 담뱃불을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슬리퍼 뒤꿈치로 거칠게 눌러 비벼 끈 꽁초를 마당 귀퉁이에 줄 서 놓여있는 세 개의 쓰레기통을 향하여 던진다. 아까부터 쓰레기통을 들락거리던 갈매기 서너 마리가 움찔 하다가 계속해서 쓰레기통 주변을 알짱거린다.


“뭐 먹잘 게 있다고…… 쯧!”


처음 그 ‘배라먹을 짜식’이 있다는 소문을 따라 낯선 몬트리올을 떠돌 때, 도시의 지붕에서 날고 있는 기러기가 신기했다. 비둘기라면 모르지만 웬 기러기? 나처럼 길을 잃었나? 다시 소문을 따라 토론토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살면서 기러기는 바닷새이거나, 시리게 푸른 가을 창공을 가로질러 먼 길을 가는 철새라는 정도의 상식을 가진 경애에게는 뜬금없는 새였다. 그런데 기러기가 아니라 갈매기라는 것을 알았다. 알았지만 기러기나 갈매기나 경애에겐 낯선 곳을 떠도는 외롭고 썰렁한 존재임에는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불쑥 떠오르는 노래 한 가닥, 아주 오래 전 기억 속의 노래 한 소절을 웅얼거리곤 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하긴, 쓰레기통 뒤지는 니 신세나 낯선 땅에서 헤매는 내 신세나…… 그게 다...”


육자배기가 또 튀어나오려는 순간 식당의 뒷문이 열리며 주방 보조인 한씨아줌마가 얼굴을 내민다.


“오이 배달 왔어. 진수엄마. 지금 절일까?”


“그러세요.”


한씨아줌마의 모습이 안으로 사라지자 경애는 벤치에서 일어나 옆에 놓았던 주방장 모자를 들어 허벅지 위를 탈탈 턴다. 마치 그 ‘개새끼’를 두드려 패기라도 하듯이.    


아리랑식당의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한 첫날, 주문 받은 오징어볶음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바짝 달아오른 프라이팬에서 차르르 차르르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르던 물방울 하나가 얼굴로 튀었다. 순간적으로 앗 뜨거! 개새끼! 하면서 한걸음 물러섰다. 이어서 ‘배라먹을 짜식!’ 하고. 그리고 계속해서 뒤지개로 팬을 뒤집어가면서 ‘개새끼!’ ‘배라먹을 짜식!’ 자신도 모르게 육자배기를 연발했다. 곁에서 일하던 한씨아줌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다음부턴 오징어 볶음 주문받지 말까요 주방장니임?”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간 육자배기 때문이라는 걸 직감했다. 어쩌면 경애가 오징어볶음 요리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못 들은척했다. 뜨악한 표정으로 오징어볶음을 서빙하고 주방으로 돌아온 한씨아줌마가 경애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주방장님, 저어 다음부턴 오징어볶음……”


“왜요? 주문 많이 받아야지요. 그래야 장사가 잘되죠. 장사가 잘돼야 아줌마나 나나 월급도 많이 받을 수 있을 거 아녜요?”


경애가 말허리를 자르고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오히려 야릇해진 것은 한씨아줌마였다.


“참, 아줌마 성이 한 씨라고 했죠?”


분위기를 바꾸며 경애가 물었다.


“네에-. 왜요?”


말꼬리를 길게 빼는 한씨아줌마는 이상하다는 기색이다. ‘내가 찾는 ‘배라먹을 개새끼’가 한 씨라서요.’ 하고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한 씨라고 하는 ‘개자식’이 있어서요’ 하는 말도 혀 아래 눌러버렸다.


“여기 사는 한국 사람들 중에는 여기 식으로 남편 성을 따라 쓰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한씨아줌마도 그런가해서요.”


  ■ 권 천학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 소설을 게재하는 지면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편의상 <수필기행>난에 싣게 되었음을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2010년 경희해외동포문학상 대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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