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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은 전 세계에 잘 알려져 있을 만큼 유명하다. “뉴질랜드에서는 사진을 어떻게 찍어도 모두 엽서가 되고, 한 장의 포스터가 된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국의 많은 여행업체 역시 뉴질랜드 관광 상품을 홍보할 때면 ‘대자연의 절경과 마주할 수 있는 곳’, ‘드넓은 대지를 가득 채우는 경이로운 대자연’, ‘자연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 등등의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한다. 공기는 또 어떠한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공기로 알려진 뉴질랜드 공기는 패트병에 담아 판매되기도 한다. 맑은 날은 누가 널어놓은 듯한 조각구름이 하늘에 떠다니고, 비가 온 날이면 어김없이 무지개가 뜬다. 그런 지상낙원 같은 섬에서 살다 와서인지 그 어디를 가더라도 눈에 들어오는 곳도, 맘에 드는 곳도 없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 초반 5년간은 비자 문제로 인해 정기적으로 한국에서 출국해야 했다. 늘 계획 없이 쫓기듯 한국땅을 떠나야 했던 터라 원하는 곳으로 가기보단 가깝거나 혹은 그때그때 비행기표 가격이 저렴하게 풀렸던 나라에 다녔었다. 그런데 어디를 가도 참 지저분했다. 선진국이라던 미국에서는 쥐떼와 같은 지하철을 타고 여행을 해야 했고, 볼거리 많다던 프랑스는 차들과 사람들 모두 무질서했으며, 네덜란드에서는 거리마다 풍기는 대마초 냄새를 견디기 힘들었다. 중국에서는 모래가 나오는 물로 샤워를 해야 했고, 대만에서는 왜 대만이 ‘쓰레기 섬’ 이라고 불리는지 알게 되었다. 어디를 가도 뉴질랜드만한 곳이 없었다.
한국에서의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하다는 폭포를 보러 가도, 공기 좋다고 소문난 곳에 가봐도, 멋진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산에 올라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나도 이제 한국에 많이 익숙해졌는지 어느 순간부터 간간이 이쁜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봄에 잠깐 피고 지는 벚꽃도, 여름의 푸르름도, 가을의 오색 단풍도, 겨울의 눈 덮인 산도 이제 제법 이뻐 보인다. 물론 뉴질랜드와 같은 장대함이나 장엄함은 없다. 뉴질랜드의 호수처럼 그렇게 광활하지도 않고, 뉴질랜드의 초원처럼 드넓지도 않다. 하지만 한국의 경치는 뭔가 아기자기함이 있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에는 시시하다며 시큰둥했었는데 이제는 같은 풍경을 보고 한국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그 어떤 풍경을 보고도 “뉴질랜드보다 덜 웅장하네”, “뉴질랜드 호수랑은 다르네”, “뉴질랜드 산보다 덜 푸르네” 등등 늘 뉴질랜드와 비교하며 한국 그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한국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도 아름답구나”, “한국은 한국 고유의 한옥 문화가 참 독특하네”, “한국은 각 계절마다 경치가 바껴서 볼거리가 다채롭다” 등의 생각이 절로 든다.
최근에 이런 이야기를 엄마와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엄마는 나와 반대의 이야기는 한다. 엄마는 한국의 모든 것은 다 아름답게 느껴졌었는데 뉴질랜드로 이민 가서 본 풍경은 너무 넓기만 하고 따스함이 없었다고 한다. 차로 가도 가도 계속 길만 나오고, 걸어도 걸어도 계속 호수만 펼쳐지는 뉴질랜드 풍경이 마치 뉴질랜드의 생활만큼 단조롭고 심심했었나 보다.
요즘은 한국의 장마철이라 며칠째 계속 비만 온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비록 내가 살았던 지상낙원의 섬 뉴질랜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의 내 눈에는 한국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