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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에 남자들은
소월을 알기 전에
이발소에 걸린 액자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푸쉬킨부터 알았다
이어지는 싯구는 외우지 못하고
단 두 줄만 읊조리며
하나같이 순결한 시인이 되었다
이발소 주인이
깍고 난 머리를
빨래비누로 감겨주고
양손에 잡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말려 줄 때
주름지게 눈 감았던 시인들은
거울에 비친 단정한 모습에
더 이상 삶에 속지 않겠다며
고매한 각오로 이발소를 나섰다가
몇 발자국 못가
가난한 대문을 들어서며
주머니에 빈 바람만 있어
시인은 다시
어느 집의 남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