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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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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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이랑 

 

텅 빈 가게, 빛바랜 간판만이 여기가 한때 버림받은 책들의 처소였음을 알린다. 아무런 안내가 없는 것으로 보아 머지않아 지도에서 사라질 모양이다. 발품을 보태 법서를 사던 시절부터 허기를 채워준 곳인데, 허전한 걸음으로 나는 다른 보물섬을 찾아 떠난다. 

 

헌책방의 질서는 뒤죽박죽이다. 정해진 자리는 형식일뿐 계급이나 서열이 없다. 펄벅의 대지 위에 한국의 야생화가 피고 백과사전에 눌린 시집이 숨을 못 쉬겠다고 엄살을 떠는가 하면, 돈키호테가 이순신 장군에게 창을 겨누어 어서 칼을 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큰스님의 어깨에 발을 척 걸친 동화를 보며 명랑만화가 깔깔거리고 명심보감이 옆에서 웃음을 꾹 참으며 앉아 있다. 법전을 깔고 앉은 사형수의 참회록과 명작 위에 드러누워 낮잠을 즐기는 잡지는 단연 압권이다.

 

설욕을 벼르는가, 예리한 지혜에 탄탄한 논리를 입고도 무명 한 조각만 걸친 화보에 패한 철학이 침묵하고 있다. 처세술만 찾는 세사에게 단단히 삐쳤는지, 인문학은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바깥에는 저고리에 지문조차 찍히지 못하고 소박맞은 시집과 나이조차 까맣게 잊은 수필집이 단체로 결박당한 채 마지막 봄 햇살을 쐬고 있다. 지릿값도 못 한 죄 저들은 곧 저울대에 올라 영혼이 가난한 세상에게 동전 몇 닢 건네고 떠날 것이다.

 

한물간 몸이지만 세상에게 할 말은 있다. 책상에 빳빳이 서서 지적 허영의 배경이 되는 건 싫다. 방구석에서 뒹굴다가 냄비 밑에 깔려 뜨거운 맛을 보느니 싸늘한 아랫목을 데우는 불쏘시개가 낫다. 가난한 고시생의 법서처럼 몸이 닳도록 읽히고 싶다. 서점 창고에서도 밀려나 산골로 전학 온 소녀처럼 옷자락에 먼지가 묻을까 새침을 떨고 있는 새 책은 아직 모른다. 발 나비에게 탐닉당하지 못하고 스러지는 꽃의 슬픔을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에 지나간 시간을 잡아두는 곳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과거로 유폐되었을까. 성벽 같은 책장과 지층처럼 쌓여있는 책 속에 묻히며 나는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떠난 방랑자다. 역사의 강물에서 노를 젓다가 티베트에서 불어오는 명상의 바람에 마음을 실어도 본다. 눈에 띄는 책장을 훑다가 잘 우려낸 문향에 취해 언어의 소우주를 유영하기도 한다. 이곳저곳 뒤지다가 반짝이는 무엇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은 방금 제본을 마친 신간보다 새것이다.

 

활자로 낸 길을 가다보면 누군가의 흔적을 만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가 있는가 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가라는 신호도 있다. 앞서 간 사람은 어째서 줄을 주욱 긋고 그 위에다 빨간 별을 켜놓았을까.  마음의 풍경이 울리는 바람의 길목이거나, 반짝이는 깨달음 한 조각 주운 곳이거나, 아니면 문장 너머에 있는 함수를 풀지 못해 건너뛴 자리일 것이다. 나보다 먼저 떠난 사람이 몇 번이고 되돌아와 서성거린 자리에서 나는 이 땅에 온 영혼들의 지적 방랑을 읽는다.

 

존재의 의미를 찾아 형이상을 헤매는 철학자, 태초에 생성된 미립자를 찾아 까마득한 밤하늘을 떠도는 천체물리학자, 진화의 고리를 찾아 황량한 사막을 헤치는 생물학자, 문명의 사금파리를 찾아 굳은 땅을 파는 고고학자, 혼돈에서 진리의 조각을 찾는 방랑자는 외롭다. 아니, 깨달음을 찾아 홀연히 떠난 붓다만큼 고독해야 한다. 과거로 떠난 것들이 퇴적된 세계는 두꺼운 침묵으로 말을 하기에.

 

배낭을 매고 홀로 변산반도로 떠난 적이 있다. 이 땅의 숨은 연대기가 차곡차곡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채석강, 지층을 몇 장 넘기면 백제의 병졸이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지르고, 몇 권 넘기면 털복숭이 조상이 사전에 없는 말을 걸어오고, 계속 넘기면 공룡이 달려들 것 같은 풍경은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발아래에서 파도가 뭐라고 철썩거리는데, 두꺼운 시간의 지층 앞에서 나는 한없이 납작해지고 말았으니, 반세기 동안 써내려온 내 일기는 낱장에 지나지 않음을 그 날에야 알았다.

 

나를 읽으면, 목마른 세상을 적시는 물 한 잔이나 될까. 영혼의 때를 한 소절 시도 아니고 내면의 풍경 소리를 깨우는 한줄기 법문은 더욱 아니다. 사람이 향기가 그리운 가슴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산문이라면 자릿값이라도 하겠으나 통속소설처럼 자기도취에 빠져 나열한 활자, 내 전기도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구석에서 웅크리다가 폐기될 지 모른다. 미리 알았다면 기승전결이라도 갖추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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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성찰하고 교정했다면 문장이 얄팍하지는 않았을 것을. 헌 책방에는 지난 삶을 뒤져 나를 재발견하는 내가 있다.  

 

내 삶도 반 이상이 과거로 퇴적하였다. 인생 이모작을 꿈꾸며 몸값을 한껏 낮추어도 불러주는 곳이 없어 이제는 정착할 기슭을 찾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 시인지 소설인지 정체성을 찾는 잡지처럼 표류하다가 외딴 헌 책방에 닿았을 때 산란한 마음이 정돈되는 까닭은 왜일까. 내일을 위해 오늘을 알뜰하게 살지만 내일은 오늘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낡고 닳아 쓸모없이 보여도 어제는 오늘에게  추억과 지혜 그리고 마음의 휴식을 준다. 어제의 모든 것이 한 자로 정돈되는 헌 책방에서 헌, 그것은 온고지신의 미학을 품은 단음절 언어이기 때문이리라.

 

고독한 방랑자들이 찾아낸 지식과 사상의 채석강, 헌책방에서 알았다. 반짝이는 것은 현란한 조명 아래 나 보란 듯 서 있는 게 아니라 삶의 뒷면에 아니 보일듯 숨어있음을,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그동안 못다 읽은 책장을 넘기다가 찾았다. 뒤죽박죽 내 안의 우주에 질서를 잡는 것은 두껍고 근엄한 법전이나 얇고 약삭빠른 처세술이 아니라 허름하고 컴컴한 구석에서 스스로 캐낸 별임을.

책은 해져도 활자에 담긴 의미는 낡지 않는다. 시대의 조류에 쓸려 헌책방이 사라져도 어느 날 문득 우리는 길을 떠날 것이다. 지금은 금맥을 찾아 도시라는 이름의 정글을 뒤지지만, 멍석자리에 누워 별을 헤던 우리는 누구나 별똥별 주우러 산 너머로 지적 방랑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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