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분자에 취한 민물장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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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에 취한 민물장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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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동백꽃이 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동백꽃이 지는 건 독특하다. 꽃잎이 바람에 날리거나 시들고 빛깔이 바래서 지는 다른 꽃들과는 달리 동백은 너무나도 멀쩡한 상태에서 문득 봉오리 전체가 뚝 떨어져 버린다. 그러니 떨어지는 소리까지 귀에 들릴 정도다. 그래서 동백꽃이 지는 걸 본다고 하지 않고 듣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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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고창 선운사엔 가을이면 단풍도 예외없이 붉겠지만‘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붉은 꽃무릇이 도솔천을 따라 가득하다. 고창은 무려 64년에 걸쳐 900여편의 시를 남긴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시들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선운사 동구’ 라는 시는,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그의 시는 눈이 아니고 입으로 소리내서 읽어야만 마음을 울린다. 

 

고창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재된 청정자연생태환경도시다. 고창의 명품으론 수박을 포함해서 역시 복분자와 풍천장어다. 복분자는 외국정상들과의 회담에서 만찬주로 사용될 정도로 한국의 국가브랜드중의 하나이며 안토시아닌과 비타민 A, C 그리고 각종 미네랄과 항산화 효능이 뛰어난 대표적인 컬러푸드이기도 하다. 나무딸기의 일종인 복분자(覆盆子)의 유래에 대해서는 명나라 때 한의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두 가지의 설이 있다. 첫째는 열매의 생김새가 물동이(盆)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데서 생겼다는 설이다. 둘째는 복분자 술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로 복분자를 먹고 소변을 누면 요강이 엎어질 정도로 원기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복분자는 혈액 순환을 돕고 강장제로 알려져 있다. 장미과의 복분자는 달고 신맛이 나며 성질은 따뜻하다. 주로 간(肝)과 신장을 보호해 주고 눈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 복분자의 검은색을 띠는 안토시아닌은 노화와 암을 예방하고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는 효능이 있어 여성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선운사에서 곰소만으로 흘러 드는 인천강과 서해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잡히는 뱀장어인 풍천장어는 누구나 다 아는 민물장어중에 최고의 보양식이다. 특히 육질이 쫄깃하고 맛이 고소하고 담백해서 최상품으로 친다. 주변에서 염전을 할 정도로 완만한 인천강은 바닷물과 섞이는 지역이 10km에 이르고 밀물 때 바닷물이 강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바람을 이끌고 온다고 해서 풍천이라고 불리는데 그래서 이곳에서 잡힌 민물장어에 풍천(風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실뱀장어가 민물에 올라와서 7-9년을 성장하다가 산란을 위해 태평양 깊은 곳으로 회유하기 전에 이곳에 머물게 된다. 원기회복 식품인 장어는 체내 독소를 배출해 피부미용에 도움을 주며 칼슘과 인, 철분도 많이 함유하고 있어 허약체질 개선이나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 또한 뇌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레시틴도 많아 학습능력과 기억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운산에서 자라나는 복분자는 해풍을 맞고 자라난다. 와인이 생산된 지역과 발효 숙성과정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이 복분자도 그렇다. 보통의 경우 3개월 발효후에 8개월 숙성을 해서 대중적인 16도짜리 복분자주가 만들어진다.  그후에 계속해서 1년을 더 숙성시키면 맛이 좀더 부드러워지고 19도정도가 된다. 고창 복분자주는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9년 북한 방문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로 전달되면서 명성을 얻게 됐으며 제3차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 건배주로 사용되면서 그 위상을 더욱 굳혔다. 달콤쌉쌀한 맛도 좋지만 숙취가 없다고 알려진 복분자는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루며 묵직한 바디감이 좋다. 향긋한 맛과 달콤한 향이 숯불에 굽는 장어구이와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 전통주인 복분자주가 레드 와인(red wine)을 뛰어넘는 항산화, 항암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제조법이나 맛에서 유럽의 들판에 널리 자라고 있는 산딸기나 블랙 커런트를 이용해 담근 크렘 드 카시스(Creme De Cassis)와 비슷하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리큐르 중 하나이며, 특히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가장 좋아하는 술로 등장하기도 한다. 고창의 복분자주는 ‘보성 녹차’ 등에 이어 지리적 표시제 3호로 등록됨에 따라 프랑스 코냑처럼 국제적으로 원산지 명칭의 개념으로도 보호받고 있다. 타 지역보다 고창의 복분자가 고품질일 수 있는 이유는 게르마늄과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 해풍, 1915시간이라는 최대의 일조량과 무상기일(서리가 내리지 않는 기간) 194일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과실주라고 하면 각종 과실에 소주를 부어 숙성시킨 것으로 인식돼 왔지만 복분자 주는 90% 이상이 유기 농법으로 재배한 열매를 그대로 발효시킨 발효와인이다. 

 

오백 년 묵은 선운사의 동백꽃이 떨어지는 광경을 소설가 김훈은 이렇게 말했다.‘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러운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여름의 문턱에 선 타향에서 온더락(On the Rock)잔에 얼음 몇 개 가라앉힌 복분자주를 들고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다 문득 천천히 선분홍 빛깔로 변해가는 술을 바라보니 천년 고찰 선운사의 고승(高僧)이 던지는 선문답(禪問答)같은 동백(冬柏)의 청초함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의 가슴을 알싸하게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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