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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음에 내가 있네

0 개 1,967 김지향

9월 20일부터 사흘 동안 파미에서 9회 NZ National Orchid Expo를 했다. 큰애와 함께 토요일인 21일에 행사장에 가서 전국 곳곳에서 상을 받은 양란들의 뽐내는 모습을 보며 내 눈이 호사를 누렸다. 그 뿐만 아니라 예쁜 양란도 사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시장에서 산 흙과 함께 화분에 양란을 심고 그곳에서 산 영양제를 넣은 물을 흠뻑 주었다. 

 

꺾은 꽃들로 꽃꽂이하기를 좋아했지만, 이번에는 양란을 한 번 키워보기로 작정을 했기에 판매원한테 이런저런 정보를 물어 보다가 양란의 수명이 백년이란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화려하고 밝은 보랏빛의 양란이 내 눈길을 끌었다. 둥글 넙적한 7개의 잎들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사이로 꽃대 하나가 쑥 올라와 있었다. 늘씬한 꽃대 위로 두 개의 곁가지가 사이좋게 뻗어 있고, 4 송이의 꽃들이 아름답게 웃고 있었으며, 아직 눈을 뜨지 않은 꽃 몽우리들이 20개나 더 가지에 줄을 지어 매달려 있었다. 고민할 시간도 없이 그 꽃은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양란 화분은 내 책상의 왼쪽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의 일조량이 양란에게 제일 적합한 것 같아서 결정한 일이다. 가족들을 위해 거실에 놓으려 했었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결국 내 방을 선택했는데,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고혹적인 친구와 늘 함께 할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였다. 이름을 지어 주고 싶었지만, 아직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언젠가 잘 어울리는 이름이 생각나겠지.

토요일은 남편이 꽃을 사오는 날이다. 토요마켓에서 꽃 할아버지의 꽃만을 사기에 꽃 종류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농장에서 갓 꺾어 온 꽃들이라서 꽃들이 아주 싱싱하고 좋다. 꽃 종류가 적다 보니 남편이 꽃을 고르기가 편한가 보다. 나름대로 매 번 다른 색의 꽃들로 변화를 주면서 사오기에 그 꽃들로 꽃꽂이를 하는 즐거움도 크다.

 


 

요즘 릴리와 아이리스 그리고 튤립이 제 철인 듯. 남편은 빨간 튤립과 하얀 릴리, 그리고 흰 바탕에 노란 무늬가 곁들여진 아이리스를 사왔다. $10에 이렇듯 풍성한 꽃들을 주시는 할아버지의 따스한 마음 덕분에 내 행복은 날개를 단다. 

 

토요마켓에서 꽈배기를 팔면서 엮은 인연이 이렇듯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해주니, 축복이 따로 없다. 크리스마스에 할아버지의 꽃들로 엮은 사진첩을 만들어 선물해야겠다. 그 사진첩이 할아버지께 아주 좋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양란을 집에 들여 놓으니 할아버지 농장에서 온 꽃들이 시샘을 하나 보다. 다른 때보다도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고 있다. 너무나도 튼실하여 꽃잎들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같은 흙 속에서 피는 꽃들도 아닌데, 그저 서로 한 지붕 아래에 있는데도 에너지가 넘쳐 난다. 양란과 달리 뿌리가 없어 짧은 생명의 꽃들이지만, 꽃병속의 물을 있는 힘껏 빨아들이면서 강한 생명력을 불사른다. 우주의 모든 것들이 혼자이면서도 모두다 하나이듯, 꽃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

꽃꽂이를 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서 친구 사돈댁에 놀러갔었다가 곱게 한복을 입고 계신 사돈어른한테 그만 반해버렸다. 평생 한복만 입으셔서 한복이 가장 편하신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셨다. 한복 차림으로 꽃을 꽂으시는 모습을 보고는 그날부터 그분의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그분이 좋아서 꽃을 꽂다가 꽃이 좋아서 꽃을 꽂게 되었다. 

 

꽃도 얼굴이 있다. 같은 종류의 꽃인데도 얼굴이 하나같이 다 다르다. 얼굴만 다른 게 아니라 줄기도 잎도 다 다르다. 그런데다 생긴 대로 논다. 유행가의 노랫말에 ‘잘난 놈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산다.’ 라는 말이 사람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꽃의 세계에서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남편이 사오는 꽃으로 꽃을 꽂다 보니, 나의 선택과 달리 랜덤으로 꽃을 만나게 된다. 운명적인 만남을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늘 석 단의 꽃을 사오는데, 함께 꽂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 꽃들일 때도 있고, 서로 아주 잘 어울리는 꽃들을 사 올 때도 있다. 주역에서 사주와 궁합이 있듯 꽃들의 세계에서도 사주와 궁합이 있을 듯하다.

 

난 꽃들의 중매쟁이가 되어 이리저리 서로를 엮어가게 된다. 내 손의 열기가 그들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얼굴과 모습을 제대로 잘 살리면서 사이좋게 어울려 놓아야 한다. 그러는 사이에 직감은 저절로 생기를 발하게 된다.

 

색깔부터 생긴 모습이 아주 강하고 거센 꽃들이 있다. 줄기부터 얼굴까지 해만 따라가는 꽃이 있다. 우아한 것, 귀엽고 앙증맞은 것, 야무진 거, 화려하지만 금방 시들어 버리는 거....... 사람의 모습에서 대충 그 사람에 대하여 느껴지는 것처럼 꽃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 느낌 그대로 성질도 똑같다. 참 신기하다. 

난 꽃꽂이를 하면서 우리네 인생을 들여다보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그야말로 짧은 한 순간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우리네 인생에 있듯이,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꽃들에 있듯이, 꺾인 꽃에도 있다. 꺾여서 죽는 그 순간까지의 과정 속에서도 사계절이 함께 한다.

 

이렇듯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은 사계절의 법칙 속에 있으며,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엮여 있어서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함께 하고 있다.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페로, 새로운 식구가 된 양란, 짧게는 사흘 길게는 2주 이상을 살 수 있는 화병 속의 꽃들이 모두 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이 되어 서로 하나가 되어 한 지붕 아래서 알콩달콩 지내고 있다.

 

서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는.......

내가 있음에 네가 있고, 네가 있음에 내가 있는.......

서로 전체이며 부분인 관계.......

사랑하고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축복의 관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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