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이슬같이 투명한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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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이슬같이 투명한 그대

0 개 556 피터 황

1991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제 1회 세계주류박람회가 열렸을 때 한국의 국민주인‘희석식 소주’의 출품을 문의했다. 그러나 발효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출품을 거절당했다. 발효나 증류과정을 거치면서 원료의 향과 맛이 살아있지 않은 술은 자격이 없다는 이유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술인 진로소주 입장에서는 체면을 구긴 셈이다.  

 

우리나라는 과일이 당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곡물로 술을 만들었다. 곡물을 익혀 누룩과 물을 더하면 곡물의 전분이 당으로 변하고 이 당을 먹이로 하여 미생물이 증식을 하게 되는데 이를 알코올 발효라고 한다. 이 발효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술이다. 이때 그냥 거르기만 하면 막걸리가 되고 싸리 등으로 만든 긴 통을 박아 맑은 술을 떠내면 그것이 청주가 된다. 이 청주를 증류하면 소주가 되는 것이다. 이 소주는 요즘 흔한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증류식 소주다. 

 

증류식은 양조주에 물을 섞어 열을 가해 한번만 증류시켜 만든 술이다. 50도 내외다. 안동소주가 대표적이다. 고려부터 조선후기까지의 소주는 모두 전통 누룩으로 빚은 양조주를 한 차례 증류시킨 증류식 소주였다. 희석식은 양조주를 여러 차례 가열해 여기서 나온 고농도의 에틸알코올에 물과 첨가제를 넣는 방식을 사용한다. 우리가 지금 마시는 소주다. 소주병에 표시된 희석식 소주(稀釋式燒酎)의 주(酎)자는 ‘세 번 빚은 술’ 이라는 뜻이다. 세 번 이상 증류한 뒤, 희석시킨 술이라는 것이다. 

 

1965년 30도짜리 희석식 소주가 첫 선을 보인 후 1973년 25도짜리가 나왔다. 그 후로 25년 동안 줄곧 대중적인 술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1999년 23도, 2001년 22도, 2004년 21도로 급강하하더니, 2006년엔 20도, 2014년에는 17도까지 떨어졌다. 알코올 도수 1도를 내리는 데는 소주업계의 표현대로 천문학적인 연구비와 마케팅 비용이 들어간다. 기호품은 극히 미세한 맛과 향의 차이가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이유에 대해서 마케팅 전문가들은 ‘여성 소주인구 증가’를 첫 번째로 꼽고 있다. 요즘엔 여성이 낀 술자리에서 술과 안주를 여성이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유로 소주 광고는 1999년 배우 이영애를 시작으로 모두 여자다.  

 

초기의 소주뚜껑은 코르크 마개였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소주를 개봉하기 전에 소주병의 밑둥을 툭 치는데 이것은 과거 90년대에 코르크 마개였기 때문이다. 유통 중에 코르크 마개 찌꺼기가 소주 병안에 떠있기도 했는데 이를 빼내기 위해서 병을 흔든 뒤에 살짝 쳐서 소주를 따라 버리던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어느정도 술자리가 지나면 거의 대부분은 ‘상대방이 귀찮아 할 거 같아서’ 자작을 한다. 나름대로의 배려인 셈이다. 최근에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각자 한 병씩 따로’ 마시는 것이다. 안주를 가운데 놓고, 저마다 앞자리에 자기 소주를 따로 놓고 마신다. 이 경우에 본인이 얼만큼 마셨는지 바로 확인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술자리에서 서로의 잔을 채워주다 보면 가장 위험한 것이 치사량의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서로 주고받게 되면 자신이 얼만큼 마셨는지 전혀 알지 못하게 돼 실수로 이어지기가 쉽다.

 

정이 넘쳐서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우리는 소주잔을 꽉꽉 채운다. 가득찬 술잔은 모두가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는 동지적 약속이었고 암묵적인 동의 같은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심지어 꽉 눌러 채우지 않으면 예의 없거나 무성의하다고 여겼다. 흘릴 듯 말듯 찰랑찰랑 잔을 채우는 것은 거의 묘기에 가깝다. 넘치거나 한참 모자라면 갑자기 술자리의 분위기가 썰렁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진정한 술꾼만이 병을 잡고 따르는 각도와 시간을 본능적으로 반응해 그 높이를 정확하게 맞출 뿐이다.

 

소주 잔에 소주를 채우는 경계선은 상대방을 아름답게 취하게 하느냐, 술에 ‘꼴게’ 하느냐의 절대 라인이다. 소주 잔의 능선은 ‘나를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결국 술이 차고 남은 공간은 바로 ‘나(Myself)’다. 그래서 새벽에 일을 나갔다가 밤늦게 물에 젖은 솜처럼 돌아온 아버지의 소주 잔엔 눈물이 절반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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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같이 투명한 그대, 눈물같이 순수한 그대, 세상살이같이 쓴맛의 그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사랑할 때도 사랑이 떠나갈 때도, 말없이 내 곁에 있어 주는 그대, 세월 따라 인심마저 변해도 모양과 빛깔과 향기 늘 한결같은, 만인의 영원한 벗 그대.” 정연복 시인의 ‘소주’라는 시다. 투명하다못해 시퍼런 빛깔의 소주를 마주하고 기도라도 드리고 싶어지는 처연한 시다. 

 

소주잔에는 50ml정도 술이 담기고 1병의 용량이 360ml인 점을 감안할 때 한병을 따르면 7잔 반이 나온다. 그러니 1병을 마시면서 소주잔과 7번의 입맞춤을 하게 되는 셈이다. 첫 잔은 갈증을 면하기 위하여 둘째 잔은 영양을 위하여 셋째 잔은 유쾌하기 위하여 마신다. 하지만 넷째 잔부터는 조심하라. 로마의 속담에는 발광하기 시작하는 잔이라고 했으며 명심보감에는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마시는 사람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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