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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의 미

김지향 0 196 2019.09.10 10:09

나는 수필가이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어려워하고 하기 싫어했던 과목 중의 한 과목이 국어였으며, 특히 작문시간이면 고역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디 작문뿐이었던가? 고전은 어땠으며 시를 써야하는 순간이면 내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국어를 못하면 외국어도 형편없다. 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외국어를 잘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근 20년 가까이 영어권에서 살면서도 아직도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려서부터 내 관심사는 오직 그림이었다.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대놓고 가족들에게 내 꿈을 말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저 좋아하기에 미술경연대회에 나가면 입상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으며, 포스터를 그려서 입상했을 때도 담임선생님한테서 소방차를 너무 길게 그려서 이상하다는 말만 들었다.

 

대가족 생활을 하면서 내 생각을 표출하는 건 무조건 나한테 불리하다는 생각에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포기하면서 살았다. 그러던 중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내에서 예술경연대회가 있었는데, 문학과 미술을 총괄해서 내가 그린 그림이 대상을 받은 것이다. 

 

아주 단순하고 그 누가 봐도 미술공부를 제대로 한 흔적이 없는 파스텔로 그린 그림이었다. 성실한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술선생님은 내 그림이 영 못마땅했지만, 교감선생님이 반해서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시니, 내 그림을 대상을 준 것도 같다. 교내 미술부의 탄탄한 실력을 갖춘 학생들의 그림에 비교할 수 없는 생뚱맞은 그림이었으나, 교감 선생님의 눈에는 신선하고 참신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매일 지각에 수업시간이면 졸기만 하여, 수업 도중에 분필이 내 안경에 꽂혔던 적도 있었다. 사실 그때 난 졸고 있지 않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학시간이었기에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내가 수업 시간에 졸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유명했었나 보다. 그렇게 매일 졸기만 하던 나에게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다. 

 

엄마의 목표는 6명의 자식들을 모두 다 대학에 보내는 것이었지만, 나는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 지겨운 공부를 왜 해야만 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술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내가 미술을 전공한다고 하면 펄쩍 뛸 엄마가 안 봐도 훤하게 보이기에, 아예 대학을 안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교감선생님의 착각이 내 그림을 대상으로 찍었더라도 난 그때부터 미술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어졌다. 

 

엄마와의 전쟁이 그때부터 시작을 한 것이었다. 빌어먹기 딱 좋다는 미술을, 그것도 돈을 쏟아 부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미대를 들어가겠다니.......

 

엄마의 반대는 하늘을 찔렀고, 그러면서도 대학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엄마 뜻에 따라 입시를 쳤다. 국어 영어 수학 시험 중 국어와 영어는 바닥점수였다. 완전 주관식이었으니 당연했던 일. 헌데 수학은 빰빠라~~빰. 세 과목의 평균이 턱거리이건 말건 대학문턱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억세게 운이 좋았다.

 

그래서 엄마의 소원은 이뤄졌고, 나는 그때부터 대학이란 곳에 들어가서 전공이 아닌 연극동아리에 몸을 담고 지냈다. 부모님과의 약속대로 대학 4년 동안만의 호사였지만. 난 그 호사를 마음껏 누렸다.

 

신기하게도 난 보스들의 눈에 들어오는 행운이 따랐다. 특별히 한 것도 없다. 낙하산도 아닌데 낙하산을 탄 것처럼 느껴졌었다. 믿는 구석이라곤 전혀 없었고, 잘하는 것도 없었고,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왜 그들의 눈에 내가 띄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수필가로 등단하게 된 것도 신기하기 짝이 없다. 수필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에 파격에 대한 말이 있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 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내가 그 옆으로 꼬부라져있는 꽃잎이었다면 난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남들과 똑같이 하지 못하기에 내 나름대로 고충이 많고 힘든 삶을 살아왔지만, 그만큼 커다란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 거다.

 

이 모든 혜택은 아마도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인생의 단 하가지 의무인 ‘행복 하라’를 실행하려 노력했기에 그에 대한 하늘의 선물일 수도 있겠다.

 

‘따라하기’ 시대는 강 건너 갔다고 생각한다. 그저 소신껏 자신의 생각대로 느긋하게 자신의 색깔을 잘 다듬어 가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게 진정한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인 남을 배려하여, 과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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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 한마디에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착각일 때가 많다. 약간 옆으로 꼬부라져 있는 한 개의 꽃잎을 어우러지게 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야말로 성숙한 미의 세계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조화롭게 해주는 우주의 섭리에 따르는 길일 것이다.

 

우주의 전체이면서도 부분인 나 자신과 ‘파격의 미’를 연계해 보면서 궁극적으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 

 

감사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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