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무의 이야기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어느 나무의 이야기

0 개 1,449 명사칼럼

“우둔한 영혼들아. 나를 보렴”

다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아는 것

낮고 약한 것들의 푸르른 생명성 


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에 심어졌습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누군가에 의해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지요. 나무는 자신을 존재하게 한 대(大)존재의 명령대로 자신의 세포를 분열시키고 기관을 만들며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에도, 천둥 번개가 치는 검은 밤에도 나무의 목적은 ‘사는 것’ 이었습니다. 나무의 세상은 온갖 위험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만, 그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그저 ‘살아내는’ 것만이 목표이었습니다. 

 

나무 주변에는 다른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나무들은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이 작은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했습니다. 대지에는 영양분이 제한되어 있었고 그것을 먼저, 많이 차지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주변에는 또한 이 나무와 별다를 바 없이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어린나무들도 있었지요.   

 

나무는 큰 나무, 작은 나무들과 겨루며 많은 것을 이루어내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 나무의 그늘에 가려졌을 때는 햇빛을 향해 최대한 손을 뻗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통증으로 어깻죽지가 마비될 때까지 손을 내밀었으나 햇빛 한점 받지 못한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이 며칠 지속 되면 이파리가 누렇게 뜨기 시작했고, 나무는 죽음의 징후를 느끼기도 했지요. 

 

나무는 이 모든 위기와 고통과 경쟁의 시간을 거치며 점점 더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큰 나무들이 마침내 수명이 다해 쓰러지는 것도 보았고, 어린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어떤 나무들은 병이 들어 수족이 흉하게 뒤틀리기도 했습니다. 

 

나무의 가슴 속에도 수많은 고통으로 여기저기 옹이들이 배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무는 스스로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삶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푸르른 것은 오직 저 생명의 황금 나무” (괴테)라는 말은 얼마나 멋진가요. 물론 여기에서 “나무”는 일종의 상징이긴 하지만요.   

 

나무는 자신이 “황금 나무”로 완성되기를 꿈꾸었습니다. 나무의 정신이 저 지고한 곳을 향할수록 세상은 더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그럴수록 나무의 기준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황금빛을 띠며 우람하게 커가는 나무를 보고 기가 죽었습니다. 

 

이제 나무의 눈은 예리할 대로 예리해져서 한눈에 사물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가 볼 때 어리석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무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통찰이 부족한 나무들은 이 나무와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나무들과의 시간은 이 나무에게 견딜 수 없이 지루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나무는 자신이 “황금 나무”가 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관계를 멀리했습니다. 정신의 지고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했고, 쓸데없는 일로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지요. 

이제 커질 대로 커진 나무는 다른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세상의 맨 꼭대기에 있는 태양만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이야말로 나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였기 때문이지요. 

 

나무는 빛나는 태양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영혼의 “황금”이 연단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환희가 나무의 온몸을 물들였습니다. 나무는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나무는 이미 “황금 나무”의 영혼이 어떤 것인지 알아버렸습니다. ‘세상의 이 모든 어리석은 것들아, 우둔한 영혼들아. 나를 보렴.’ 나무가 이렇게 속으로 외치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온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공기조차 검게 물들어 나무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멀리서 엄청난 에너지의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나무는 보았습니다. 불길은 순식간에 거대한 칼로 변했습니다. 불의 칼은 순식간에 나무의 정수리를 내려쳤습니다. 나무는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 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나무는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다 무너진 후에야 나무는 알았습니다. 자신의 꿈이 바로 “회색의 이론” 들이었음을. 푸르른 “황금 나무”는 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 약한 곳, 아픈 곳, 어리석은 곳에 있었습니다. 불의 칼에 쓰러진 나무의 밑동에, 어리고 푸른 이파리 몇 개가 간신히 팔랑이고 있었습니다. 다 죽어가면서 나무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이게, 이것이, “푸르른 생명의 나무” 임을.

 

[출처: 중앙일보] [삶의 향기] 

■ 오 민석 교수 

충남 공주 출생.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현재 단국대학교 영미인문학과 교수로 문학 이론, 현대사상, 대중문화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기념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며 평론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그리운 명륜여인숙>>,  <<기차는 오늘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이론서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문학연구서 <<저항의 방식:캐나다 현대 원주민 문학의 지평>>, 대중문학 연구서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 <<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 서 <<아침 시: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산문집 <<경계에서의 글쓰기>>, <<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등을 냈다. <단국문학상>, <부석 평론상> 등을 수상하였다.

  


 

노화(老化)와 노쇠(老衰)는 다르다

댓글 0 | 조회 234 | 21시간전
노화(Aging)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정상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대개 모든 신체 영역에서 서서히 진행된다. 노화는 나이와 연관되어 있으며 비정상적인 과정… 더보기

변화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382 | 1일전
우리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사회를 중심으로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효율이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 더보기

대학생 공부하기 싫을 때 및 번아웃 어떻게 해야 될까요

댓글 0 | 조회 287 | 4일전
매년 이맘때쯤이면 메디컬 입시 (의대,치대,약대, 검안대 등)를 하는 학생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마주하며 번아웃 혹은 중도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 더보기

GAMSAT 의전원.치전원 입학시험 고득점 팁과 노하우

댓글 0 | 조회 294 | 8일전
지난 칼럼에서는 GAMSAT 3월 시험 총평과 출제경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GAMSAT (Graduate Medical School Admissi… 더보기

지식을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445 | 9일전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 일상 속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과학 수업이나 실험 중심 프… 더보기

드래곤 전설의 기원

댓글 0 | 조회 226 | 2026.04.29
— 인간은 왜 ‘용’을 상상했는가상상 속 생물, 그러나 너무도 익숙한 존재어린 시절 우리는 한 번쯤 ‘용’을 상상해본다. 불을 뿜고 하늘을 날며, 때로는 신의 사… 더보기

비료와 먹거리

댓글 0 | 조회 231 | 2026.04.29
먹고 살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논밭을 일구어 심고 가꾸어야 한다. 대표적인 먹거리가 5곡이었는데 거기다 온갖… 더보기

뉴질랜드 민사소송의 약식 판결 및 각하

댓글 0 | 조회 360 | 2026.04.29
보통 뉴질랜드 민사소송은 원고 측에서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고, 법원에서 승인을 받은 후 피고 측에 송달하고, 피고 측에서도 답변서를 제출하고, 사건 관리 회의 (… 더보기

27. 우레와(Urewera) 부족과 안개 속의 여인

댓글 0 | 조회 170 | 2026.04.29
뉴질랜드 북섬의 깊은 원시림 속에는 우레와(Urewera) 숲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자연 보호구역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오리의 투호에나(Tuh… 더보기

고국의 품에 안긴 카자흐스탄 독립유공자 후손과 재외동포

댓글 0 | 조회 203 | 2026.04.29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낙산사 템플스테이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10월 27일부터 11월1일까지 진행된 ‘2024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팸투어’를 성황리에 마쳤다… 더보기

벚꽃 편지

댓글 0 | 조회 206 | 2026.04.29
창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 폭우 주황색 주의보가 떠있다. 분명 어딘가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을텐데 홍수 피해는 없었으면 좋겠다.온 세상이 젖어가… 더보기

비자금

댓글 0 | 조회 350 | 2026.04.29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글쎄 암이란 놈이느닷없이 나를 흔들자꿋꿋이 버티던 나도마음 흔들려아내가 모르던현금으로 꼭꼭 간직해두었던내 비자금을 실토하고난 이제 필요없게 … 더보기

8편 – 체르노빌 섀도우: 봉인된 보고서

댓글 0 | 조회 178 | 2026.04.29
“체르노빌은 ‘폭발’이 아니라, ‘개방’이었다.”프롤로그 -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폭발 직후의 지옥 같은 밤.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수증… 더보기

고용주의 신고의무

댓글 0 | 조회 591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일반적으로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용주에게 피고용인의 범죄 신고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선 고… 더보기

유학을 보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 — 공부보다 중요한 것

댓글 0 | 조회 506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이번 컬럼에… 더보기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댓글 0 | 조회 174 | 2026.04.28
시인 천 양희이 생각 저 생각 하다어떤 날은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막무가내 올라간다.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상상봉에 다다르면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 더보기

파트너쉽 비자, 딱 한번에 승인받기

댓글 0 | 조회 455 | 2026.04.28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와 함께 체류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파트너쉽 비자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워 보이지만, 실제 심사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입체적… 더보기

갬블링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 뇌와 감정의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0 | 2026.04.28
도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여전히 ‘의지’라는 단어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끊으려면 끊을 수 있지 않나”,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은 도박 문제… 더보기

골프 코스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인생도 정답은 없다

댓글 0 | 조회 231 | 2026.04.28
골프를 오래 치다 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모든 코스는 다르다.어떤 곳은 넓고 평탄한 페어웨이를 자랑하지만, 또 어떤 곳은 벙커와 해저드가 도처에 있어 한 … 더보기

걷기 열풍

댓글 0 | 조회 458 | 2026.04.25
충북 괴산에 ‘걷기 열풍’이 불어 98세 어르신도 걷는다. 괴산군(인구 3만7000명)은 65세 노인 비율이 42.6%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노인 의료비 예산은… 더보기

GAMSAT 의.치전원 입학시험 총평 및 출제경향 (2026년 3월)

댓글 0 | 조회 333 | 2026.04.20
<GAMSAT의 급부상 인기>최근 들어 GAMSAT시험 응시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GAMSAT은 주로 의전원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전원 (치학전문대… 더보기

건강한 겨울나기 예방 접종으로 준비하세요

댓글 0 | 조회 675 | 2026.04.17

어디가 더 들어가기 어려울까? 오타고대 의대 vs 오타고대 치대

댓글 0 | 조회 976 | 2026.04.16
지난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Biomed/Health Sci 과정을 낱낱이 파헤쳐보았다. 오타고대 HSFY같은 경우 한인들 기준에서 오클랜드대 Biomed/Hea… 더보기

전쟁과 평화

댓글 0 | 조회 276 | 2026.04.15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게 된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전쟁은 비극의 시작이요 삶을 극한 상황으로 인도하며 피와 땀으로 일궈… 더보기

미확인 해양 괴생물(MO) 목격담

댓글 0 | 조회 392 | 2026.04.15
— 인간은 왜 바다에서 ‘무언가’를 계속 본다고 믿는가바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우리는 이미 지구의 대부분을 이해했다고 믿는다. 우주를 관측하고, 인간의 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