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맏딸 콤플렉스와 자기 통합
‘멍청이와 왕자들’은 가족 내 맏딸의 역할과 그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는 맏딸을 중심으로 자녀와 부모, 부부, 자매나 형제간 관계의 서사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맏딸 멍청이는 ‘구렁덩덩신선비’에서의 막내딸보다 더 수준 높은 관계 맺음과 지속 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멍청이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어 버린, 부모화 된 아이처럼 보인다. 멍청이가 맺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 지속의 과정을 관찰해 볼 때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데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투철한 책임감으로 끊임없이 희생하고 봉사하는 모습,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데도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멍청이의 모습 등이다. 한마디로 사서 고생한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동생들이 가출을 하거나 결혼을 못했어도 본인들 인생이니 알아서 하겠지 하며 내버려 둘 수도 있는데 굳이 온갖 고생을 해가며 찾아서 데려오고 남편감을 골라 결혼을 시킨다. 또 피의 다리를 건널 수 없는 마녀를 굳이 집에까지 찾아가 보살펴 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도 마녀와 함께 돼지까지 돌보게 된다.
그런데 이 모습은 주변의 여인네들에게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희생과 봉사를 하고도 가족들에게 당연히 궂은일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거나 심지어는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귀찮은 간섭쟁이로, 동생들로부터 “너나 잘해!” 소리나 듣는 언니들의 모습과 겹친다.
옛이야기 속의 아버지는 대부분 별 존재감이 없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아버지들도 사실은 그러한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에서는 그러한 아버지들을 아예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는 가족을 방임하는 아버지의 상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가 둘이고 멍청이와 동생들이 이부異父 자매인 이유는 옛이야기 속 계모들에 대한 설정이 그렇듯 동생들이 친언니에게 하는 행동들이 너무 과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남편을 잃고 상실감에 빠져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 어머니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심각해 보인다. 그런 어머니의 존재는 딸들에게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래서 두 동생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멍청이에게 어머니는 고양이와 같은 존재이다.
애완동물처럼 돌봐야 하는 대상인 동시에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을 잠시 내려놓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모성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스무 개의 바늘은 동생들이 언니에게 입히는 상처들이라고 생각된다.
언니를 ‘멍청이’라고 부르고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언니가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품고 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 언니가 받은 상처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보듬어 주고 그래도 동생들에게 잘해주라고 말하는 고양이가 된 어머니가 있어 멍청이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