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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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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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야릇한 감나무와의 만남은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내 안에 숨은 아픈 상처가 나타났다 서서히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라는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와서 보아라.” 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어느 날, 부안에 있는 내소사 숲길 탐방은 놀라운 체험이었다.

 

내소사는 전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절 진입로에 들어서면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숲 터널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울창하게 자란 전나무 숲속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건강에 좋다며 산책객들이 자주 찾는다. 전나무의 독특한 향 냄새는 속세에서 묻은 찌든 때를 씻어내기에 그만이다. 더구나 숲속의 고요가 방문객들을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한다.

 

그 숲길에 사람들 여럿이 이상한 나무 앞에 몰려 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오래된 감나무다. 푸른 숲속에 벌거벗은 키 큰 감나무 두 그루. 해설사가 설명을 하다 말고, 감나무 굵은 원줄기에 혹처럼 생긴 두 덩어리들을 가리킨다.  어린애 주먹만 한 덩어리들이 닥지닥지 붙어있다. 인체의 ‘암 덩어리’ 같은 거란다.

 

나무에서 생겨난 암 덩어리가 보기에도 끔찍하다. 전나무 숲이 피톤치드는 사람에게는 건강을 주나 감나무에게는 독이 된다니 놀랍기만 하다. 더욱이 스트레스가 암세포가 독소를 키우며 빠르게 확산시킨다고 한다. 그렇다면 감나무가 전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의 독소 말고 어떤 스트레스를 또 받는 걸까. 나의 눈과 귀가 한곳으로 쏠린다.

 

상록침엽수인 전나무는 감나무보다 훨씬 키가 크다. 일반적으로 사십여 미터까지 높게 자라는 전나무에 비하면 감나무는 이십 미터 쯤은 넘을 듯하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감나무는 보통 높이의 두 배인 이십 미터 쯤은 넘을 듯하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감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키 재기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였음이 틀림없다. 초목이 자라기 위해서는 햇볕과 바람, 물과 영양은 필수 아닌가. 보통 감나무의 모양새는 펼쳐놓은 더부룩한 우산 모양이라 예쁘지만, 이 나무는 암 덩어리를 매단 채 위로 훌쩍 자라 이상야릇하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게 대단하다.

 

감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두려움과 어둠은 칠흑 같았을 것이다. ‘왜 하필 이곳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분노와 비탄이야 또 오죽했겠는가. 생의 위협 속에, 그 절박한 얼마의 세월 동안은 하늘을 원망하며 죽음의 공포에 떨었으리라.

 

사람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스트레스가 심해진다. 두려움, 불안으로 근육이나 혈관이 수축되고 호흡이 가빠지며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힘이 약해져 삶의 의욕을 잃게 된다. 내 친구의 경험에 따르면 이럴 때 ‘위기가 기회다. 도전해보자.’는 당찬 각오가 스트레스를 줄인다고 한다.

 

자기의 생활습관이 완전 뒤바뀌었다는, 암에 걸려 고통 받다 살아난 그의 자랑 섞인 고백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용기를 주는 친구다. 

 

지나온 삶의 흔적은 생명체의 어딘가에 묻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지난날의 흔적이 얼굴이나 몸짓 같은 데서도 나타난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그게 체취처럼 풍겨나기도 한다. 내 얼굴에도 주름살이 알금솜솜 배어있다. 가난의 아픔, 부모 형제를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슬픔을 어찌 다 말하리. 초목의 경우에도 지나온 생의 흔적이 뿌리나 줄기에 남는다. 흉측한 암 덩어리가 죽음에서 감나무의 삶의 흔적이듯.

 

그런데 절에서는 이 감나무를 베어버리지 않고 있다. 보기 흉함에도 그대로 놔두는 게 참 이상하다. 혹여 감나무를 보며 깨달음을 얻으라는 뜻은 아닐까. 어쩌면 이 나무는 여기 자생한 게 아니라 누군가 어린 묘목을 갖다 이곳에 심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 내소사는 오래된 사찰로 그 역사가 깊다.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 일이 다 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오.” 라는 혜구스님의 원력에 의해 백제 무왕 때(서기633년)에 창건된 고찰이다. 절 이름에도 소생의 의미가 담겨 있다. 생을 포기하지 않는 감나무의 소리 없는 외침이 바람을 타고 숲속에서 들려온다. 

 

‘나를 보아라! 포기하지 않으면 상처가 되레 용기를 갖게 한다. 인내는 용기를 주고 희망을 선물한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 용기를 갖는게 소생의 첫걸음이다.’

 

암담한 세월을 끈질기게 참고 살아온 나무가 보인다. 여태껏 순탄치 않은 인생을 흔들리며 살아온 내가 아닌가. 현실 여건을 수용하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와 용기, 그리고 꿈과 소망을 갖고 살라고 감나무가 일러주고 있다. 살랑대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거리고 초록 이파리가 움트는 계절,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문턱이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자연스레 흔들리며 사는 것이라며 나를 위로한다. 감나무가 나의 친구 같다.

 

지난날의 고통스런 삶을 돌아보게 되는 오늘이다. 너의 외침 소리가 나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생의 가치와 의미를 곱씹으며  바람 부는 숲길을 걷고 있다. 봄날의 초목처럼 생기를 띠기 시작한다.

뜻있는 만남이요, 오달진 현장체험이었다. 감나무야, 너를 잊지 않을게.

 

발췌 <<수필과 비평>> 201호

 

■ 오 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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