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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과 직장인

명사 칼럼 0 178 2019.08.13 10:54

나는 내 직장 길 건너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지하 1층에는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는데 그곳에서 운동을 하던 어느 날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큰 잔에 찻잎 몇 개를 떨어뜨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가져가는데, 운동을 할 때는 벽 한쪽에 있는 테이블 위에다 올려놓는다. 그 날도 그랬다. 운동을 하다가 목이 말라 찻잔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갔는데 그 잔 위에 티슈 한 장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보통 오전 8시 조금 지나면 여성 한 분이 와서 청소를 한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유리창을 닦고 운동기구의 먼지를 닦아낸다. 그 분이 해 놓으셨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큰 감동을 받은 나는 그분에게 다가가 감사 인사를 드렸다. 청소할 때 생기는 먼지가 들어갈까 봐 명함 크기만 한 일회용 사각 종이컵을 걸쳐 놓고 거기에 티슈를 올려놓으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마음이 밝고 환해진다.

 

자신이 비록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한 발짝 더 내디뎌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타인에게 감동을 준다. 타인에게는 편리함을 제공하는 일이자, 자신에게는 자신을 제한하는 기능적인 한계를 벗어나서 스스로를 확장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좀 과장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이 바로 어떤 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힘의 출처다. 모든 창의적인 일이나 사회적인 공헌 등은 우선 자신이 확장되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공적인 역할로 자리 잡은 경우들인데, 그런 일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는 데서 생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하나의 수고가 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수고가 있어야만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자신은 더 성숙해진다. 자신이 전체 세상으로 확장되는 일이자, 자신을 성숙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개별자로서의 자신과 전체로서의 세상이 서로 섞이고 일치하며 교류한다. 간단하고 쉬워 보이지만 막상 잘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하지만 한 개인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하나의 역할만을 담당하고 산다. 세상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직(職)’ 이라고 한다.

 

또 인간은 누구나 행위의 결과에 따라 성숙해 간다. 당연히 모든 행위는 사실 수행이며 거기에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業)’ 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특정’ 한 역할(職)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 완성(業)한다. 

 

이것이 바로 직업이다. 당연한 이치로, 인간은 ‘직업’을 잘 수행함으로써 사회적이고 공적인 존재로 확장한다. 바로 ‘직업인’이다. 

 

여기서 핵심은 ‘업’의 정신에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맡은 역할(職)을 전인격적인 태도로 대하느냐, 아니면 기능적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인격적인 태도는,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하도록 정해진 것만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의 궁극적인 의미를 살펴서 거기에 온 마음을 두고 기꺼이 불편함과 수고를 받아들여 조그마한 확장성이나마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우선 자신의 역할을 하나의 수행처로 삼아야 한다. 그 역할을 통해서 자아가 완성되고 실현된다는 지속적인 각성을 하고, 항상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자신의 역할을 기능적으로만 대한다. 

 

‘직’과 ‘업’이 분리된다. 이런 사람은 ‘직업인’이 아니라, 그냥 ‘직장인’이다. 한 사회의 건강성과 진보는 구성원들이 ‘직업인’으로 사느냐, ‘직장인’으로 사느냐가 좌우한다. 결국 ‘시민이냐’, ‘아직 시민이 아니냐’다.

 

누구나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그 다음’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을 살아야만 한다. 자신이 맡은 기능적인 역할 ‘다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머물지 않고, 알고 있는 것 ‘다음’을 따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넘어가려고 시도한다. 어떤 일을 하고 나서 바로 그 다음에 어떻게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걱정한다. 그것은 청소하시는 그 분이 다른 사람의 찻잔에 먼지가 들어갈까 봐 걱정하고, ‘다음’을 하는 수고를 기꺼이 한 일과 똑같다.

 

■ 최 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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