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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는 종교가 행복과 정신건강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심리학의 아버지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도 여러가지 종교의 순기능도 있지만 특히 종교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우리의 신앙이 과정이 아닌 목적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신앙이 절대적인 영적 존재와 우리를 연결하는 통로가 아닌 그 대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대상이 절대자가 아닌 신앙 그 자체가 됩니다.
행복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런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면에서 신앙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존재와 우리가 연결된 상태가 가장 행복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행복은 신앙과 반비례해야 하는 일종의 장애물로서 부정적으로 인식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개척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자란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를 목회하지만 성경대로 살고 목회하려는 강직하고 엄격한 성품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조용히 내조하는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늘 희생, 헌신, 인내를 강조했습니다. 은연 중에 행복이라는 것이 마치 크리스천이 크리스천답게 제대로 살지 못할 때 누리는 사치처럼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게는 신앙과 행복에 대한 통합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신앙이 행복의 장애물이 아니고, 행복이 신앙의 불순물도 아닙니다. 신앙과 행복을 분리하기 보다는 통합적으로 인식하려는 변화가 필요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미국의 정신분석가 로버트 존슨(Robert A. Johnson)은 그의 책『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종교는 큰 고통을 초래해온 분리를 넘어서게 하고 대극에 있는 돌을 다시 묶어주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서로 반대편에 있어 고통을 가증시키는 모순에서 벗어나, 반대되는 두 개념을 동시에 즐기면서 둘 다 동등하게 존중할 수 있는 역설의 영역으로 우리가 나가도록 도와준다. 이럴 때 비로소 은총의 가능성이 주어지는데, 여기서 은총이란 모순을 영적으로 경험하여 서로 대극을 이루는 요소들보다 더 커지는, 전체에 응집되는 정신적 체험이다.”
그의 얘기를 통해서 신앙과 행복이 서로 다른 극과 극이 아닌 그것을 서로 묶어 더 큰 은총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참된 종교의 역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언제나 우리에게는 존재의 문제가 우선입니다. 행복한 존재가 되면 자연스럽게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존재가 되면 당연히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전 존재를 가지고 절대자에게 나아가 우리의 존재가 그의 은총 안에 거하게 되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상태가 될 겁니다. 그러한 행복한 존재는 자신의 삶에서 마음껏 그 행복을 누리고 실천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