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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와 왕자들 1편

송영림 0 91 2019.06.12 12:09

큰언니는 하늘이 낸다?

 

이번에 다룰 켈트족 옛이야기 ‘멍청이와 왕자들’은 처음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제목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번역상의 제목일 테지 싶어 원제를 찾아보려고 이곳저곳 뒤적이며 마음 한 구석을 그저 이야기 안에 가만히 담가 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제목이 맘에 들어와 꽂히게 되었고 더 이상 원제를 찾고자 하던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왜냐하면 이야기 속 멍청이가 나 자신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멍청이야말로 나를 표현하기 가장 적절한 말, 나를 바라보는 타인들 특히 동생들이 나에 대해 느끼는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얼마 전 오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큰언니는 하늘이 낸다!”는 말을 들었다. 지인은 8남매로, 누가 봐도 참 부러워할 만한 남매애를 자랑한다. 맏언니를 시작으로 언니가 무려 5명이고 오빠 1명과 남동생 1명을 가진 지인은 자매들 중 막내이다. 그런데 맏이가 딸이고 자매가 많은 집안을 보면 신기하게도 남매간 의리가 있고 잘 뭉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인 경우가 많다. 당장 나의 어머니도 맏이인데 이모들, 외삼촌들과 참으로 화목하다. 또 언니 셋에 오빠 하나인 집안의 막내 우리 올케네도 그러하고, 문단에서 가장 친한 언니도 밑으로 여동생만 셋인데 그렇게 의가 좋을 수가 없다. 

 

몇 년 전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간 종합병원 대기실에서 삼사십 대 정도의 남자들이 모여 앉아 하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는데 예전과는 사뭇 다른 자녀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둘째를 가져야 돼.”

“우리는 딸이라 하나만 낳고 더 안 낳아도 되는데.”

“얼마나 좋아? 우린 아들이라 둘째는 꼭 딸을 낳아야 해.”

“또 아들이면 어쩔라고?”

“안 돼!”

 

이런 내용의 대화를 들으며 이제 우리가 남아선호사상에서 벗어난 듯하다는 표면적인 생각도 스쳤으나, 사실은 딸들의 더욱 무거워진 어깨에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결국 부모나 한 집안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딸들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무겁게 가슴을 내리눌렀다. 

 

맏딸인 나는 내가 봐도 어떤 부분 동생들과 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잔신경을 많이 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꼭 살이 쪄서만은 아닐 텐데 늘 팔과 어깨가 무겁기도 하고,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실제로 별 도움이 안 되면서도 그 허둥대며 마음 쓰는 것만큼은 집안의 어른 못지않다. 

 

더구나 나보다 더 잘 살고 있는 동생들이나 조카들의 걱정을 괜히 붙잡아 하고 있고, 세상 맘 편해 보이는 어머니도 하지 않는 걱정을 내가 다 싸 짊어지고 있기도 하다. 내가 동생들에게 아무것도 해주거나 도움 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애들이 결혼을 한 후 왠지 꼭 해야 할 숙제를 다 마친 것처럼 안도의 마음이 드는 심정 그리고 최근에는 사촌동생으로부터도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많은 세월을 함께해 온 사촌동생이 있다. 그는 숙부의 아들로 외동이지만 우리 삼남매와는 친남매나 마찬가지이다. 나와는 띠동갑 이상의 나이차가 나기 때문에 농담 반으로 내가 업어 키웠다고 주절거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내가 중학교 시절 어린 아가였던 녀석을 안고 찍은 사진을 보다가 180cm가 훌쩍 넘는 키로 자라나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녀석을 생각하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게 다가온다. 어릴 때부터 나름 맘고생도 많았고 외로움도 컸을 환경이었는데 보고 있노라면 늘 밝고 쾌청해서 기특하다.   <다음호에 계속>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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