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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 와 ‘보기’

명사칼럼 0 254 2019.05.15 12:02

‘보여주기’는 자신을 소진하고 ‘보기’는 충전하는 행위

대표적 ‘보기’ 습관인 독서ㆍ여행ㆍ산책은 영혼의 충전소 

 

우리의 일상은 ‘보여주기’와 ‘보기’로 구성되어 있다. 가령 외모를 가꾸고 꾸미는 일은 자기만족적인 측면도 있지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의 의식적ㆍ무의식적 표현이다. 우리는 늘 타자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며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한다. 

 

이 ‘알리고 과시하는’ 행위가 ‘보여주기’다. 보여주기에 몰두하는 자아는 그만큼 타자에게 인정받지 못했거나, 실제로는 인정받고 있으나 아직도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아다. 충분히 인정받은 사람들은 보여주려고 구태여 애쓰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보여주기의 이면은 늘 다양한 형태의 열등감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또한 ‘보여주기’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보기’의 존재들이다. 우리는 세계를 바라본다. 세계는 우리의 동공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자극한다. 에고(ego)는 생존에 유리한 자극들은 받아들이고 생존에 방해가 될 것으로 여겨지는 자극들은 거부한다. 

 

여기에 에고의 판단이 항상 개입하는데 이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보다 ‘잘난’ 타자들을 볼 때 우리는 그 타자를 거부할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거부하는 것은 생존경쟁에서 그 타자가 우리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이며, 받아들이는 것은 그 ‘잘남’을 모방하고 배우는 것이 우리의 생존에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보여주기’는 소비하는 행위이고 ‘보기’는 저축하는 행위다. ‘보여주기’는 자산을 밖으로 내어놓는 행위이므로 소비하는 행위다. 동일한 대상들에게 같은 자산을 반복해 내놓을 수는 없다.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우리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마침내 더 보여줄 것이 없을 때 깊은 열등감이 생겨난다. 반면에 ‘보기’는 축적하는 행위다. 많이 볼수록 우리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선택할 자원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많이 볼수록 에고의 선택ㆍ배제의 기준도 더욱 깊어지고 그 기술도 향상된다. ‘보기’는 우리를 성숙시킨다.

 

‘보여주기’가 사회 단위에서 극대화할 때 ‘스펙터클의 사회’(기 드보르)가 형성된다. 스펙터클이 ‘잘못된 재현물’인 이유는, 그것이 현실을 뒤로 미루고 가짜 이미지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스펙터클의 사회는 거대하고도 강력한 이미지들을 생산함으로써 대중을 압도하고 기만한다. 그것은 대중을 ‘구경꾼’이자 이미지의 소비자로 전락시킨다. 앞에서 ‘보여주기’가 열등감과 연관이 있음을 이야기했거니와,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가난한 사회일수록 ‘보여주기’에 몰두하고 스펙터클의 생산에 몰두한다. 

 

따라서 구호와 현수막이 많을수록 문화적으로 가난한 나라다. 성숙한 자아는 ‘보여주기’ 보다 ‘보기’를 좋아한다. ‘보여주기’를 통해 가난해지기보다 ‘보기’를 통해 풍요로워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보기’의 여러 가지 예가 있다. 가령 산책하는 것도 좋은 ‘보기’의 한 예다. 

 

산책의 시간은 소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축적하는 시간이다. 산책을 통해 영혼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지독한 산책 중독자였던 19세기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글을 쓰다 말고 종종 런던의 밤거리를 헤매곤 했다. 그때마다 그가 걸어간 거리만큼의 이야기가 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도 19세기 런던의 스산한 겨울을 통과한 외로운 산책의 결과였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걷는 동안 난 머릿속으로 글을 쓰면서 웃다가, 흐느끼다가 또 흐느끼곤 했지.” 산책은 이렇게 무정형의 외부가 한 인간의 내부로 와서 서사(敍事)로 완성되는 과정이다.

 

책읽기도 ‘보기’의 한 방식이다. 고독하고도 느린 독서 속에서 영혼은 천천히 성장한다. 홀로 하는 여행 혹은 말수를 줄인 여행도 ‘보기’의 한 예다. 여행은 이런 의미에서 자기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보여주기’를 통해 가난해진 자기를 ‘보기’를 통해 다시 보충해주는 행위가 산책이고, 책읽기고, 여행이다. 많은 ‘예외적 개인들’이 산책과 책읽기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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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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