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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0/2010. 10:05 NZ코리아포스트 (122.♡.159.81)
왕하지의 볼멘소리
은행에서 온 우편물을 뜯어 읽어보는 아내의 얼굴색깔이 점점 변해가더니 급기야 비명을 질러댄다.
“어머머~ 이게 다 뭐야? 롯데리아, 이마트... 이거 다 한국에서 쓴 거 네, 누가 내 비자카드를 한국에서 쓰고 있어~ 아이고 이걸 어째~~”
“뭐야? 당신 또 카드 잃어버렸어?”
“관광 온 사람이 내 카드를 주어 갔나봐, 빨리 분실신고 해야 되는데... 아들아 얼른 나와 봐~ 큰일 났어~~”
엄마의 비명소리에 아들이 뛰쳐나와 고지서를 읽어보다가 또 비명을 지른다.
“엄마! 이거, 아름이 거잖아~ 은행도 다르잖아, 아휴~~”
딸의 친구가 휴학을 하고 한국에 가면서 우리 집에 짐을 맡기고 주소도 옮겨 놓았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후 아내는 지갑에서 비자카드를 꺼내 보이며 깔깔깔 웃는다. 편지가 오면 누구한테 온 건가 이름부터 확인하고 뜯어보는 게 순서가 아닌가, 하긴 카드를 잃어버렸는지 안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데 뭔 순서를 생각하겠어. 아내입장에서 본다면 비명을 지르고도 남을 만하다. 워낙 잘 잃어버리는 재주를 타고 났으니...
일을 마친 후 친구들과 소주한잔 마시고 있으면 전화가 온다. 현관문 밖에서 얼어 죽는다고 빨리 집으로 오라는 이야기다. 아내가 열쇠 잃어버리고, 아들도 열쇠 잃어버리고, 비상키를 번갈아가며 쓰다가 그것마저 잃어버리고... 노가리 까며 마시던 술잔을 놓고 집으로 달려가는 기분이야 당해본 사람 아니면 정말 모른다.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열쇠를 맞출 줄 모른다는 것이다. 코앞에 열쇠가게가 있건만...
한국에서야 주로 열쇠, 지갑 등 작은 것들을 잃어 버렸지만 뉴질랜드에 와서 다른 건 스케일이 좀 커졌다는 거다. 시골 살다보니까 호미, 삽, 뭐 이런 것들을 자주 잃어버리는데 아내가 텃밭에 가면서 항상 묻는 얘기가 “여보~ 호미 못 봤어?”라는 말이다.
몇 달째 찾고 있는 건지, 찾았다가 또 잃어버린 건지, 감자밭에 놓고 온 호미를 마늘밭에서 찾고 있는 건지... 어떤 땐 밭떼기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여보~ 부추 밭이 어디로 갔지? 내가 분명히 여기다가 부추를 심었는데...”
“부츠? 저기 있잖아~ 신발장속에...”
웬만한 사람은 거의 불가능한 일 일 테지만 아내는 자동차를 잃어버린 경력도 가지고 있다. 조개 캐러가자는데 내가 까딱도 않자 아내는 가방을 차에 싣고 바다로 달려갔다. 바닷가에 차를 세워놓은 후 열쇠가 들은 가방을 모래사장에 놓고 무르팍까지 잠기는 물속에 들어가 조개를 한 자루 캐고 나와 보니 가방도 차도 몽땅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멍하니 파도에 다 떠내려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조개 캐러 간 아내가 날이 늦도록 오지 않아 달려 가보니 아내는 젖은 몸으로 애처롭게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유치환님의 시를 읊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