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버니(Burni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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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버니(Burnie)에서

0 개 2,830 오소영
크루즈 중에 배에서 내리는 날은 언제나 바쁘다. ‘타스마니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땅이긴 하지만 육지 밑으로 외떨어진 남쪽의 아주 조그만 섬이었다. 바람이 차고 쌀쌀했는데 지도상으로 뉴질랜드 남섬에 거의 위치하고 있어서 추웠다는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Welcome Burnie’ 버스곁에 놓인 팻말도 반가운데 일일이 뱃지까지 나눠주니 고향에 온 듯 편안했다. 사람많은 대도시보다 한적한 시골에 갔을 때 인정냄새가 구수하듯이 역시 섬의 작은 항구도시는 사람을 대하는 스타일이 정겨웠다. 맨 처음에 간 곳이 박물관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1900년대의 거리풍경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어서 타임머신을 타고 한세기전의 시가지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병원, 이발소, 대장간 등 지금 보기엔 마치 고물상처럼 구질구질해 보였지만 옛것을 보며 오늘을 음미 해보는 좋은 경험의 시간이었다.

특별한 관광지는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시가지 구경이나 하려고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는 시티에서 머뭇거리다가 제법 큰 기념품 ‘숍’을 들어가 보았다. 재미있는 물건들을 꽤 많이 진열해 놓은 걸로 보아 크루즈 여행객을 상대로 하는 가계임을 알았다. 귀엽고 깜찍한 소품들이 눈길을 붙잡아 시간가는 줄을 몰랐는데 밖에 있던 친구는 따뜻한 국물이 먹고싶다며 한식당을 찾았단다. 이층으로 올라가 보았지만 거기는 어둑침침한 파킹장일뿐, 실망을 하고 내려오는데 쇼핑몰 노점 한 쪽에서 제법 사람들이 많이 웅성거려 기웃거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엉성하게 세워놓은 걸대에 그럴듯하게 반짝거리는 악세사리들이 여자들의 발길을 잡고 있었다. 아가씨들 둘이서 파느라고 여념이 없는데 어쩐지 그들이 내 이웃처럼 낯설지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아가씨들 혹시 한국인?.. .” “네 맞아요, 크루즈 여행 오셨어요?” 그들이 나보다 더 반가웠나보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쁜 일손을 놓고 되물어 왔다. 세상에! 이 멀고 낯선 외지에서 웬 일일까? 우리는 피붙이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서 함께 호들갑을 떨었다. ‘멜번’에 살면서 장사하러 여기까지 왔다는 그들이 너무 대견하고 신통해서 코끝이 찡 해왔다. 내 손녀만큼이나 어린 대학생들처럼 보였는데 용감하기도하지... 한가지 아쉬었던 것은 그들이 파는 물건이 우리 국산품이 아니고 중국산이었던 점이다. 허긴 자존심이 있지. 우리 국산품을 그렇게 헐값에 팔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한식당을 찾는 우리에게 난색을 지으며 여기에 한국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서 한식은 물론 일식당도 없다는 것이다. 장사 잘 하고 열심히 살라고 따뜻하게 격려 해 주고 돌아서면서 그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요즘 젊은이들은 비지니스라면 세계곳곳 어디든지 달려가 당당하게 맞서는데 그게 우리의 미래이기에 반갑기도 하거니와 그 활발한 의욕의 젊음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던가. 모처럼 점심을 ‘맥도널’이나 ‘서브웨이’에서 해결 할 바에야 차라리 배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우리는 리턴버스에 올랐다. 크루즈가 들어오는 날이 이 곳 주민들이 한바탕 들썩이는 장날이지 싶었다. 조용한 도시가 잠깐 사람의 활기로 들뜨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잠든듯 다시 고요해 질 Burnie!

바쁘게 배로 돌아오니 늦은 시간임에도 식당에선 여전히 배식을 해주어 다행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돌아와 있는 걸보아 외식을 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우리와 헤어졌던 다른 팀들도 결국은 배에 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나갔다니 다람쥐 쳇바퀴돌듯 좁은 곳에서 북적였던 그런게 나름 재미였던 것 같다. 별 특징없는 평범한 항구도시. 그러나 웬지 모르게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 같은 인정을 느끼겠끔 편안했던게 특별했다. 투어를 마치고 귀선을 서두르는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속속 돌아오고. 때를 같이 해 입구에선 ‘백 파이프’로 곧 떠날 우리를 환송 해 주는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의 남자들 십여명이 한시간이 넘도록 계속해서 연주를 하고 있으니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환영도 따뜻하게 환송도 멋지게 그들은 그렇게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나약한 여성의 몸이지만 강인한 정신으로 세상을 이겨나가는 우리 동포 아가씨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내 서랍속에서 반짝이는 브럿지를 볼 때마다 그들을 떠올려 행운을 빌어준다. 그리고 황혼무렵 ‘백파이프’ 고운 연주로 내가 마치 ‘스코틀랜드’ 동화의 궁전에 온듯 착각을 하도록 인상깊게 환송을 해 주던 그들을 잊을 수 없어 Burnie는 내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여행은 새로운 곳을 보고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항상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보람이 있다. 오늘도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정성스럽게 연주를 할 것이다. 낯선 사람들에게 행복을 심어주고 추억으로 남겨질 그들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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