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도화지에 행복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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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도화지에 행복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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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카렌다를 바꿔 걸었으니 어김없이 나이 하나를 더 먹은게 틀림없다.

음식은 먹으면 줄어 드는게 이치에 맞는데 떡국을 먹으면 보태지는게 나이가 아닌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육신의 변화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

"나이를 먹는다고 함은 사물을 볼 줄 알게 됨을 말한다. 그리고 육체는 젊게 태어나 늙게 성장한다. 그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라고 석학 와일드가 말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했다. "영혼은 늙게 태어나 젊게 성장한다. 그것이 인생의 희극이다." 라고.....

어느날 한자락 긴 꿈에서 깨어나듯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니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주변에서 얼마든지 줏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드디어 사물을 볼 줄 아는 싯점에 도달한 것인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가? 그래서 인생이란 생각하기에 따라 비극일수도 희극일수도 있다고 말하나 보다.

낙엽이 떨어져 흩날릴 때 괜스레 슬퍼지는 가을을 수도 없이 경험해 왔다. 그게 얼마나 사치스런 감정이었나! 이젠 그 낙엽 한 잎이 어디로 날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라는 의문 부호를 달며 괜스레가 아닌 진짜 쎈치멘탈에 빠진다. 어느날 연두색 여린 나무 이파리 하나가 태어나 비 바람에도 잘 견디며 나풀나풀 자라더니 일생을 다 한 싯점에서 낙엽되어 떨어져 아무데나 딩구는 아련하고 애잔한 슬픔이랄까? 숙명으로 생을 마감하는 소박한 순간이지만 용감하게 싸우다 가는 전사를 보내듯 장엄하고 존엄한 기분이 든다.

불행이라고 울먹였던 지난 세월들도 이제와서 돌아보니 행복은 금방 잊어버리고 불행만 오래도록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이란건 날개가 있어 오래 붙잡아 둘 수가 없다" 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 불행은 짧게. 행복은 오래 두고두고 음미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절하다.

아침햇살 가득한 마당에 파아란 풀포기들. 활기차게 숨결 뿜으며 살랑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건강한 의식에서부터. 아직도 팔팔하게 숨쉬며 삶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만도 행복으로. 그리고 내 애들이 이 모진 세상풍파 잘 견디며 참고 살아 주는 고마움이 행복이고. 또 그 애들의 애들이 곧은 길을 걸으며 바르게 자라주는 것도 내겐 행복이다. 먹구름 속에 무지개가 걸리면 또 다시 비가 올 것이라고 미리 걱정을 했지만 이젠 무지개의 곱고 아름다움을 순수한 동심으로 즐기게 되니 그것도 행복이다. 옆집 고양이가 내 집 현관에만 길게 누워 자는 게 불편해서 눈치를 주었는데 그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어 준 내 현관이 고마울 뿐이다.

아득한 절망감으로 벼랑 끝에서 절규하듯. 서서히 늪에 잠식해 가던 우울증에서 벗어나니 알을 깨고 나온 햇병아리처럼 새 세상 구경에 정신 없다. 행복이란 물감으로 다시 채색된 새로운 세상이 경이롭기 만하다.

저 눈부신 태양도. 옷 속으로 파고드는 신선한 바람도. 새들의 지저귐도 시끄럽고 귀찮을 때가 많았는데 새로 나온 음반의 신곡을 듣는 듯 산듯하고 감미롭다. 아직도 사고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삶의 의욕인가. 가끔은 고난이도의 숙제같은 어려운 일들이 생기겠지만 고뇌하며 사는 게 인생이라던가. 어쩌리~

97세의 전 국회의원 어느 분이 9년째 부인의 유골함을 머리맡에 두고 함께 살아 오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평생 부인에게서 받은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노옹의 사부곡이다.

행복이란 객관적인게 아니고 이렇게 주관적인게 맞는 답인가보다.

이 한 해도 가느다란 다리로 휘청거리며 다니는 키 큰 기린처럼 그렇게 그렇게 세상을 멀리 느긋하게 관조하면서 녹색나라의 행복을 음미하리라. 허리가 휘청하도록 버거운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 가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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