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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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쁨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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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도 마지막 달,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살다보면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기복의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지만 될 수 있으면 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 즐거웠던 일들만 추려 간직하기로 마음 먹는다. 거리에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츄리들처럼 마음속 등불이 되어 생각만 하면 환하게 웃음짓도록 하는 사람들.

"앉으세요. 때 거르지 말고 드셔야 합니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지만 정겨웁게 들려 오는 내 식탁 한 귀퉁이. 식욕을 잃어 식탁에 앉기조차 망서릴때 언제나 들려 오는 그 목소리다. 투명한 유리병 속에 갇혀서 만져 볼 수는 없어도 화사한 웃음처럼 붉게 핀 한송이 장미, 그 꽃을 바라보노라면 그것은 금방 그의 얼굴로 변해 버린다. 내 사랑하는 딸을 맡겨 조금도 불만이 없는 사위라는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 금방 시들어 버리는 카네이션 한송이로는 안 되겠다며 이 먼 곳에까지 가지고 올 수있는 한국에서의 어버이날 꽃 한송이었다. 오랜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특별한 비법으로 밀봉된 병에 가두어진 붉은 장미, 몇년은 거뜬하니까 저이들 보듯 하라는 뜻이었겠지. 두툼한 옷으로 싸고 말아서 보물처럼 가방 깊숙히 넣어 가지고 왔는데 공항에서 짐 검사 때 그게 바로 문제가 될 줄이야(.....) 검사실로 사무실로 여러번 들낙거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음을 죄게 하더니 드디어 "오케이" 싸인이 떨어졌다. 우리 아이들 마음을 빼앗길까 봐 조마조마했던 이 어미 마음을 그들이 알아차렸을까? 그 사람들 지문을 말끔히 닦아 내고 오늘까지 그렇게 초연하게 내 식탁을 지켜 주고 있어 식사 때마다 그 애들과 함께 한다.

내 집 가까운 곳, 오색 화려한 츄리속에 반짝이는 집이 있다. 눈 썰매를 끄는 빨간옷의 싼타 할아버지를 보며 내겐 벌써 그가 다녀갔음을 연상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달랑달랑 복주머니에 예쁜 구슬이 늘어진 "근하신년" 대한민국 연하장, 그 안에 "즐거운 성탄을 맞이하며"로 시작되는 정겹게 써 넣은 덕담이 종이 한가득 들어있다. 해를 거르지 않고 보내 오는 내 오라버니의 정성어린 육필을 보면서 그 어느 해 보다 색다르게 가슴이 죄어 왔다. (이게 아니야, 이럴 수는 없는데-) 감동의 눈물이랄까. 철통같이 잠그고 사는 내 울음보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갑작스럽게 홀아비가 된 예순 중반의 오빠를 남겨 두고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 떠나 올 수 밖에 없었던 이민의 길. 따뜻한 위로의 말조차 제대로 못 남기고 나 몰라라 하듯 훌쩍 떠나 온 길.

고통의 순간들을 맞으면서 먼저 혼자가 된 내 처지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어 미안하다는 위로의 말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등산 클럽에 여자 친구는 없으셔?" 노래도 잘 부르고, 말수단 좋은 그리고 청년같이 기개 넘치는 멋쟁이 그 남자를 왜들 그냥 두는거냐고 앙칼진 항의로 보채기도 했었다. 어렸을 때는 개구장이로 귀퉁이 쥐어 박히며 싸움도 많이 했지만 칼날처럼 줄이 선 감색의 군복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공군 오빠와 연인처럼 붙어 다니던 우리 남매가 아니었던가. 어른이 되어 각자 다른 세상에서 소원하게 살아온 세월이 꾀나 되었는데 인생 소용돌이 먼 길 돌아 돌아 아이 때처럼 이제 다시 만났다. 내 불행할 때 행복하게 너무나 잘사는 올케를 질투해 가고 싶지 않던 친정. 오만한 자존심 하나로 단단하게 버티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친정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빛 바랜 내 외로움보다 청승으로 얼룩지는 홀아비 남자가 불쌍해 같이 붙잡고 목놓아 울고 싶던 한 세월도 있었다. 하지만 복 많은 그 불행의 시간이 길지 않았다.

어디서 나타났을까? 육십대 홀아비를 지아비로 맞기엔 너무도 젊디젊은 우리 예쁜 올케, 어느 모임에서 사회를 멋지게 보는 남자에게 "뿅" 갔다는 그의 말처럼 가족들 모두를 감동시키며 맏동서의 자리를 잘 지켜 주었다. 가진것 그리 많지 않지만 사랑을 알고 멋을 알고 따뜻함을 지닌 남자라는 걸 영특하게도 알아낸 새 올케의 예지에 박수를 보냈다.

행복 다시 시작 -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줄 알았는데 - 누구의 시샘을 받았을까? 그 젊은 올케가 중병에 걸려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접한지가 수개월이나 되었다 (어쩌지, 어떡하지?...) 군주처럼 떠 받들어 존경받던 오빠가 이젠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할 차례인가보다. 마누라 병수발에 녹초가 된게 틀림없을 텐데도 그 의연함이란 과연 우리 오빠답다. 당신 걱정 속에 접어 두고 동생 염려에 애가 타는 듯 한 사연이 갑옷으로 무장한 튼튼한 내 가슴에 촉촉한 봄비로 내려 않는다. 육친의 정이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웠음을 이제야 절절히 느끼는 바보. 이 먼 곳에 있어도 항상 잊지 않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 그들은 내 나머지 삶의 여백에 기쁨을 채워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올케의 빠른 쾌유를 두 손 모아 기도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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