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여자”를 잃어가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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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여자”를 잃어가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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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좋아라” 병원에서 그리 환하게 웃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진료실 문을 나서며 밝게 웃고 나오는 친구. 마치 아이같은 모습에 밖에서 기다리던 나를 의아스럽게 만들었다.

당뇨 합병증 때문에 육개월마다 정기검안을 받는데 사실 병원이라는게 갈 때부터 기분 좋은 발걸음은 아니기에 “이상없음”을 확인받을 때처럼 기쁜일은 없을 것같다. 검사 때 눈에 넣는 약 때문에 한동안 침침하고 불편해서 손수 운전하기 어려워 기사로 따라간 나와 통역사 아줌마, 세 사람 모두가 기분이 좋아 발걸음이 가볍다. 아침 일찌기 나선 길이라 조반도 거르고 허둥지둥 왔으니 슬며시 시장끼가 도는데 이심 저심이랄까.

“아랫층에 내려가서 무얼 좀 먹고 가십시다.” 친구말에 “아 그러세요. 오늘 제가 한턱 쏠께요.”선뜻 통역사 아줌마가 나선다. 일에 쫓겨 늘 바쁘게 뛰어다니는 직업인인 그녀가 오늘은 시간여유가 있고 하니 좀 쉬어 가겠다는 뜻이리라.

“요즘 젊은 애들은 한턱 쓸 때 쏜다고들 하던데 제가 쏠께요.”
의기투합이 잘되고 있는 조짐이다.
이 나라나 저 나라나 큰 병원 삽이나 카페는 땅집고 헤엄치기로 돈을 버는 황금자리가 아니던가. 줄을 서서 오다를 해야했다. 아직 이른 오전임에도 그들은 주문받기에 바뻤다.

케잌 한조각 커피 한 잔에 여자끼린 벌써 수다판이 벌어진다. 여자들은 함께하는 자리만 있으면 남자들 성토하는 재미로 사는지……, 아내는 바뻐서 뛰는데 별로 하는 일 없는 남편은 집에서 너무 한가해 어쩔 줄을 모른단다. 그렇다고 선뜻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게으름을 떨어 미워서 차라리 이렇게 나와 안보니 다행이란다. 무엇 때문에 좋은 직장 버리고 남의 나라에 이민와서 보잘것없는 남편으로 전락해가고 있는지 후회로 가슴을 치고 있을지도 모를 그 남편. 집안에만 있지 말고 부지런히 골프라도 가라는데 그것마저 게으르다나. 그리고 보니 문득 자주 골프장에서 만나게 되는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물론 저녁시간에 청소업을 한다던지 특별히 낮시간이 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더러는 그 집 남편처럼 시간을 죽이려고 골프채를 휘두르는 시람들도 있을 법 했다. 작은 공에 별난세상 울분을 실어 힘껏 쳐 날려 보내는 것은 아닐는지…. 여자들은 이 나라에 오면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여자가 우대받는 나라에서 그 맛에 길들여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허다못해 노인들까지 식사후 커피정도는 남자들이 손수 타다 바쳐(?)야 하는 걸로. 절대로 그리 못할 것같던 분들까지 알아서 척척이다. 이 나라 문화에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며 살아가는 작은 변화 어쩔 수가 없는 일이 잖은가.

이민이라고 식솔들 끌고 왔는데 살아갈 방법을 못찾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남편을 혼자 보내 놓고 아이들과 기러기 가족으로 살아도 여기가 좋다고 남는다. 말 그대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역시 안가겠다고 선언해 눈물을 먹음고 혼자만 돌아서는 그 젊은이의 쳐진 어깨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또 가끔씩 가족을 만나러 오는 남편이 반갑기만 한게 아니라 손님 같아서 생활의 리듬이 깨어져 귀찮아지고 빨리 돌아갔으면 한다는 솔직한 아내도 보았다. 부부는 늘 함께 있어야 하거늘‘큰일 났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말이 통하고 기분이 좀 맞는 사람이라고 많은 말을 나누다 보니 나도 참 수다스런 속물임을 알아 실소가 절로 나왔다. 세상을 조금 많이 살았다고 이젠 겸손도 사양하고 인격은 어디 버렸는지 갑자기 자신이 경멸스러워졌다. 이제 막 늙어 가고 있음이야.

“스트레스? 이렇게 뜻맞는 분과 수다 좀 떨고 나면 금방 괜찮아지잖아요."

중년여성의 항변에 공감하면서 나는 그 시대에 그렇게 못해 가슴속에 잔뜩 병을 키우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요즘 여자들은 현명하고 지혜로워 자기 좋은대로 고집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니 얼마나 좋은가. 이 나라에 이민와서 사는 여자들은 더욱 더 그 특혜를 누리고 살지 않나 싶다. 이민은 결국 여자들만을 위해서 온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여성 참정권이 그 어느 나라보다 먼저 뿌리내린 나라, 뉴질랜드는 현재도 여성파워가 이끌어 가는 나라이기도 하질 않은가.

“두 분 여자들 대단하구만”옆에서 듣고만 있던 친구분 오래간만에 한 말씀 하신다. 젊은 사람 같았으면 그런 말 듣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분도 나이드셨으니 옆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자들은 저렇게 사는구나 하고 웃기만 했을까 아니면 나는 어떤 남편으로 살았나 반성이라도 하면서 살아온 긴 인생여정 뒤돌아보기라도 하셨는지….

시간이 꽤나 흘러 운전기사는 수다만 실컷 떨고 운전은 그 분이 하셔도 되게 되었다. 마음놓고 가슴 속을 비우고 돌아서 가는 중년여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산다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뭐.

우먼 파워니 여성상위시대니 하는 말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내가 살고 있지만 나는 단연코 고개를 흔들고 싶다. 여성은 남성과 다르게 치마를 입는 특권을 가졌다. 그렇듯 그 다름의 매력을 영원히 잃지 말아야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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