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 터널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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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터널 속으로

0 개 4,081 KoreaTimes
  이젠 자전거 타고 다녀야 할 판이다.

  14년 전 막 이민 왔을 때 자동차 연습을 위해 한 밤중에 '퀸 스트리트'에 나가곤 했었다. 모든 것이 생소한 데다, '라운드어바웃' 등 한국과는 사뭇 다른 운전 체계에 자신이 없었다. 생각다 못해 한 밤 중에 차를 몰고 시내에 나가 보니 도심 전체가 환히 불을 밝혀 둔 채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니 신호에 따라 좌회전, 우회전, 그리고 직진-그렇게 몇 번 하고 나니 퀸스트리트가 내 손 안에 들어 왔고, 몇 일 밤 다니니 모터웨이도 전혀 부담이 안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리터당 60센트 정도 밖에 안 되던 시절의 얘기이다. 지난 일요일 '와이우쿠'에서 농장을 하시는 분이 "집에서 교회까지 왕복 기름값이 $40이나 든다"고 걱정하는 말을 들었다. 자고 나면 뛰는 유가에 속수무책인 정부가 그저 야속할 따름이다. 행보를 줄이는 길만이 자구책일지, 아니면 삼천리호 자전거로 교체해야 할 듯 싶다.

  <2004년 겨울 어느 날, 시내 한식당 '낙원'에서는 교민 몇 사람이 조용히 모여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에 어머니와 함께 앉은 청년이 바이올린의 귀재로 떠 오른 교민 자녀 이남석(Eugine Lee)군이었다. 당시 남석군을 돕는 후원회는 없었고, 단지 교민 사회 각계에서 행사 때마다 무료 출연을 부탁해 오는 것이 관심이라면 관심이었다. 그 즈음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골프 치고, 저녁 먹으며 정을 나누는 소박한 모임이 있었는데 모일 때마다 저녁 값 외에 $10씩을 더 거두었다. 언젠가 이 조그만 돈이 모여 의미 있고 소중한 곳에 쓰여지기를 기대하면서 이름도 아예 '$10 모임'이라 했는데, 그 날 이남석군을 격려하려고 모인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한 일은 그 동안 십시일반으로 모은 $1,000을 전달한 일과, 맛있는 저녁을 사 주면서 "많은 교민들이 지켜 보고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고 꿈을 이루기 바란다."고 격려한 것이 전부였다. 그 멤버 중에는 교민언론사를 운영하는 이도 있었지만 약속대로 기사화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헤어졌을 뿐이었다. "예술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 가는 아들이 때로는 안쓰럽고 지쳐 보였지만 오늘 밤만은 아들과 제 마음에 큰 감동을 느낍니다." 헤어질 때 덧붙인 어머니의 한마디가 여운으로 남았다.>

  <최근 태권도 종목에서 베이징 올림픽 뉴질랜드 출전 티켓을 따낸 '정혜윤'양이 화제다.

  지난 3월 4일자 '코리아타운'에서 예쁜 미소와 앳된 표정의 정양이 특집으로 소개 되면서 혜윤양의 부모는 물론, 뉴질랜드 대표 감독이자 혜윤양의 스승인 오진근관장의 훌륭한 선택이나 지도도 알려졌고, 태권도를 위해 한국으로의 역 유학까지 감수하는 혜윤양의 인내와 불굴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사 끝에 "뉴질랜드해운, 타카푸나정육점, 자금성 등 조그만 교민 업체들이 성의를 모아 이들을 돕고 있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언젠가 낙원식당에서 이남석군을 격려하던 '$10 모임'의 멤버들과 오우버랩 되면서 아직은 교민 사회가 살만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뉴질랜드 사회는 많이 어려워지고 있다. 일부 대형 금융업체들의 도산, 유가고공행진, 환율급등, 연이은 모기지율의 상승과 부동산 경기침체 등 하나 같이 악재들이다. 한 때 3만 명까지 넘나들던 교민 숫자도 1/3이상 감소된 어려운 현실이다.

  며칠 전 우연히 어떤 키위와 만나 얘기하다가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희망도 보이질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냐'고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그런데 대학 교수인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자기 생전에 뉴질랜드가 크게 돈을 벌거나 부자였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경기가 좀 좋았거나 보통, 때로는 대단히 나쁜 적도 있었단다. 그렇지만 견딜만 했고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소박하게 살면 될 거라고 했다.>

  순간 "아아 그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우리는 나라까지 빼앗길 정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가? 6.25의 참화가 전국을 휩쓸었고, 30리쯤은 책가방 들쳐 메고 걸어서 통학하던 시절, '보릿고개'는 매해 등장하는 보통명사였다. 그런 시련을 모두 극복하고 근대화, 나아가서는 한강의 기적을 창조해낸 '진정코 참는데 이력이 난' 우리 민족이었던 것이다.

  어렵고 배고프던 시절, 그리고 그 때는 오히려 서로 돕는 마음이 있었던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한국인의 의지와 정(情)을 찾아 가는 지혜가 아쉽다.  "크게 부자가 아니었었기에 이 정도의 불경기는 견딜 만 하다"는 어느 교수의 얘기처럼  우리도 한 번 견뎌 내 보자.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고, 터널이 길면 바깥 세상이 더 밝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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