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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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편지

0 개 112 오소영

창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 폭우 주황색 주의보가 떠있다. 분명 어딘가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을텐데 홍수 피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온 세상이 젖어가니 내 마음도 촉촉해지고 있다. 깊이 묻어둔 그리운 얼굴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차라리 비가 세차게 쏟아지면 기분이 개운해 질것만 같다.


방황하던 낙엽들이 물매에 바스러져 형체도 없이 구석으로 몰려든다. 작은새 한 마리가 서커스 하듯 휘청거리다가 사라져간다. 빗속의 풍경들이 스산하다못해 서럽다. 


샛노란 우산 받쳐들고 과감하게 밖으로 나설까?젖은낙엽 밟으며 가을비 우산속에 낭만이라도 즐기련만 . . . 


ㅎㅎ 그것도 이젠 옛날 이야기. 한발 나서기가 겁나서 비와 친해질 방법을 생각한다.


향기 폴폴 풍기며 젖어든 마음을 녹여주는 따끈한 커피한잔이 우선 순위다 적당히 달달하고 고소한 뒷맛을 음미하는 순간. 의식은 무념무상의 나른함에 빠져든다. 그 괜찮은 기분. 내 소박한 행복감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긴 삶의 끝자락이다. 커피 한잔에 이토록 소중한 행복을 느끼다니. . . 행복은 아주 가까운 곁에 늘 있는 것이었다. 인생을 이만큼 살아봐야 깨달을 수 있는 진리.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무조건 오래 살고볼 일이다. 꿉꿉했던 마음이 화사한 나라로 달려가고 있다.


문득 낯익은 그림 하나가 눈 앞에 펼쳐졌다. 지금처럼 비내리는 어느 날의 질척한 삽화 한자락이다.


남쪽 시골 어느 마을로 골프 소풍을 떠났다. 먹구름이 해를 품어 하늘이 어둡고 침침했다. 날씨가 화창하면 더 좋았겠지만 모처럼 소풍날에 들뜬 표정들은 밝았다.


도심을 벗어나 흙냄새를 맡으며 달리는 여행길이 참 좋았다. 룰루랄라 집만 벗어나면 온종일을 달려도 좋은데 2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목적지 골프장에 도착했다.


날씨 때문일까? 주말임에도 오후의 골프장은 한산했다. 마치 우리만의 세상같아 원정나온 기분이 마냥 흐뭇했다. 신나게 공을 때리니 비거리도 제법이었다. 이건 또 무슨일? 골프가 멘탈게임 이라더니 기분 탓일까? 모든게 멋지고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5번 홀에서 퍼팅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이다. 마치 도둑 고양이 소리없는 발걸음처럼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무시해도 될만큼 그렇게 . . .


멀리서 흩어져 나가는 팀들이 더러 보였다. 이 정도 이슬비에 기권하는 사람들은 마을 주민들일 꺼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원정을 왔으니 쉽게 포기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C여사는 잽싸게 우산을 펼쳐 들었다. 나도 천천히 비 옷을 꺼내 입었다. 두 남자들은 아무렇찮게 게임에만 집중하고 있다. 땅은 어느새 질펀하게 물이 흐르고 있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둡고 쉽게 그칠비가 아닌게 확실했다. 남자 두분은 골프에 목숨건 사람들 같았다. 물묻은 공과 고전을 하면서도 끄떡을 않는다.


조용히 젖어가는 세상은 잠든듯 고요했다.


우산을 받쳐든 C여사의 아랫도리가 다 젖었다. 불편한 내색을 않으려는 모습이 대단하다. 비 옷 속에서 땀으로 젖은 나도 괜찮아 보일뿐 괴로웠다.


초라하게 생쥐 꼴이 된 남자들은 보기조차 민망했다. 이건 좀 심한 것 같아 속에서 쿡쿡 웃음이 나왔다.


소리없이 내리는 비는 그칠줄을 모른다. 18홀 끝내기가 너무 멀고 지루했다. 비를 피해 숨어있던 새들이 갑자기 바쁘게 날아간다. 저녁둥지를 찾아가는 모양이다.


드디어 마지막 18홀에 도달했다. 어쨌든 퍼팅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마쳤다.


절인 배추처럼 후줄근한 네 사람이 서둘러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이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둘러보니 이층이었다. 비를 피해 프로샵에 있던 사람들인 모양이다. 창가로 몰려온 그들은 구경꾼처럼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창피한 생각이 들어 얼른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요란하게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질 않은가 바로 우리들에게 . . . “와”~~ 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 이게 꼴찌에게 보내는 박수로구나. 숙였던 얼굴을 번쩍들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듯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기분좋은 세레모니 답례였다. 창피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개선장군 처럼 어깨가 으쓱해졌다. “우리는 코리안 이다” 멋드러지게 ‘아리랑’이라도 한곡 불러주고 싶었다.


커피 한잔의 마약같은 선물이다. 일탈의 특별했던 날을 기억하게 해준다. 추억이란 아름다운 채색까지 더해서  . . .


“사랑해~” 꿈을 깨주는 메신저 카톡 신호음. 정신을 가다듬고 현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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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벚꽃 소식이 날아들었다. 축축한 가을비속에 봄 소식을 지구 반대편 고국으로부터 듣는다.


3월을 보내고 4월이 되면 어김없는 기다림이 있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벚꽃소식을 기다리던 서울의 봄. 지금은 낙엽을 밟으며 북쪽으로부터 꽃소식을 듣는다.


자식들 다 떠나보내고 다시 홀로가 되어 빈 둥지를 지키는 여인. 이미 석양으로 기울어가는 가을단풍 인생이다. 겨울을 견디고 회춘하는 꽃소식에 마음이 들뜬다.


봉긋거리는 꽃망울이 며칠 있으면 활짝 피련만 참을수가 없다. 혼자이면 어떤가. ‘군항제’를 핑계로 ‘진해’행 꽃마중을 떠난다. 반갑게 맞아주는 꽃들과 함께 남해안 바닷바람이 답답했던 마음을 활짝 열어준다. 그것으로 끝낼 수 없어 ‘마산’으로 ‘경주’로 벚꽃행렬 속에서 헤매다 돌아오곤 했다.


고택(古宅)의 검은 기와지붕과 벚꽃의 조화가 제일 멋스러운 경주는 또 하나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도 있다.


꽃무더기 사이로 보일듯 말듯 숨어있는 작은 건물. 마침 커피가 고플때 ‘카페’ 라고 써있는 유리창을 발견했다. 꽃속에서 마시면 그 향조차  독특할 것 같았다. 찾아 들어가니 골목 안 깊숙이 입구도 허술한 낡은 건물이었다. 카페는 2층에 있다고 빨간색 화살표가 붙어있다. 나선형 계단이 재밌어서 천천히 올라갔다. 우측창가에 흐드러진 꽃가지가 손에 잡힐듯 가깝다. 화사한 꽃가지들은 2층 창에도 어김없이 따라 와 있다. 거기 털퍼덕 주저앉아 즐기며 놀고 싶었다. 홀린듯 얼마쯤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 여기 들어와 앉아서도 똑같이 다 보이거든요.”


깜짝 놀라서 돌아다 보았다. 여염집 아줌마처럼 수수한 차림의 여인이 문을 반쯤 밀고 서 있는게 아닌가. 창피해서 빨려 들어가듯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웃으며 창가에 자리를 안내했다. 카페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테이불에 점잖아 보이는 남자 어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 오셨죠?... 그런데 혼자시네?...” 혼자라는 뒷말이 거슬렸다. 여행자라는 걸 어찌 알았느냐고 되물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단다.


부드러운 말투에 뒤에 흘리는 웃음이 늘 보는 이웃처럼 정겨웠다. 커피를 주문하고 천천히 둘러보았다. 화려한 장식 없는 소박함이 여인을 닮은것 같았다.


대신 시화(詩 畵)인지 벽에 그림들 전부가 글을 겯드리고 있었다. 일어나 감상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종업원도 없는지 한참만에 여인이 손수 커피를 날라왔다. 한잔이 아니고 두 잔이었다. 의아해서 바라보는데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마주앉는다.


황혼은 틀림없는데 뭐랄까 딱 낭만소녀 같다고 말했다. 같이 커피 마시며 친구하고 싶은데 괜찮으냐고 물었다. 별일도 다 있다고 속으로 웃었다.


빈둥지 지키는 외로움의 낭만끼를 돌려서 말하다니 보통 여인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낭만소녀? 듣기에 싫진 않았다.


여인은 자기 소개를 먼저 했다.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다가 얼마전에 정년퇴직을 했단다. 혼자 빈집 지키기 싫어 이렇게 나와 앉았다며 또 웃었다. 


벽면을 장식한 그림과 시가 모두 그녀의 작품이었다. 그림도 그리지만 요즘은 시가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도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런줄 알았다고 맞장구를 쳤다. 느낌이란 참 묘한 감정이다. 우리는 문학적인 이야기며 살아온 인생사를 허물없이 나누었다. 마치 오랜지기를 만난듯이...


헤어질 때 내년에 꼭 다시 오라는 말을 그녀는 잊지 않았다. 그 날 이후 ‘경주’는 벚꽃말고도 기다림이 있는 특별한 곳이 되었다.


해를 거르지않고 꽃마중 여행을 떠났다. 아니 그녀를 만나러 간다는 마음이 더 급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이 통하는 삶을 이어갔다 일년에 한번 견우 직녀처럼...


이민 2년만에 고국 나들이를 갔을 때가 마침 4월이었다. ‘경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꽃길 속을 헤집으며 그 카페로 달려갔다. 커튼처럼 드리워진 꽃가지가 변함없이 창문을 가리고 있다. 그런데 저 낯선 글씨는 뭐지? ‘게임방’ 이란 큰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맥이 탁 풀리면서 다리에 힘 이 쭉 빠져버렸다.


그녀가 우주밖 다른 세상으로 떠난 것 같았다. 우리가 그런 나이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토록 오래 살줄 그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도 어느 하늘 밑에서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이었지만 우연의 만남은 필연보다 질긴거니까... 한자락 꿈같은 ‘경주’의 벚꽃 추억이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손에 들고있는 커피잔이 싸늘하게 식어있다.


비바람이 점 점 거칠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벽에 부딪히는 무언가의 날카로운 소리에 깜짝 놀란다. 뉘집 쓰레기통 뚜껑이 날아와 박살이 나서 뒹굴고 있다. 장미꽃 빨간 이파리 하나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간다. 외롭게 남아있던 딱 한송이 옆집 장미꽃이 인사도 없이 사라져 간다.


보석처럼 부서져 내리는 봄 햇볕 창가. 그 창가에서 가을사는 그리운 이를 생각하며 보내온 벚꽃선물. 흘러나오는 음악은 ‘쇼팽’의 봄의 왈츠 다. 경쾌하고 발랄하다.


공유하는 이와 공감하면서 그지없이 마음이 따뜻해진다. 진솔하게 다가오는 느낌. 연륜이 쌓인 여유로움 때문일까?


고국의 봄 4월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늙은이를 착각하도록 흔드는 얄미운 나의 4월 ....


무도회장 아니면 어떤가. 흐드러진 벚꽃마당에서 한바탕 멋지게 왈츠를 추어보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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