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영혼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천미란
성태용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커넥터
Roy Kim
차자명
권레오
독자기고
새움터
김준
박기태
수선재
김도형
마이클 킴

피아노의 영혼

0 개 393 한일수

acddc17d7ff625c8e4945ac9371bc93c_1773186672_0722.png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


1994년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하면서 마침 딸의 권고로 뉴질랜드 영화 ‘피아노(The Piano)’를 감상하였다. 1993년에 개봉되어 칸느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작품으로 여류감독 제인 캠피온이 각본, 연출을 한 영화인데 한국에서도 상연되어 나에게도 뉴질랜드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제인 캠피온은 1990년에도 ‘내 책상 위의 천사’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획득한 바 있는 재원이다.      

 

스코틀랜드태생인 주인공 벙어리 아다는 미혼모로서 9살짜리 딸 플로라와 생명의 분신인 피아노를 대동하고 뉴질랜드까지 시집을 오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은 개척 이민자로서 원주민 촌에서 오로지 토지 매입과 개척에만 매달린 사람이었다. 따라서 피아노 같은 것은 아예 관심도 없었으며, 피아노는 해변에 방치되고 만다. 피아노를 잊고 살 수 없는 아다는 남편의 원주민 친구에게 요청하여 피아노 해변으로 안내되었다. 이때 기쁨에 넘쳐 열정적으로 건반 위를 누비던 아다의 피아노 연주와 딸 플로라가 펼치는 환희의 춤은 관객의 영혼을 뒤흔들고 만다. 


그 장면에서 연주한 곡이 마이클 니만(Michael Nyman)이 작곡한 영화의 주제곡인 ‘The Heart Asks Pleasure First(마음은 먼저 기쁨을 구한다).’이다. 이민 온 후 ‘Natural History Club’에 가입하여 영화의 촬영지를 답사하는 ‘Piano Track’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피아노가 연주되었던 카레카레 비치(Karekare Beach)를 잊을 수가 없다. 


영화 ‘피아노’에서 주인공 아다는 말로서 표현하지는 못하나 침묵 속의 그녀는 피아노를 통해 세상과 대화한다. 피아노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거친 바람, 검은 모래, 텅 빈 바다, 그 외로움의 풍경 속에서 흐르는 ‘The Heart Asks Pleasure First’는 기교를 과시하지 않고 있으나 절박함이 담겨 있기에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만다. 말을 잃은 인간이 음악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장면에서 영혼의 울림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려는 존재이다. 울음, 노래, 그림, 시, 춤 등을 표현하지 못하면 인간은 점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다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욕망, 분노와 사랑을 토해낸 것이다. 여기서 피아노는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그녀의 ‘존재 증명서’였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영혼을 얘기하는데 영(靈)과 혼(魂)은 다르므로 이를 개념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유일하게 영혼을 지니고 있으나 동물에게는 혼은 있으나 영은 없다고 한다. 영은 영성(靈性)이라는 말에서 유추하듯이 하늘에서 부여받은 근원적 생명성이며 도덕성·양심·초월성·깨달음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로 하늘과 통하는 차원이라 말할 수 있다. 


반면 혼은 정신·의식·감정·기억과 관련, 살아 있을 때 활동하는 정신적 기능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는 능력을 말한다. 짐승에게도 감정과 기억은 있으니 ‘혼’의 기능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도덕적 지각과 초월적 성찰의 차원 즉 ‘영’의 차원은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사람은 조용히 남을 배려하고, 약한 이를 돌아보며,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다. 남보다 앞서기보다 함께 가기를 원하고, 이기기보다 이해하기를 선택한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그의 말에는 따뜻함이 묻어나고, 그의 눈빛에는 맑은 빛이 흐른다.       


AI 시대가 되어 인간의 기능을 AI가 대행할 수는 있어도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영적 영역은 대신해 줄 수가 없다. 기계가 아무리 완벽한 곡을 작곡해도, 유명한 작곡가의 곡을 정확히 연주한다 해도 인생의 고락을 체험해 본 사람의 감성적인 연주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AI 시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인간 사회는 인간다움을 더 깊이 자각하고 인간다운 대처 방안을 모색해나가야 할 것이다. 


즉 영성의 강화, 인간관계의 회복, 도덕적 책임성 확립의 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대안이 예술을 통한 교감을 활성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AI가 곡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있겠지만 연주자가 처한 상황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혼의 떨림을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피아노 앞에 앉은 두 존재를 상상해 본다. 한쪽은 최첨단 AI가 작곡한 완벽한 악보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평생의 기쁨과 상실을 딛고 90대 노인이 된 피아니스트가 앉아 있다. AI의 연주는 정확하다. 박자도 강약도 화음도 흠이 없다. 그러나 인생의 굴곡을 지나온 노 연주자는 어떤 음에서 잠시 숨을 고르거나 어떤 화음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떨림이 묻어나온다. 그 떨림은 계산된 것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에서 배어 나온 것이다. 예술은 기술의 산물이기 이전에 존재의 고백이기 때문인 것이다. 


AI는 혼의 기능을 빠르게 대신하고 있다. 기억, 계산, 분석, 작곡까지도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어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남아야 할까? 영으로 남아야 한다. 즉 고통을 통과한 공감, 눈물 속에서 길어 올린 음 하나, 옳고 그름을 묻는 양심,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용기를 말함이다. AI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우리는 더 많이 사색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욱 진실하게 연주해야 할 것이다. 피아노 앞에 앉는다는 것은 단순히 건반을 누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생을 고백하는 일인 것이다. 혼은 음을 만드나 영은 의미를 만든다. AI 시대는 인간의 능력을 시험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깊이를 묻는 시대인 것이다.               


달빛이 흐르는 찬란한 밤, 어느 눈먼 소녀를 호숫가에 안내하고 싶다. 은빛 물결이 잔잔히 일렁이고, 바람은 물 위를 스치며 낮은 숨결을 남기고 있다. 가까운 이웃들을 초대한 가운데 그 소녀를 위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No.14 1악장 월광곡을 연주해 주고 싶다. 소녀에게 달빛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호수에 비친 달밤의 숨결을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다. 피아노의 낮은음이 호수의 깊은 곳을 두드리고, 높은음은 물결 위를 스치는 은빛처럼 가늘게 번져갈 때, 그 소녀가 호수에 비친 달빛의 아름다운 밤을 영혼 속에 간직하기를 바라며…….

노화(老化)와 노쇠(老衰)는 다르다

댓글 0 | 조회 23 | 55분전
노화(Aging)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정상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대개 모든 신체 영역에서 서서히 진행된다. 노화는 나이와 연관되어 있으며 비정상적인 과정… 더보기

변화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328 | 14시간전
우리는 지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사회를 중심으로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효율이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 더보기

대학생 공부하기 싫을 때 및 번아웃 어떻게 해야 될까요

댓글 0 | 조회 271 | 3일전
매년 이맘때쯤이면 메디컬 입시 (의대,치대,약대, 검안대 등)를 하는 학생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마주하며 번아웃 혹은 중도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 더보기

GAMSAT 의전원.치전원 입학시험 고득점 팁과 노하우

댓글 0 | 조회 283 | 7일전
지난 칼럼에서는 GAMSAT 3월 시험 총평과 출제경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GAMSAT (Graduate Medical School Admissi… 더보기

지식을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댓글 0 | 조회 406 | 9일전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 일상 속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과학 수업이나 실험 중심 프… 더보기

드래곤 전설의 기원

댓글 0 | 조회 217 | 9일전
— 인간은 왜 ‘용’을 상상했는가상상 속 생물, 그러나 너무도 익숙한 존재어린 시절 우리는 한 번쯤 ‘용’을 상상해본다. 불을 뿜고 하늘을 날며, 때로는 신의 사… 더보기

비료와 먹거리

댓글 0 | 조회 224 | 9일전
먹고 살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논밭을 일구어 심고 가꾸어야 한다. 대표적인 먹거리가 5곡이었는데 거기다 온갖… 더보기

뉴질랜드 민사소송의 약식 판결 및 각하

댓글 0 | 조회 352 | 9일전
보통 뉴질랜드 민사소송은 원고 측에서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고, 법원에서 승인을 받은 후 피고 측에 송달하고, 피고 측에서도 답변서를 제출하고, 사건 관리 회의 (… 더보기

27. 우레와(Urewera) 부족과 안개 속의 여인

댓글 0 | 조회 163 | 9일전
뉴질랜드 북섬의 깊은 원시림 속에는 우레와(Urewera) 숲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자연 보호구역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오리의 투호에나(Tuh… 더보기

고국의 품에 안긴 카자흐스탄 독립유공자 후손과 재외동포

댓글 0 | 조회 195 | 9일전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낙산사 템플스테이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10월 27일부터 11월1일까지 진행된 ‘2024 카자흐스탄 재외동포 초청 팸투어’를 성황리에 마쳤다… 더보기

벚꽃 편지

댓글 0 | 조회 198 | 10일전
창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 폭우 주황색 주의보가 떠있다. 분명 어딘가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을텐데 홍수 피해는 없었으면 좋겠다.온 세상이 젖어가… 더보기

비자금

댓글 0 | 조회 334 | 10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글쎄 암이란 놈이느닷없이 나를 흔들자꿋꿋이 버티던 나도마음 흔들려아내가 모르던현금으로 꼭꼭 간직해두었던내 비자금을 실토하고난 이제 필요없게 … 더보기

8편 – 체르노빌 섀도우: 봉인된 보고서

댓글 0 | 조회 172 | 10일전
“체르노빌은 ‘폭발’이 아니라, ‘개방’이었다.”프롤로그 -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폭발 직후의 지옥 같은 밤.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수증… 더보기

고용주의 신고의무

댓글 0 | 조회 586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일반적으로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용주에게 피고용인의 범죄 신고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선 고… 더보기

유학을 보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 — 공부보다 중요한 것

댓글 0 | 조회 497 | 2026.04.28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 A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유학, 입시 및 중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이번 컬럼에… 더보기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댓글 0 | 조회 170 | 2026.04.28
시인 천 양희이 생각 저 생각 하다어떤 날은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막무가내 올라간다.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상상봉에 다다르면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 더보기

파트너쉽 비자, 딱 한번에 승인받기

댓글 0 | 조회 443 | 2026.04.28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와 함께 체류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파트너쉽 비자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워 보이지만, 실제 심사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입체적… 더보기

갬블링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 뇌와 감정의 이야기

댓글 0 | 조회 185 | 2026.04.28
도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여전히 ‘의지’라는 단어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끊으려면 끊을 수 있지 않나”,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은 도박 문제… 더보기

골프 코스마다 스타일이 다르듯, 인생도 정답은 없다

댓글 0 | 조회 225 | 2026.04.28
골프를 오래 치다 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모든 코스는 다르다.어떤 곳은 넓고 평탄한 페어웨이를 자랑하지만, 또 어떤 곳은 벙커와 해저드가 도처에 있어 한 … 더보기

걷기 열풍

댓글 0 | 조회 453 | 2026.04.25
충북 괴산에 ‘걷기 열풍’이 불어 98세 어르신도 걷는다. 괴산군(인구 3만7000명)은 65세 노인 비율이 42.6%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노인 의료비 예산은… 더보기

GAMSAT 의.치전원 입학시험 총평 및 출제경향 (2026년 3월)

댓글 0 | 조회 328 | 2026.04.20
<GAMSAT의 급부상 인기>최근 들어 GAMSAT시험 응시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GAMSAT은 주로 의전원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전원 (치학전문대… 더보기

건강한 겨울나기 예방 접종으로 준비하세요

댓글 0 | 조회 671 | 2026.04.17

어디가 더 들어가기 어려울까? 오타고대 의대 vs 오타고대 치대

댓글 0 | 조회 968 | 2026.04.16
지난 칼럼에서는 오클랜드대 Biomed/Health Sci 과정을 낱낱이 파헤쳐보았다. 오타고대 HSFY같은 경우 한인들 기준에서 오클랜드대 Biomed/Hea… 더보기

전쟁과 평화

댓글 0 | 조회 269 | 2026.04.15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게 된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전쟁은 비극의 시작이요 삶을 극한 상황으로 인도하며 피와 땀으로 일궈… 더보기

미확인 해양 괴생물(MO) 목격담

댓글 0 | 조회 387 | 2026.04.15
— 인간은 왜 바다에서 ‘무언가’를 계속 본다고 믿는가바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우리는 이미 지구의 대부분을 이해했다고 믿는다. 우주를 관측하고, 인간의 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