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도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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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도 자산이다

0 개 155 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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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일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방식으로 든 많은 자산(資産)을 쌓아가기를 염원한다. 금전으로 평가되는 부(富)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명제일 것이다. 그러나 자산의 의미를 조금 넓혀서 생각한다면 경험 자산, 관계 자산(가족, 친구, 동료와의 인연), 정서 자산(기쁨, 슬픔, 극복의 기억들)도 인생살이에 있어서 중요한 자산에 포함될 수 있다. 이 가운데 추억은 정서 자산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힘들 때 마음을 지탱해 주고, 외로울 때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는 정서 자산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의 가치가 커진다. 젊을 때는 미래가 자산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과거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산이 된다. 젊었을 때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불러본다든지, 과거의 사진을 보면서 회상에 잠겨 본다든지, 대학 시절에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를 다시 감상하며 청춘 시절을 회상해 보는 행복감도 쏠쏠하다. 뉴질랜드에 처음 이민 왔을 때 가족과도 잠시 떨어져 대학 다니던 아들과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저녁에는 혼자 집에 있는 경우가 일상이었다. 그때만 해도 비디오 가게가 많아서 과거 필름들을 빌려보는 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1960년대에 영화 산업이 가장 발전하였다고 생각되며 배우들도 가장 미녀였다고 기억된다. 과거 필름을 비디오로 재생하여 보며 청춘 시절을 재생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자칫 무료할 수 있었을 이민자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추억이었다. 다행히 젊은 시절 그토록 예뻐 보였던 미녀 배우들이 30여 년의 세월을 잊고 사는지 옛날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응시하며 모습을 재현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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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나누면 불어나고, 기록하면 남는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통장보다 마음의 금고를 더 자주 연다. 또한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깊어지는 이자가 붙는 자산이다. 기억은 잊혀가도 추억은 삶을 붙들어 준다.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의미 있는 추억 거리를 생산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 크리스마스, 연말 시즌이 되면 잡다한 행사나 모임에 쫓아다니느라 바쁘게 지냈다. 먹고 마시고 푸념만 늘어놓다가 지친 몸으로 집에 와서는 식구들하고는 얼굴 마주할 시간도 없이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에 정신없이 출근해야 하는 생활을 반복하였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도 별로 추억으로 기록할 만한 내용이 없었던 것 같다. 교민들 대부분이 뉴질랜드에 온 후로는 그나마 연말 행사가 잡혀있지 않아 무료한 가운데 한 해를 마감하는 경우가 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연말 오클랜드 한인합창단의 피크닉 행사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즐거움 보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진행된 이 행사는 80여 명의 대단원이 오클랜드 교외의 대저택에 모여 이루어졌다. 눈 앞에 펼쳐진 자연 속의 잔디 들판을 바라보며 학창 시절의 영화, 사랑과 로망의 대서사시 ‘Giant’를 연상했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갓 진출한 합창단 부 반주자에게 Giant 영화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르고 있었다. 하기야 그녀가 태어나기 40여 년 전에 개봉된 영화였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행사 프로그램은 추억을 되살리고 추억을 재창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참가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팔씨름, 노 젓기, 닭싸움, 골프공 날리기, 사격대회, 보물찾기, 줄다리기, 캠프파이어, 불꽃놀이, 바비큐 파티 등으로 꽉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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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20대에서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3세대의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으니 각 연령대가 각자의 수준에서 게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줄다리기의 경우 전 참가자가 동원되어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경쟁하는데 팀원들이 게임의 규칙을 어떻게 잘 운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게임이다. 개인 게임도 놀라울 정도로 숨은 실력 들을 발휘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승패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대자연 속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팀원들이 경쟁을 벌이는 게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순간이었다. 해가 저물어 저녁 시간이 되자 현지에서 채취한 제목들을 이용한 캠프파이어가 진행되었는데 참가자들 모두가 자연의 일부가 된 기분이었다. 또한 합창단의 격에 맞게 반주 음악과 합창 음악이 뿜어내는 생동감은 영상에만 매어 사는 현대인이 체험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추억은 아름다워라! 사람은 수많은 날을 보내며 특별한 날을 경험하기도 하고 그냥 흘려보내는 듯한 하루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마음에 오래 남는 추억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이다. 합창단원들이 함께 노래하고, 게임도 하며 웃고 즐기고 대화를 나누며 보낸 피크닉 시간은 아름다운 추억의 자산으로 오래 간직할 만한 하루였다. 추억이란 참 묘한 부분이 있다. 지나갈 때는 그 가치를 다 알지 못하지만, 시간이라는 다리를 건너오면 거친 모서리는 사라지고 아름다운 윤기만 남는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추억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 추억들은 돈으로 셀 수 없는 자산이 되어 외로울 때는 벗이 되고 지칠 때는 위로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함께 나누고 싶을 때 같이 동참해 줄 동료가 있느냐의 문제이다. 미국에 이민 가서 수십 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돈을 모아 부자가 된 교민이 있다. 그는 말년에 마음을 바꿔 거창하게 잔치를 벌여 교민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잔치 날 당일에 참석한 초청된 교민들이 소수에 불과해 썰렁하게 잔치가 끝나게 되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교민은 삶의 목표를 물질적인 부의 축적에만 두고 달려온 결과 행복한 말년의 꿈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오클랜드에 한인합창단이 있어 현지의 합창제에 참여하며 뉴질랜드에 기반을 둔 신곡들을 발표하고 한국의 전통 가곡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자체 발표회를 개최하고 오클랜드 박물관 등 공공 기관에 봉사적인 연주를 통해 현지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한국의 위상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의 문화 의식 제고에도 도움이 될뿐더러 행복한 교민 사회를 이루는데 초석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교민 사회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축적되어 갈 것이며 이들 과업이 합창단 자체의 물적 및 인적 자원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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