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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bulon외 2명
0 개 938 오소영

2025년. 이 한해도 마지막 기울어가는 시점에 섰습니다. 극성스럽게 변덕스럽던 계절탓에 봄도 별로 느끼지 못한것 같은데 갑자기 여름이 왔네요. 항상 춥다고 움츠렸던 늙은이에게도 12월의 태양빛은 따갑습니다.


하얀 폭설 매운 바람속에 떠나보내던 마지막 달 이 아직도 기억속에 꿈틀거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만....


담장에 어우러진 붉은빛의 부겐베리아 꽃무더기. 크리스마스 꽃 포후투카와의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면서 한 해를 정리해 봅니다.


돌아보니 큰 문제없이 그럭저럭 잘 지내온 것 같아 감사하고요. 일상에 변화가 온다면 이제 좋은 일은 바랄게 없으니 평범한 매일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새 날이 밝으면 어김없이 오는 친구 지인들의 굿모닝 인사에 명쾌한 답 할수 있어서 아침이 신선하네요. 부지런 할 이유없어 게으른채 침대에 누워있어도 갈매기 선회하는 고요한 바다 풍경을 만나고, 이른 낚싯배에 한가로운 태공의 모습도 보게되는 즐거움. 거기에 덕담까지 덤으로...


사랑의 하트, 아름다운 꽃과 환하게 웃는 이모티콘에 마음까지 꾹꾹 눌러담아 받은만큼 돌려줍니다. 오늘도 무사하다는 환희로운 신호지요. 


저절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크게 소리내어 가슴 후련해 지도록 한바탕 웃고나면 쏟아져나온 엔돌핀으로 온종일이 행복합니다.


이제 쓸만큼 썼다고 낡은 기계에선 여기삐끗 저기삐끗 끊임없이 귀찮게 흔들어대지만 온전하기를 기대하는건 과욕이겠지요. 웬만하면 참고 친구하며 얼르고 달래면서 살아갑니다. 이 만큼이나 하기도 얼마나 다행인지 고마울 뿐입니다.


금년 12월은, 2000년 밀레니엄 새 시대를 맞이하고 벌써 25년, 4반세기를 마무리 하게 되네요. 한번 뒤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엊그제 같은데 10년이면 바뀌는 강산이 벌써 두번 바뀌고 또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2000년. 새 시대.... 성장한 애들 다 떠나보내고 빈둥지 증후군에 마음 어둡던, 바랄 것없는 평범한 60대 아줌마가 괜스레 들떴던 그 때가 참 우습게 생각되네요. 


내 안에 숨겨있는 어떤 ‘끼’의 작용이었을까요? 끝까지 살아보지 않고서는 어떤 예단도 하면 안되는게 인생인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문학계에 정식 등단을 하고 일년여, 열심히 소재를 찾아 글쓰기에 집중해보니 꽤 재미가 있더군요. 제법 인정도 받고 상도 타면서 꿈의 나래를 한껏 펼쳐갔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거기에 오래 머물도록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지구상에 제일 먼저 해가 뜬다는 신비의 나라. 밀레니엄도 일등으로 맞는다는 뉴질랜드에 오게 되었습니다.


부질없는 설레임은 스스로를 자위하는 아주 잠깐의 수단이었을 뿐임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이 슬펐습니다. 펜을 놓고 올 수밖에 없었던 상실감에 절망했습니다. 무지하고 생소한 나라, 온통 낯설음으로 외롭고 답답해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여기서 내가 뭘하며 살지?...)


아침에 눈 뜨면 제일먼저 들려오는 지저귀는 새소리. 움츠러든 영혼을 마구 흔들더군요. 후다닥 일어나 창문을 열면 쏟아져 들어오는 맑은 공기. 바람에 춤추듯 나부끼는 나뭇잎들. 푸른초원 자연의 향기에 숨죽였던 정서가 다시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펜을 찾아 식탁앞에 쭈구려 앉게 되었지요.


알콜에 취해가는듯한 묘한 정서를 주체할 수 없어 정신없이 편지지에 적었습니다. 회색의 답답한 아파트에 갇혀사는 친구들과 지인들 친척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매일 편지로 띄었지요. 부럽다는 찬사의 답장을 읽으며 새롭게 활력이 솟아났습니다.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낯선 사람들의 ‘하이’ 하며 건네오는 정스러운 인사. 집집마다의 개성있는 편지함을 보는 것도 처음 대하는 재미 였습니다. ‘데포돌’ 이름의 동네답게 온통 노오란 수선화로 깔린 정원들. 그 꽃무더기 속에서 오리가족이 뒤뚱거리며 걸어 나왔습니다. 조르르 뒤따르는 병아리들이 얼마나 귀엽던지...


방금 잠자리에서 일어난듯한 여인이 주방 창가에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뒤편에서 서성거리는 남편이 아내에게 모닝커피를 서비스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곧이어 손에 잔을 들고 돌아서 오던 남자가 여인의 볼에 입술을 찍더군요. 못볼 걸 본 것처럼 민망해서 얼른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외국 영화에서 보던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서 얼마나 놀랐는지요. 20세기 끝자락 1999년도 동양 할머니의 촌스럽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네요.


여러가지 색다른 문화에 부대끼고 익혀가면서 차곡차곡 머리속에 글감으로 저장이 되었습니다.


편지 만으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때쯤, 교민 신문과 정보잡지가 눈에 띠더군요 반가웠습니다. 주소를 찾아서 쓰는대로 투고를 했습니다.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여인이 이 부문에서는 전투적이고 용감 했습니다. 신문사 방송국으로 고국에서 해 왔던 그대로였어요. 새로운 곳에서 발 붙이고 살려는 도전이었습니다. 보고들은, 때로는 경험한 일들을 거의 놓치지 않고 원고지에 담았습니다. 가슴 공허한 외국생활에 읽을거리가 궁색했던 때문이었을까요? 거부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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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생활정보’ 사장님으로부터 정식 원고청탁서가 날아왔습니다. 드디어 내 존재를 인정받는 것같아 외톨이는 반가웠습니다.


바야흐로 21세기 밀레니엄 시대가 열리는 첫 해에 멋진 출발이었습니다. 이 땅에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 사람답게 살게 되었구나)


교민 언론사들 주최하에 효도관광의 온천 여행은 감동이었습니다. 그 여행기가 정식 첫번째 작품으로 생각납니다. 자녀들 따라 산설고 물설은 낯선 외국에 살면서 영혼마저 외로움에 젖어가던 어른들이었습니다. 따끈따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며 궁했던 우리말 소통으로 즐거워하던 그 날 풍경을 원고지에 빡빡하게 그렸습니다. 25년전 그  때 기억이 어제 일처럼 너무도 새롭게 생각 나네요.


‘생활 정보’ 잡지가 어느날 ‘코리아 타임즈’로 이름이 바뀌더니 지금의 ‘코리아 포스트’ 로 책자에서 신문의 형태로 변신을 하기까지... 함께한 참으로 긴 세월이었습니다.


시니어 모임에 나가면 알아보시고 책 언제 나오느냐고 물어 보십니다. 하고 싶은 일에 정체성도 찾고 재능기부로 사회 한 귀퉁이 봉사도 된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같은 세대 외로움을 사는 분들을 생각하며 울림이 있는 깊은 감동의 글을 쓰자고 더욱 분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삶 자체가 의욕이었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니 운동도 모임도 가감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자아성취감에 만족하기 때문일까요. 폭넓은 소통도 되고 올바른 철학도 갖게되니 늘 삶이 즐겁습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이 항상 뇌를 적셔주고 영혼도 맑게 해주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입니다. 노력하는 내 자신에게, 운명의 여신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어느날 문득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정식 문학지가 아니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궤도를 이탈한 건 아닐까?다작의 욕심으로 함부로 쓰지는 않았는지 문득 겁이 났습니다. 어느 대 작가의 꾸짖음이 귀에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헤프게 많이 써왔구나. 이제 그만하고 쉬자..) 할만큼 했다고 생각 했습니다.


얼마 전에 시작한 ‘골프’ 가 제법 재미가 있더군요. 더러 그들과 어울려 들밥을 지어먹으며 등산하는 것도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건강을 보살펴야 할 때가 오기도 했고요.


편집부에 그동안 고마웠다고 사의를 전했습니다. 끝은 쉬운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큰 반전이 왔습니다. 한달에 두편 고정지면 책임을 맡으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동안 무리없이 잘 해 왔다는 칭찬으로 들려 우려했던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고정 두편은 부담이 되어 망설였습니다. 물질이든 정신적이든 내 사전에 과욕은 없었는데... 어쩌지? 


그 책임을 2006년 중순까지... 지금은 오직 한달에 한편. 지치지도 않고 잘 버텨 왔네요. 좋은 작품을 썼다고 평가해 줄 선생님은 없지만 25년 긴 세월을 단 한번의 실수없이 책임을 다 한 것만큼은 자랑하고 싶습니다. 늙은이의 의지와 오기로 버텨낸 시시하지만 승리였다고 생각되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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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내 나이 어느덧 80세. 그동안 써 온 작품을 골라 팔순기념 ‘언니가 오셨네’ 를 출판 했습니다 꾸준히 사랑해 주시고 격려해주신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2019년에는 체험수기를 써서 가작에 불과하지만 재외동포 문학상도 받았습니다. 딸들이 83세 늦둥이 수상자에게 인간승리라고 하더군요.


우리 애들은 엄마의 작품활동에 거의 무관심 했습니다.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기에 그 누구의 칭찬보다 기뻤습니다. 그 애들에게서 받은 에너지 덕이 었을까요?


평생 혼자만의 숙제 6.25 전쟁 이야기에 도전 했습니다. 전쟁 마지막 세대의 생생한 체험을 더듬거려 찾아서 쓰기를 삼년. 어렵사리 끝을 맺을수가 있었습니다.


아픈 상처를 끄집어 내는것도 무섭고 물리적으로도 힘들어 몇번이나 포기하려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출판까지 마무리를 했습니다.


체험소설 ‘패랭이꽃 연가’를 세상밖에 내보내면서 전쟁 회오리에 이슬처럼 사라진 외삼촌과 어린 동생에게 진 빚을 갚았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편히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2023년 여든여섯해 생애에 75년전 빚을 갚으면서 세상에 고했습니다.


“이 세상에 전쟁은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고...”


* 교민 여러분들 그리고  ‘코리아포스트’ 가족 여러분들 늘 따뜻한 응원과 격려속에 지금까지 잘 달려왔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새 해에는 더욱 성숙하고 따뜻한 글로 다시 만나 뵐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든분들 가정가정에 행복이 있으시길 두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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