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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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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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을 맞은 아랍에미레이트(UAE) 동포간담회에서 한인회장은 “한국인의 저력과 품격을 보여주는 수많은 교민이 있다”며 “주변에서 ‘한국인이어서 믿음이 간다’고 말하는 현지인들이 많다”라고 소개했다. 대통령 출장 중 앞으로 십여일 계속 듣게 될 이야기 같다. ‘조국이여, 걱정하지 마오, 우리는 잘 살고 있소.’ 맞는 말이면서 애써 집안 식구들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쓰린 마음도 묻어난다. 1970년대 재일교포 모국방문단이 대한민국을 방문한 이래 재외동포들은 조국보다 형편이 더 나은,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재일교포 실업인들이 설립한 신한은행 같은 존재가 대표적이다. 세기가 바뀌면서 관계는 역전되는 조짐이다. 지난 9월 워커힐에서 열린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그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동포들은 이제 힘이 세진 조국이 1) 좀더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길, 2) 우리끼리의 잦은 분쟁에 좀 더 적극 나서주길, 3) 신규 교민 감소에 따른 차세대 교민 육성에도 관심 가져 주기를 바랐다.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지방민의 말과 다를 바가 없게 들렸다. 일본 도호쿠 대학에 재직중인 문화인류학자 이인자 교수가 재외동포들의 꾸밈없는 마음을 들어봤다. 다선 국회의원 출신인 재외동포청장, 민주화 운동의 대부이자 집권당의 원로인 평통 부의장, 외교부 간부들, 국회 외통위원들의 일독을 권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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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한인회장대회의 모습 // 사진=재외동포청 홈페이지


‘다른 억양의 조국’을 만난 자리


2025년 9월 말, 서울 그랜드 워커힐 호텔. ‘700만 재외동포와 함께 세계를 잇다, 미래를 밝히다!’라는 현수막이 대회의장 천장에 걸려 있었다. 조명이 켜지자 나는 기자용 명찰을 목에 걸었다. 재일한국인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이지만, 이번에는 메디치미디어의 기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섰다.


개막식에서 폐회식까지 2박 3일 동안 세계 각지에서 온 스무여 명의 한인회장을 인터뷰했다. 그들이 ‘조국’을 발음할 때마다 억양과 표정이 달랐다. 조국은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그들 각각의 기억과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의 화두는 단순한 행사의 운영이 아니었다. 정부가 주관해 온 세계한인회장대회를 앞으로는 세계한인연합총회(세총연)와 각국 한인회가 스스로 주최하자는 제안이 논의의 핵심이었다. 한 세대 전 도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회의가 제도권으로 편입되었다가 다시 동포들의 손으로 돌아가려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변화는 형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러시아·중국·일본 대표들은 절차와 대표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고, 폐회식에서 “원만히 합의되었다”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긴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 표면 아래에는 조국과 디아스포라 사이의 오래된 언어적 방향이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진동이 있었다.


이번 대회는 단지 행정적 이벤트가 아니라, ‘조국과 디아스포라의 관계가 다시 쓰이는 자리’였다. 그 기원은 1987년 도쿄 선언문 속 한 문장에 있다. “우리는 비록 조국을 떠나 살고 있으나, 조국의 발전과 명예를 위하여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이 문장은 약하고 불안했던 조국이 해외동포에게 말을 건네던 시대의 언어였다. 당시 조국은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함께해 달라”라고 요청해야 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조국은 강해졌고 해외동포는 각자의 언어로 조국을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1987년의 조국이 말하던 나라였다면, 2025년의 조국은 들어야 하는 나라가 되고 있었다.


이 글은 그 변화를 기록하며 조국과 디아스포라 사이의 ‘언어의 거리’를 다시 측량하려는 인류학적 필드 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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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폐회사하는 김경협 재외동포청장 // 사진=재외동포청 홈페이지


누가 주인인가: 주최권 전환 논쟁


9월 29일, 로비에는 여러 언어가 뒤섞여 웅성거림을 이루었다. 명찰에는 ‘델마바’, ‘오사카’, ‘프랑크푸르트’, ‘알마티’ 등 세계 각지의 도시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인회장들이 ‘조국’을 발음할 때마다 그 음조와 억양이 달랐다. 오사카의 한인은 ‘조국’을 낮고 단정하게 말했고, 알마티 회장은 고향을 부르는 듯 길게 끌었다. 누군가는 “조국은 부모의 시간”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한국은 땅이 아니라 목소리입니다. 한국어로 노래할 때만 들려요”라고 말했다.


‘조국’은 그들에게 땅보다 깊은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조국이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서로 다른 리듬의 기억이 겹치는 층위임을 실감했다. 나는 기자 명찰을 단 채 그 공간을 걸었다. 인류학자의 관찰과 기자의 기록이 포개지는 순간이었다. 1987년 도쿄의 회의가 역사의 시작이었다면, 2025년 서울의 회의는 그 역사가 다시 쓰이는 현장이었다.


둘째 날 오전 일정표에는 단 한 줄, “공통의제 토론”만 적혀 있었다.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로비와 복도 곳곳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날은 세 가지 의제가 연속적으로 다루어졌다.


첫째는 ‘한인회 주최 전환’ 문제였고, 둘째는 ‘분쟁조정 제도화’, 마지막으로 ‘차세대 육성’을 논의했다. 모든 논의는 자율성과 책임, 그리고 미래를 둘러싼 질문, 즉 ‘누가 주체인가,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무엇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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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회장대회의 모습 // 사진=재외동포청 홈페이지


주도권을 묻다: 말하는 조국에서 선택하는 디아스포라로


핵심 쟁점은 세계한인회장대회의 주최권을 한인회가 직접 맡을 것인가였다. “이제는 한인회장들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라는 제안에 회의장의 공기가 단숨에 바뀌었다. 박수와 침묵이 교차했고, 일부 대표들은 강한 이견을 표했다.


이 변화는 형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러시아·중국·일본 대표들은 절차와 대표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폐회식에서 “원만히 합의되었다”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 민단 단장은 “정부 초청이기에 참석한다. 자체 모임이라면 의미가 크지 않다”라며 충분한 논의 없이 결정되는 방식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는 정부 주도의 틀 속에서 관계를 이어온 세대의 감각이 드러나는 반응이었다.


중국과 러시아 대표들 역시 세총연의 대표성과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며, 대륙별 연합 회장이 자동적으로 회장단을 구성하는 방식이 공정한지 질문했다. 회의장 안팎에서는 자율성과 포용성의 균형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이 긴장은 표면적 갈등을 넘어, 조국과 디아스포라의 언어적 위치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진동처럼 느껴졌다. 결국 첨예한 논의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주최권 전환 요구는 결의문을 통해 재외동포청에 ‘제안’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공식적인 변화는 없었고, 다음 해에도 현행이 유지될 가능성이 남았다.


그때 한 회장이 조용히 말했다. “조국이 우리를 초청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조국을 초청할 차례입니다.” 그 말은 선언처럼 들렸고, ‘누가 말할 권리를 가지는가’의 논쟁은 곧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고 중재할 것인가’라는 윤리의 문제로 이어졌다.


왜 싸우는가, 분쟁을 듣는 규범


두 번째 의제는 한인회 분쟁조정 제도화였다. 토론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한 참석자는 “미국에서는 한인회 분쟁이 법정까지 간다. 판사가 ‘돈이 나옵니까?’라고 묻는다. ‘아니요.’ ‘그럼 왜 싸웁니까?’ 우리는 봉사를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회의장은 웃음으로 흔들렸지만, 웃음 속에는 피로와 공감이 함께 스며 있었다.


독일의 한 회장은 “규정을 지키는 것이 신뢰의 출발”이라며 정관과 회계 공개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에 여러 참석자가 박수로 응답했다.


이 의제의 핵심은 단순한 제도 마련이 아니라 공동체 윤리의 회복이었다. 행정 효율보다 신뢰의 복원을 우선하는 태도, 즉 “정부 개입 이전에 우리가 먼저 들어야 한다”라는 공감대가 자리 잡았다. 법보다 윤리가 공동체를 묶는다는 디아스포라 사회의 오래된 자각이 다시 확인된 순간이었다. 이러한 윤리의 복원은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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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궁궐을 체험하는 재외동포 청소년들 // 사진=재외동포청 유튜브 캡쳐 


다음 세대를 위한 대화, 차세대와 열린 문


세 번째 의제는 차세대 육성이었다. 회의장 분위기는 잠시 온기가 돌았다. 한 발언자는 도산 안창호의 ‘교육의 정신’을 언급하며 말했다. “우리의 역할은 미래를 남기는 일입니다. 젊은 세대가 한인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그 공간이 낡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어줘야 합니다.”


또 다른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학생들이 전문가를 만나 ‘나도 한국인이라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때 한인회의 존재 이유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한편 젊은 참가자들은 조심스럽게 “한인회는 젊은 세대에게 닫혀 있다”라고 지적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단했다.


그 순간, 조국의 미래는 정책이 아니라 세대 간 대화의 능력에 달려 있음을 모두가 실감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논의를 한 문장으로 묶어 공동의 약속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조용한 약속, 새로운 언어의 시작


10월 1일, 대회의 마지막 날. 회의장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은 오히려 깊은 울림을 남겼다. 운영위원들이 밤새 정리한 열 가지 결의문이 낭독되었다. 그 안에는 한반도 평화, 차세대 육성, 재외투표제도 개선, 복수국적 허용 연령 하향, 태극기의 날 제정, 그리고 “한인회가 대회를 직접 주최할 것을 제안한다”라는 문장이 담겨 있었다.


결의문을 낭독한 이는 러시아의 현덕수 회장이었다. 그의 낭독이 끝나자 회의장은 짧은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은 피로가 아니라 숙고의 시간이었고, 이어진 박수는 길진 않았지만 묵직했다. 환호가 아니라 조용한 약속의 리듬이었다.


폐회식에서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 동포사회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인했다.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1987년 도쿄에서 울려 퍼졌던 ‘도쿄선언’을 떠올렸다.


그때 조국은 말을 걸었고, 이날 서울의 회의장에서 조국은 그 목소리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변화의 방향이 행사라는 형식 속에서 제도적 언어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폐회식이 끝난 밤, 각국 회장들은 다음 대회를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호텔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갔고, 회장들은 명함을 교환하며 “내년에 또 만나자”, “이번엔 우리 도시에서”라고 말했다. 대화의 언어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조국은, 더 이상 그들 중심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관계의 문장 속에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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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제1회 해외한민족대표자회의 // 사진=재외동포청 홈페이지


누가 조국을 말하는가


조국과 디아스포라의 관계는 단순한 ‘내외(內外)’의 구도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의 권력, 기억의 방식, 세대의 시간이 교차하는 복합적 관계다. 1987년의 조국이 “도와달라”라고 요청하던 나라였다면, 2025년의 조국은 이제 “들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듣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이 가진 언어의 우위를 내려놓고, 다른 리듬으로 말하는 이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이번 주최권 논쟁은 단순한 행사 운영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주체를 되찾는 과정이었다. 조국의 틀 안에서 정체성을 부여받던 한인회들은 이제는 조국의 외연이 아니라 조국 그 자체의 일부로서 자신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조국이 우리를 초청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조국을 초청할 차례입니다.” 한 회장이 한 이 말은 선언이자 전환의 문장이었다. 1987년 도쿄에서 조국이 말을 걸고 동포가 응답하던 구조가 뒤집힌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대립이 아니라 새로운 대화의 시작이었다.


‘한인회 분쟁조정 제도화’ 의제는 공동체 윤리를 회복하려는 시도였다. 봉사로 시작된 조직이 법정으로 가는 현실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인정의 문제였다. 그래서 회의장에서는 해결보다 ‘듣기’가 더 많이 언급되었다. 인류학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경청의 윤리였다.


조국이 동포를 향해 듣고, 동포가 서로를 향해 다시 듣는 능력을 회복할 때 공동체는 치유될 수 있다. 도쿄의 초심이 헌신의 언어였다면, 서울의 책임은 경청의 언어였다. 조국이 강해졌다는 것은 이제 말하던 시대를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듣는다는 것은 권력을 나누고, 상대의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재단하지 않는 일이다.


회의 마지막 날,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조국은 이제 말하는 주체가 아니라, 듣는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이번 대회의 가장 조용하면서도 큰 결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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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회장대회의 모습 // 사진=재외동포청 홈페이지


도쿄의 초심, 서울의 책임


대회의 마지막 문장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회의장의 박수와 침묵, 통역기의 지연, 그 모든 장면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관찰의 기록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기록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었다.


1987년 도쿄의 동포들이 조국을 위해 모였을 때, 그들의 열망은 ‘조국을 세우는 일’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2025년 서울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조국과 함께 사는 일’을 말하고 있었다. 요컨대 조국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실천되는 무엇이었다.


조국은 더 이상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야 할 관계가 되었다. 과거의 책임이 조국을 돕는 일이었다면, 이제의 책임은 조국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기억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조국은 강해졌지만, 그 강함 속에는 상처가 남아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 서울에서 만난 세계의 한인들에게 ‘조국’은 머무는 땅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서로의 언어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속에서 존재했다. 그 시간은 동포의 일상 속에서, 그리고 조국의 행정 문서 바깥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조국은 머무는 땅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말에 있다. 도쿄의 초심이 조국을 세우는 언어였다면, 서울의 책임은 조국과 함께 살아가는 언어였다. 조국은 완성된 명사가 아니라 지금도 삶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동사다. 우리가 그 조국을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나는 그들의 언어를 기록했지만, 그 기록 속에서 나 또한 조국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출처 : 피렌체의 식탁


■ 이 인자


도호쿠대학교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부교수다. 

전공은 문화인류학.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 교토대학교 대학원에서 인간.환경학 박사 학위를 했다. 국립민족학박물관 COE 연구원을 거쳐 2000년부터 현직에 몸담고 있다.

주로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쓰나미로 인해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삶을 재건해 가는지를 15년에 걸쳐 추적했다(일본 문부과학성의 과학연구비 지원).

저서로 <지진으로 잃은 아이와 함께>, <일상 속의 그리프 케어>(벤세이출판, 2018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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