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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남부의 건조한 사막 지대, 해발 500미터의 고원 위에 펼쳐진 나스카 라인(Nazca Lines).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 곳에는 거대한 새, 원숭이, 거미,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들이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새겨져 있다.
이 지상화들은 마치 지구의 표면 위에 새겨진 천문지도, 혹은 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보인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그림이 인간의 눈으로는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는 것이다. 땅 위에서는 단순한 선과 흙빛만 보이지만, 하늘 위에서는 완벽한 대칭과 비율로 이루어진 형상이 나타난다.
이것이 나스카 라인이 전 세계 인류학자, 천문학자, 그리고 수많은 미스터리 애호가들에게 끝없는 호기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유다.
나스카 라인은 페루 수도 리마에서 남쪽으로 약 450km 떨어진 나스카 평원(Nazca Desert)에 위치한다. 길이 50km, 폭 15km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에 수백 개의 직선, 삼각형, 나선, 동물 도형이 존재한다.
그중 유명한 것은 ‘거미’, ‘원숭이’, ‘새(콘도르)’, ‘사람형상’, ‘도마뱀’, 그리고 300미터에 달하는 ‘고래’의 형상이다. 이 거대한 그림들은 기원전 500년부터 서기 500년경까지 존재한 나스카 문화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농경과 예술, 천문학을 결합한 복합적 문화를 이룬 문명으로, 비옥하지 않은 사막에서도 정교한 수로 시스템을 만들어 생존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의문은 남는다.
“왜,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나스카 라인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바로 그 규모와 정밀함이다. 현장에서 그림을 보면 그저 얇은 홈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비행기로 약 400~500미터 상공에서 보면 놀라우리만큼 균형 잡힌 형상과 수학적 비율이 드러난다.
이를 두고 세 가지 대표적인 가설이 제기되어 왔다.
1. 신에게 바치는 거대한 제단설
• 나스카인들이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그린 제단 혹은 길이라는 주장이다.
• 실제로 도형 주변에서는 제물로 추정되는 도자기 파편, 석상, 짐승의 뼈가 발견됐다.
2. 천문학적 달력설
• 독일 수학자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는 나스카 라인을 ‘거대한 천문지도’로 해석했다.
• 각 도형과 직선이 태양의 위치, 별자리의 이동, 계절의 변화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 실제로 일부 선들은 동지(冬至)와 하지(夏至) 시점의 일출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3. 외계 문명설
• 20세기 이후 대중문화 속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이다.
• 나스카 라인은 ‘하늘에서 온 존재들’을 위한 비행장 또는 착륙 신호라는 주장이다.
• ‘에리히 폰 데니켄(Erich von Daniken)’은 그의 저서 『신들의 전차』에서 “인류가 아닌 누군가가 그렸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세계적인 논쟁을 일으켰다.

과학적•역사적 분석 — 인간의 위대한 계산, 그리고 사막의 보존력
오늘날 과학자들은 나스카 라인이 인간의 창의력과 기술력의 결과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우선, 사막의 표면은 붉은 산화철로 덮여 있지만 그 아래층은 밝은 석회질 토양이다.
즉, 표면의 붉은 자갈을 걷어내면 밝은 선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 단순한 원리를 이용해 사람들은 삽과 나무 막대만으로도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2020년대에 이르러 드론과 인공지능 분석 기술을 통해 새로운 나스카 도형 150여 개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그 중 일부는 사람의 눈보다 작지만, 일정한 기하학적 규칙을 지닌 구조를 보인다.
나스카인들은 밧줄과 말뚝을 이용해 대칭을 맞추고, 태양의 위치와 별의 방향을 기준으로 선을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정밀도는 현대 위성 측량과 비교해도 큰 오차가 없을 정도다.
더 놀라운 점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림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강수량이 연간 2mm 이하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기후 덕분이다. 바람도 약하고, 토양이 단단해 그림이 그대로 보존된 것이다.
즉, 나스카 라인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지상의 기록 매체’인 셈이다.
대중문화와 영향 — 하늘과 인간을 잇는 신화의 상징
나스카 라인은 이제 과학적 유물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이후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영화, 소설, 게임에서 ‘나스카 라인은 외계인의 흔적’이라는 콘셉트가 등장했다.
예를 들어,
• 영화 :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 일본 : 애니메이션 나스카(Nazca, 1998)
• 게임 : Tomb Raider 시리즈 등에서도 나스카는 신비와 미지의 세계를 상징하는 무대로 활용됐다.
또한, 199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이 ‘하늘의 그림’을 보기 위해 페루를 찾는다.
드론 관광, 열기구 비행, VR 체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하늘에서 바라보는 인류의 흔적’을 느끼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스카 라인은 단지 고대인의 흔적이 아니라, “우리가 하늘을 꿈꾸던 시절의 증거”로서 현대인의 상상력을 여전히 자극하고 있다.
나스카 라인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하늘을 바라보며 ‘존재의 이유’를 찾던 흔적이다. 고대 나스카인들에게 하늘은 신의 영역이었고, 그곳을 향해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거대한 메시지가 되었다.
그것이 신을 향한 기도였든, 별의 움직임을 기록한 천문지도였든, 혹은 상상 속 존재에게 보낸 신호였든 간에 — 그 안에는 “자신보다 더 큰 세계와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담겨 있다.
나스카 사막의 끝없는 평원 위에서 붉은 모래에 새겨진 선들을 바라보면, 그것은 마치 인간의 손으로 쓴 하늘을 향한 러브레터처럼 느껴진다.
2,000년이 지나도 바람이 지우지 못한 선, 그 선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던 그 순간, 인류는 이미 신비와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