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꿈꾸고 배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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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꿈꾸고 배에서 배운다

0 개 340 오소영

대한민국 해군 순항훈련전단 ‘한산도’ 함 이 입항하던 날이었다.


젖지 않을만큼 부슬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그만하면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나선 길이라 가는동안 생각이 많이났다.


해군 순항함이 그 동안도 수차례 다녀갔을텐데 내가 많이 무관심 했었구나. 어제 일인듯 기억이 확실한데 세월이 참 많이도 흘러갔다. 10년이면 바뀐다는 강산이 한번 바뀌고 또 반이나 지나가고 있다. 15년전의 그림이 스크린을 펼친듯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때 만났던 졸업 훈련생들이 지금은 어엿한 중견급 장교가 되었을 것이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해군 함대 ‘양만춘 함’ 이 오클랜드에 입항 했던 2010년때 일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부두에 정박해있는 해군 함정을 보게되었다.


신기한 호기심으로 함 내 구경도 했지만 육지에서 벌이는 행사장에도 빠지지 않았다.


군악대 연주도 멋졌지만 행사 말미에 있었던 태권도 시범도 대단한 묘기였다. “얍” 하늘을 찌를듯한 기합소리와 함께 사과가 공중에서 산산히 부서져 내렸다. 스릴 넘치고 통쾌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현지인들이 놀라서 경탄하는 모습을 보며 어깨가 으쓱했다. 내 조국 대한민국의 아들 딸들이 대단히 자랑스러웠다.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나고 떠나기 직전의 저녁이었다. 자유시간을 갖게된 그들은 퀸스트리트 거리를 정복의 물결로 가득 채웠다.


저녁 노을이 빌딩의 유리창들을 빨갛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장병들 발걸음이 바빠 보였다. 작은 쇼핑백 하나씩을 손에 들고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네 장병들이 조를 짠듯 길을 꽉차게 걸어오고 있었다. 염치불구하고 내가 그들 앞을 막아섰다. 놀라서 멈칫 걸음을 멈춘 그들은 의아하게 바라봤다.


“바쁜분들 미안해요. 나는 여기에 살고있는 그냥 할머니에요 . . .”


의구심을 덜어주려고 빠르게 말을 꺼냈다.


“내 손주들같아 커피라도 한잔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요 . . .”


무슨 잘못을 하는 것처럼 말소리가 떨려나왔다. (제발 시간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 . .)


갑작스런 노인의 제안에 어리둥절 하는 것 같았다. 황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한 장병이 재빠르게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 봤다.


“고맙습니다”


말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동료들에게 수신호를 하는게 아닌가.


나는 개선장군처럼 그들 앞에 서서 빠르게 근처를 살펴 카페를 찾아냈다.


깔끔한 해군 정장의 멋진 장병들이 우루루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가슴이 뿌듯하고 기뻤다.


그들은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카페 안을 호기심으로 두리번 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추억거리가 생겨서 흥분이 되는 모양이었다.


커피잔이 왜 이리 크냐며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들이 싱그럽다. 설탕봉지 연상 뜯으며 눈치보던 앳된 장병은 커피맛도 제대로 못익힌 어린애 같았다.


그가 사과를 격파 했던 장본인이라고 해서 놀랍고 반가웠다. 격파 할 때의 대단한 기강은 어디에 숨겼는지 여리고 수줍어하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작은 글씨로 적어준 ‘최 ㅇ현’ 생도. 그 이름을 지금까지 잊지 않았다. 믿음직한 장교, 의젓한 가장이 되었을 그는 15년전 이 할머니를 기억이나 할까?


그들은 뉴질랜드를 많이 알고싶어 했다. 돌아가며 이것저것을 물었다. 정말 이 나라에 사람보다 양이 더 많으냐고 눈을 반짝거렸다. 직접 보지못해서 아쉽다고 장난섞인 말로 웃기기도 했다. 티없이 맑고 순수한, 그러나 기백이 넘쳐흐르는 그들. 네 장병들은 곧 장교가 될 인재들. 고국의 바다를 지켜 줄 든든한 방패들이였다.


헤어질 때 네사람 차례로 품을 빌려주던 그 열혈한 따뜻함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 온기가 느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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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 맞으며 부두에 도착하니 육중한 군함은 이미 들어와 있었다. 물살을 가르고 멋지게 입항하는 모습을 놓쳐 아쉬었다.


‘한산도 함’. 이름처럼 섬같이 큰 배가 우뚝 앞을 가로 막고 있는게 아닌가. 그 대단한 위용에 위압감마저 들었다.


대한민국 태극기가 오클랜드 항에 자랑스럽게 나부꼈다. 뜨겁게 환영하는 이 쪽과 손을 흔들며 반기는 저쪽. 우리는 한민족 부모 동기 가족이었다. 흩뿌리던 비도 조용히 그쳐주니 하늘도 우리의 만남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먼 길 떠나와서 만나는 동포들. 세대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끈끈한 인연으로 교감을 나누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새까만 정장 노란 금줄이 달린 정복 차림의 그들이 우리를 배 안으로 안내했다. 너무 자랑스럽고 멋졌다. 같은 복장을 한 여군들은 너무 여리고 예뻐서 군인같지도 않았지만. 남자들과 똑같이 훈련을 받는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음으로 마냥 끌어안아주고 싶었다. 늙은이 헤퍼진 정 때문이 아니다. 조국의 방패가 되기위해 군인을 택한 그들이 대견했기 때문이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대단한 미래를 책임진 여전사들. 속으로 ‘화이팅’ 을 외쳤다.


졸업 앞두고 순항을 하면서 다양한 훈련과 항해 실습이 목적이라고 한다. 방문하는 나라와 교류는 물론 외교에도 한 몫을 단단히 하는 것 같았다.


환영식을 마치고 함내를 견학했다. 나같이 문외한인 사람이 무얼 알겠는가.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인공지능 시대가 아닌가. 겉으로만 보는게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직접 제작 되었다는 배 자체가 경이로움이었다.


2020년에 진수했다는 다섯살짜리 함정이 최신식인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미로같은 좁은 통로를 돌고 돌면서 교육관을 둘러보는 걸로 견학은 간단했다.


겉으로는 간단해 보였지만 알차게 내재되어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 .


어느 교육관에서 였던가. 슬라이드에 뜬 문구를 보게 되었다.


“배에서 꿈꾸고 배에서 배운다”


그들 철학의 메시지로구나. 그들의 임무가, 아니 인생 전부가 배에 있다는 말이었다. 그들만의 세상. 함정이 바로 그들의 작은 우주라고 생각되었다.


일반 강의실은 단순했지만 기술 관련된 강의실 벽 사면에는 슬라이드로 가득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대식 장비들이 사진속에 전부 있는 것 같았다.


6.25전쟁 트라우마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늙은이는 슬며시 마음이 놓였다. 이제 내려놓고 편하게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실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병실이며 400여명이 함께 교육하고 생활하는 공간은 시설좋은 하나의 도시같았다. 거기가 거기같은 미로를 따라다니며 넘어질까 두려워 많이 조심을 했다.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수도없이 오르내릴 그들의 체력은 어느만큼인지. 그것조차 훈련에 포함해야 할 것 같은 노파심마저 생긴다.


선두 갑판으로 올라가니 비로소 미로에서 벗어났다. 툭 터진 시야로 오클랜드 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먼저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어울려 기념 사진을 찍고있다.


크루즈 선을 타고 내려다 보았던 시티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다. 사치스런 감정에서 벗어난 묵직한 느낌이랄까? 왠지, 튼튼한 성 안에서 안주하는 편안함 같은 기분. 그런것 같았다.


안내를 맡은 말쑥하게 잘 생긴 대위님한테 주책없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렇게 잘 생긴 미남이 배우가 되지않고 왜 군인이 되었어요?”


군함 이라는 배에 올라 특별한 긴장감에서 풀려난 여유였던가. 정말 나무랄데없이 잘 생긴 미남중에 미남이었기 때문이다.


사관생도를 뽑을 때 인물도 보는 모양이었다.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곱고 아름다웠다. 물론 남자들도 깔끔하고 수려한 인상이었다.


미국 하와이, 괌을거쳐 뉴질랜드가 세번째 입항이라고 했다. 앞으로 호주 인도네시아 싱가폴 동남아를 거쳐 귀국 한다고 하니 일정이 많이 남아있다.


설명을 해 주던 박ㅇ송 장교는 2010년에 학생으로 왔었다는 자기 소개를 했다. ‘양만춘 함’을 타고 왔을 그가 지인인듯 반가웠다. 


금년은 6.25전쟁 75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해서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참전국 용사들도 찾아뵙고 기념비에 헌화 묘역 참배도 한다고 한다.


어찌 그리 타이밍을 잘 맞춰쓰는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쓴 책 ‘패랭이꽃 연가’를 한권 들고 나갔던 참이었다. 전단장님께 꼭 전해드리고 싶었다.


바로 75년전 조국을 위해 싸우다 쓰러져간 일그러진 영웅들을 기억 하시라고. 체험으로 쓴 생생한 증언을 현역들은 꼭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전단장님을 청해서 간략한 책 소개와 함께 책을 전달해 드릴수 있어 다행이었다.


부질없는 짓일까 망설였는데 너무도 반갑게 받아주어 고마웠다. 머리숙여 답례하는 겸손까지 인간적인 진솔한 정이 묻어나서 정말 많이 기뻤다.


“감사합니다 취침 시간에 열심히 읽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느 장병이 제 것은 없느냐고 해서 미안했다. 책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걸 . . .


그 날 저녁 울산에서 근무중인 조카에게 크게 자랑을 했다. 해군의 소령인 조카가 분명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역시 늘씬한 키에 인물이 좋았다.


“고모님이 진짜 좋은일 하셨습니다.  ...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바다는 . . . 낭만이 출렁이는 젊은이의 무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친 물살을 가르며 대양을 누비는 배. 그들은 또 하나의 세계다.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바다바람에 청춘을 맡겨 나라를 지켜낼 수 있다면 그보다 진 젊음이 또 있을까?


그 날밤 꿈엔 책의 주인공 외삼촌이 꼭 나타날 것만 같았다. 열살 어린 조카로 돌아가 삼촌과 동무하며 놀고 싶었다.


‘한산도 함’은 지금쯤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을까? 귀항하는 순간까지 무사 안녕하기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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