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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충주 석종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졌으나, 전망이 황홀하리라는 것은 달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템플스테이관에서 펼쳐지는 전망에 짧게 탄성을 올리자 안내를 해주시던 진월 스님은 석종사를 둘러싼 가을 단풍이 얼마나 멋진지 자랑하며 은근한 자부심을 내보이셨다. 그러니 새벽에 일찍 깰 수밖에. 그리고 잠옷 위에 겉옷만 걸치고 신발을 꿰어 신을 수밖에. 금봉산 산자락에 자리 잡은 석종사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앉아계신 석불님을 향해 종종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이미 부처님을 등지고 볼 눈부신 전망에 마음이 먼저 가 있었다.
석불님께 인사드리고 흡족하게 가파르고 좁은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가, 멀찍이서 올라오시는 스님을 뵈었다. 그제야 잠옷에 맨발인 차림새가 조심스러워졌다. 샛길도 없는 좁고 긴 길에서 이를 어쩌나, 주춤거리자니 스님이 문득 길가의 나무를 바라보신다. 내게 등을 돌리고 요모조모 오래 오래 나무를 살피시는 것을 보니, 내 난처함을 눈치채고 자비심을 발휘하신 듯했다.
조심조심 걸어 내려오며 보니, 뒷짐 진 스님의 손가락 세 개가 없다. 혜국 스님이시구나. 해인사 장경각에서 3천 배씩 매일 올리다가 회향 날 생살을 태워 소지공양(燒指供養) 하신 일은 전설이 되었다. 그뿐이랴. 스님은 꿰맨 실도 뽑지 않고 병원에서 그날로 도망쳐 태백산 도솔암으로 가 생쌀과 생콩, 솔잎을 먹으며 목숨 걸고 장좌불와 수행을 하셨다 한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토록 용맹 정진할 수 있었던 간절한 마음은.

콱 막힌 순간, 내가 과연 누구인가
스님은 무엇이 그리 간절하셨기에 그렇게 하실 수 있었나요. 다른 사람들은 고통을 해결하고 싶어서 그런다는데, 스님은 어떤 마음이었는지요. 첫 질문을 드리자, 스님은 “그렇게 소문난 것처럼 간절한 건 아니고….”라며 우선 겸손의 벽을 치신다.
혜국 스님이 출가한 것은 열세 살 때였다. 중학교 대신 선택한 것이 절이었다. 삶의 고통이 절실하기에는 어린 나이. 스님에게 세상 고뇌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은 “내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다고 한다.

“저는 참선에 대한 믿음이 남보다 적었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썩 가지 않더만요. 워낙 학문을 좋아 했고, 특히 『화엄경』과 『법화경』을 아주 좋아해서 사실 『법화경』을 연구하는 법화학자의 길을 가고 싶어 했죠. 그런데 하루는 성철 큰스님이 오라 하시더군요. 그때만 해도 전기가 없을 때였습니다. 호롱불 쓰고 살 때인데, 가자마자 다짜고짜 죽비를 들으시며 ‘이거 보이느냐?’ 물으시더라고요. ‘예. 스님 보입니다.’ 하니까 ‘무엇으로 보느냐?’ 하세요. 아니, ‘눈으로 보지 뭐로 봅니까?’ 이번엔 불을 끄세요. 아주 깜깜하죠. 그러고 다시 ‘보이느냐?’ 물으세요. ‘안 보입니다.’ 했더니 ‘그럼 아까 금방 본다고 하는 눈이 어디 갔느냐?’ 하시더군요. ‘눈은 그냥 있습니다.’ 했더니 ‘그럼 왜 안 보이느냐?’ 그러더만요. ‘깜깜해서 안 보이는 것 아닙니까?’ 했더니 ‘고양이나 올빼미는 깜깜할수록 더 잘 보는데 너는 고양이 눈 깔만도 못하냐?’ 하시며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 방금 죽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눈이 역력히 있는데 왜 안 보이느냐. 눈으로 보는 거라면 보여야 할 것 아니냐. 입으로 말하는 것 같으면 방금 돌아가신 분도 입이 있는데 왜 말을 못 하느냐. 너는 누가 보는지 누가 말하는지, 네가 누구인지 모른 채로 살고 있다. 네 감정의 노예로 끌려다니고 있지.’ 하시는데, 누가 보는지 누가 ‘참나’인지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게 콱 막혔어요.”
콱 막힌 순간 스님이 하신 말은 “어떡하면 좋겠습니까?”였다. 성철 스님은 하루에 3천 배씩 10만배 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그날로 해인사 팔만대 장경각에서 하루 3천 배씩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 제 생각에는 한 번 하더라도 간절하게 하는게 절이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3천 배 채우느라 급급한 건 그저 굴신운동일 뿐이지 절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10만 배 하겠다고 어른 스님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3천 배씩 매일 했죠. 그런데 한 7만 배쯤 넘어갈 즈음에, 밤에 장경각에서 혼자 절을 하는데, 내가 부처님께 절하는 게 아니고 내 안에 있는 모든 미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감정을 다 내려놓고 내 순수 이성을 지닌 내 참마음, 내가 그렇게 알고 싶은 내 참마음 앞에다 이렇게 절을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내 감정이 내 ‘참나’한테 무릎을 꿇는 게 절이다 싶어요. 절이라는 게 내가 부처님께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자신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더라고요. 그래서 성철 큰 스님께 쫓아가서 말했죠. ‘스님, 절 새로 시작하겠습니다.’라고요.”
7만 배가 넘어간 시점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내 감정이 나 자신에게 무릎 꿇는 것이 절이라는 걸 모르고 한 절은 거짓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성철 스님은 무척 기뻐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시작해 10만 배를 끝낼 때쯤 되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이 몸뚱이는 내가 아니구나’라는 사실이었다. 그때야 “내 몸뚱이가 내가 아닌 줄을 알면 과연 ‘참나’는 누구냐. 그걸 모르고 사는 건 수행자가 아니다.” 하셨던 성철 스님의 말씀이 쏙 들어왔다. 손가락에 기름먹인 천을 두르고 생살을 태운 연비를 한 까닭이겠다.

내 생명이 따로 없다는 명징한 진리
혜국 스님은 자신의 수행 방법을 제자들에게도 권해봤으나, 요즘 사람들에게는 그 방법이 별 이익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용맹정진해서, 그렇게 발버둥 쳐서 봤던 건 내 생명이 따로 없다는 사실이에요. 내가 이렇게 대화를 하는 건 생명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 생명을 제가 만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밤새 만들어 놓은 산소를 빌려다 쓰고, 떠다니던 구름이 비가 되면 그 물을 빌려다 쓰고, 태양에서 열량을 빌려오고 대지에서 나온 음식, 우주 생명을 제가 빌려다 쓰고 있는데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명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그 생명 원천에서 보면 모두 한 생명입니다. 조금도 다를 게 없어요. 몸뚱이를 보지 말고 생명의 근원에서 보면 우리는 한 허공이에요.”
부처님이 부처라고, 마음이라고 한 것.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라고, 이슬람교에서 알라라고 한 것. 이름은 인간이 붙였지만, 스님이 보기에는 본래 한 생명이다.
“‘한번 가만히 돌아봐라. 내 생각은 쉼 없이 흘러간다. 흘러가 버려서 없는 감정을 너만 붙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봐라.’ 그것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우리는 번뇌망상이라고 합니다. 이를 깨닫는 수행 방법이 옛날에는 용맹 정진이었고, 요즘은 관찰하라고 하지요. 펄펄 끓는 생각을 가만히 가라앉혀서 이 고통이 어디서 일어나는가를 돌아보는 겁니다. 밖으로 나가는 에너지를 안으로 하여 가만히 돌아보면 물이 가라앉기 시작하는데, 가라앉으면 찌꺼기가 보여요. 찌꺼기가 보이는 그 감정에 속지말고 더 가라앉으면 달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흙탕물에도 달은 다 있다. 다만 안 보일 뿐이다. 그 달을 한번 보자. 요즘은 이런 식으로 많이 하죠.”
스님은 고통의 문제는 ‘나와 남을 둘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명쾌하게 짚는다. 나만 편안 해지려는 이기적인 생각, 남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생각, 남과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
“부처님이 처음부터 평생 45년 동안 가르친 게 나와 남이 따로 없다는 거예요. 나와 남이 있다고 하는 그 생각이 남과 비교하게 만들어요. 생명 원천에서 보면 우리는 한 생명입니다. 남을 해쳐서 내가 덕을 봤다면 왼쪽 손에 있는 걸 오른쪽 손에 옮긴 것과 다를 게 없는 어리석은 일이에요.”
그릇도, 물도, 달도 없어질 때
생식을 하다가 배가 고파 독초를 먹고, 죽었다 깨어난 사건도 스님에게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엎어진 스님을 산삼 캐러 다니던 심마니가 발견해서 메고 내려와 숟가락 자루로 입을 억지로 벌리고 녹두 물과 쌀뜨물을 먹이는 동안, 스님의 ‘영혼’은 제주도에 계신 어머니에게로, 전라도 광양의 송암 스님에게로 돌아다녔다. 죽어가는 스님의 몸을 메고 뛰어 내려오는 심마니에게 “어떻게 나하고 이 스님하고 똑같이 생겼어요?” 묻던 스님은 다시 그 몸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아까 그 스님은 어디 가셨어요?” 묻는다. 바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본 게다.
“그때 이 몸뚱이가 내가 아닌 걸 알았어요. 내 몸뚱이를 움직이는 게 그때는 영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혼도 아닙니다. 그 영혼도 그 세계도 뛰어넘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지 내가 아니에요. 절을 하면서 보았던 나의 ‘참나’, 참선하면서 가라앉히고 보면 뜨는 달, 그것도 아니에요. 저도 그건 줄 알고 한동안 스승님들이 아니라고 해도 왜 아니냐며 대들기도 했지요. 혼자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다 봤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 그릇 속에 있는 달은 한 번만 흙탕물이 다시 일어나도 안 보이는 달이에요. 있긴 있지만 안 보여요. 그 달은 지금 보살님이 묻는 달, 내가 대답하는 달이 따로따로 있어요. 그러나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인도의 갠지스강, 한국의 한강, 낙동강, 섬진강, 백마강…. 물이 백 개면 달이 백 개예요. 하지만 그 달은 달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달이 비친 그림자예요. 그 달을 보는 그 그릇이 깨어져서 물도 없어지고 달도 없어지고 그릇도 없어질 때 도를 깨쳤다고 합니다. 우주가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죠. 하늘에 있는 달을 봐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봐서는 달을 볼 수가 없다는 얘기가 바로 그 얘기입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그릇 속에 있는, 내 안에 있는 달이, 내 안에 있는 마음이 내 마음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내 마음은 내 몸속에 갇혀있지 않습니다. 우주에 가득 차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내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한 허공이 되어서 하늘에 있는 달이 됩니다.”
그것을 십우도의 ‘인우구망(人牛俱妄)’, 사람도 소도 함께 잊은 상태라 하겠다. 의외로 스님은 아직 자신은 그 단계에 가지 못했노라 고백한다.
“저는 소가 없어진 상태까지 아직 못 간 사람입니다. 소가 없어질 정도 되면 그건 완전히 부처를 말해요.”
스님은 지금도 참선 수행을 쉬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말할 때는 내 자신을 안 놓치고 말하려 애쓰고 노력하거든요. 그런데 깊은 잠 속에 들어가면 나를 잊어버려서 잠에서 뭘 했는지 모릅니다. 그건 아직도 잠이라는 에너지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에요. 깊은 잠 속에서도 나를 안 놓치고 평생 거짓 없이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게 참선이에요. 그래서 저는 다음 생에도 오로지 참선을 안 놓으려고 합니다. 부처님 법은 알수록 정말 심오해요. 자다 일어나도 부처님 고맙습니다, 소리가 절로 나오죠. 정말 부처님이 이 지구상에 와주신 게 고마워요. 다음 생, 그다음생, 몇백 번을 태어나도 저는 스님의 길 아니면 안 갈 겁니다. 한번 그 길을 간 이상 다른 길을 못 가요.”
수행 자체가 즐거움이다
스님은 어렸을 때부터 한번 본 것은 잘 기억했다고 한다. 제일 잘 외우는 게 부처님 경전이고 그다음으로는 시라고. 스님은 아주 좋아하는 시로 괴테의 「하나」를 든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막힘없이 시를 읊었다.
하나
모든 것이 제 멋대로 구르는 듯해도
사실은 하나로 얽혀 있다네
우주의 힘이 황금종을 만들어
이들을 떠안고 있구나
하늘 향기 은은히 퍼져나가니
지구가 그 품에 떠안기도다
모든 것이 향기를 좇아
조화로이 시간과 공간을 채우니라
휘몰아치는 생명의 회오리 속에
나도 파도도 다 함께 춤춘다
삶과 죽음이 있건만
영원의 바다는 쉼 없이 출렁이누나
변화하고 진동하는
저 힘이 내 생명의 원천
오늘도 나는 먼동이 트는 아침에
거룩한 생명의 옷을 짜노라
스님의 목소리가 우렁우렁한 힘으로 가득하다. “괴테는 뒤늦게 『법화경』을 보고, 눈으로 볼 때는 크고 작은 게 있지만 마음으로 보면 완전한 하나 밖에 없구나, 그래서 하나라는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부처님 법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고. 부처님 법이 좋은 게, 마음의 눈을 떠서 보면 비교니 경쟁이니 남이니 하는 게 없어진 세계가 보입니다. 괴로움이 아니라 그대로 행복이에요. 한번 보고 나면 수행 자체가 즐거움이에요.”
부처님을 떠올려서일까. 스님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차오른다. 그 웃음을 보니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된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떤 간절한 마음으로 용맹정진하셨을까?’ 했던 첫 궁금증이 떠오른다. 그런데 간절함으로 따지면 지금이 더하신 듯하다.
“인간의 감정으로 일어난 간절함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자연과 내가 함께하는 큰 즐거움이 간절함으로 변합니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에요. 공기가 내 콧속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걸 삶이라고 하고 들어왔던 공기가 다시 안 나가면 죽음이라 그러지만, 공기는 그냥 있어요. 나는 없어져도 공기, 내 생명은 그냥 있어요. 물이 그냥 있어요. 떠다니는 구름이, 태양이 그냥 있어요. 이 대지, 내 생명의 원천이 그냥 있어요. 그건 죽음이 아니죠.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삶만 좋아하고 죽음을 즐길 줄 모르니까 순간밖에 못 살고 영원을 놓치는 거예요. 그게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천강유수천강월 만리무운만리천
돌아 나오는데 스님이 우리 일행 한 명 한 명의 손을 힘 있게 잡아주신다. 부처님께 바친 손가락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양, 잡아주신 손끝에서 온기가 흘러들어온다. 그렇겠구나. 스님의 몸이 부처님의 몸이고, 스님 재가자 가리지 않고 진리에 고픈 이들을 받아들이는 이 산자락의 절 자체가 스님의 몸일 게다. 우리가 한 허공 속에서 하나라고 한다면.
■ 충주 석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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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