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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부모 상담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는 여전히 BYOD(Bring Your Own Device) 프로그램이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지참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습보다는 오히려 오락이나 소셜미디어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고 우려한다. “수업 중에도 화면을 켜 놓고 딴짓을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뉴질랜드 학부모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는 이제 생활에서 떼어낼 수 없는 도구가 되었다. 학교 숙제 제출, 온라인 자료 검색, 교사와의 소통까지 대부분의 과정이 디지털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기를 단순히 소유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학습에 활용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 즉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며 균형 있게 관리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오늘날 교육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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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지금과 크게 다를 수 있다. 인공지능(AI), 자동화, 기후 위기, 글로벌 불평등, 인구 변화 등은 교육이 반드시 대비해야 할 변화의 요소들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태블릿이나 노트북 사용 여부가 논쟁거리였다면, 이제는 AI를 어떻게 학습에 활용하고 규제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과 OECD 같은 국제 보고서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래 사회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 습득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배우고 적용하는 능력,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있다. 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2 결과에 따르면, 뉴질랜드 학생들의 성취도는 OECD 평균을 밑돌았으며, 특히 수학 영역의 하락폭이 두드러졌다. 하위 성취 학생 비율이 크게 늘었고, 읽기와 과학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뉴질랜드 학생들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은커녕 기초 문해력조차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미래 사회는 더 높은 수준의 새로운 문해력을 요구하지만, 정작 우리는 기초 문해력부터 다시 세워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교육의 본질은 문해력
뉴질랜드 교육부는 2019년 NCEA 개선안을 발표하며, 모든 학생에게 Literacy(읽기, 쓰기)와 Numeracy(수리력)를 필수 요건으로 요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023년부터는 이 두 영역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NCEA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이는 학생들의 기초 학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읽기와 쓰기는 단순한 과목이 아니라 모든 학습의 기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해력은 전통적으로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며,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그 의미는 훨씬 확장되고 있다. 인터넷과 AI 시대의 학생들은 수많은 정보 중에서 신뢰할 만한 자료를 가려내고, 다양한 데이터를 해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
ChatGPT 같은 AI 도구는 지식을 빠르게 제공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책임있게 활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가령, 학생이 AI 도움으로 에세이를 작성할 수 있지만, 그것이 사실에 근거했는지,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는지, 표절 위험은 없는지 등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학생의 몫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문해력은 단지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는 기초 학습력,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능력, AI와 협력하면서도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UNESCO가 말하는 ‘미디어•정보 문해력(MIL)’은 바로 이러한 방향을 잘 보여준다.
교육의 본질은 언제나 문해력을 키워주는데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사회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다. 2025년 오늘, 우리가 자녀에게 길러주어야 할 것은 단순한 기초 학력이 아니라 AI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문해력이다. 그것은 정보를 읽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며, 지식을 재구성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기술을 현명하게 다루는 힘이다. 이러한 역량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육의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