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순백(純白)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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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순백(純白)의 꿈

0 개 240 오소영

창문 커튼을 드디어 새 것으로 바꾸었다.


망사의 투명감도 잃고 칙칙해져서 눈 에 거슬린지가 한참 되었다. 새 것을 사다놓고도 도무지 엄두가 나지않아 손을 대지 못했다.


사실 엄두는 핑계일뿐 불안한 일은 칼같이 선을 그었기에 외면에 익숙했던 것 인지도 모른다. 그대신 기분은 늘 찜찜했다.


천장에 높이 걸린 형광등 전구도 거뜬히 갈아 끼던 자신감은 어디에 팔아 버렸는지 . . .


낙상 조심하라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듣고사는 요즘이다. 자신감 같은건 부질없는 오기일 뿐 그져 조심 또 조심이 최선이었다.


마음으로는 무엇이든지 덤벼들면 해 낼 것 같은데 트라우마 때문에 더 겁이나서 몸사림은 너무도 당연했다.


체구좋고 건강 하던 70대의 형부가 갑자기 세상을 뜨게된 원인이 바로 낙상이었다. 손바닥 크기밖에 안되는 발돋음 목침이 넘어지면서 일어난 작은 사고였다.     


무척이나 처제를 아껴주시던 특별하게 남다른 내 형부. 마지막 찾아뵐 기회조차 못 기다려주고 그렇게 서둘러 가시다니 . . .


“잘 다녀와서 우리 또 만납시다”


아쉽게 떠나보내던 송별회에서 하시던 자상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음색이 너무 멋졌던 잊을수 없는 그 목소리.


90대 노모 앞에서 죽음의 불효를 안 하려고 무지 애쓰던 모습이 처연했다고 언니가 울먹이며 전했다.

 


이제 높은 곳은 쳐다만 봐도 어지럽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젊은 사람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조심밖에 별 도리가 없다.


그 날은 무슨 맘 이었을까?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달겨들었다. 아무런 생각이나 준비없이 서두를 때 사고를 자초하는 것이거늘. . . 경거망동이었다. 


엄청난 반칙을 했는데 별탈없이 잘 끝낼수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이구 하느님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모험을 끝낸 아이처럼 대견하기도 했지만 휴우~ 안도의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래 미루던 숙제를 마친 홀가분함.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하니까 되는 것을. 무슨 일이든 다 할 것 같은 자신감이 살짝 들기도 했다.


방 안이 그 어느때보다 환해졌다. 마음도 맑같게 닦인듯 시원했다. 빨랫줄에 앉은 참새도 오늘은 귀엽게 보인다. 날개를 파닥이며 이쪽에 칭찬이라도 하는 것인지?


나는 눈부시게 하얀 레이스를 보면 제일먼저 웨딩드레스가 떠 오른다. 새 인생을 시작하는 날 순결을 상징하는 웨딩 드레스. 고귀하고 정갈해서 순수함이 느껴진다.

 

불빛처럼 쏟아져 들어온 따가운 햇살이 깊숙이 들어와 쉬고 있다. 겨울아침 싸한 냉기를 밀어내주어 반갑고 고맙다.


매일 같은 일상이 손톱만큼 화사해졌을 뿐인데 기분은 무한정으로 좋았다. 움츠려 살다가 오랜만에 성취감 때문일까?(가끔씩은 돌발적인 변화도 필요하구나) 


명상이라도 하듯 지긋이 눈을 감고 햇볕을 즐겼다. 종일을 그렇게 앉아 있어도 누구에게 간섭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아쉬운게 많지만 혼자사는 기쁨도 있는 법. 나이먹은 사람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자유가 최고의 행복이다. 나 하고싶은대로 사니까 . . .


문득 어떤 그림하나가 꿈인양 눈 앞을 어른거린다. 그림엽서 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단짝 친구인 C여사와 우리 둘이는 여행고픈 헛바람이 들면 공항으로 달려가곤 했다. 여행자들의 분위기라도 가져보려고 그 짓을 했던 것이다.


간절한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1995년, 우리는 유럽행 비행기를 탈수 있었다. 살림밖에 모르는 평범한 오십대 중반의 여성 네 명이 드디어 일탈을 했던 것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서유럽 여섯나라 패키지 여행이었다. 11박 12일간의 짧은 일정속에서 수박 겉핥기었지만 감동은 참으로 컸다.


그 중에서 내 감성을 자극해 뇌리에 깊게 박힌 한가지는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알프스 산맥 하얀 눈산을 병풍처럼 울창한 전나무숲 밑에 새까만 목조 건물들.


파아란 잔디밭에 작은 창마다 하얀 레이스 커튼이 정갈해서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인형의 집처럼 정다워 보였다. 배치가 잘된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 스위스는 문화적인 것을 떠나서 자연과 어우러진 풍경이 나를 자극해 흔들어 놓았다.


여행후 여독으로 몸은 피로했지만 내 안에 메말랐던 정서가 촉촉하게 살아났다. 인생이 시시해서 시들어가던 오십대 여인에게 새로운 삶의 꿈이 생긴 것이다.


아주작고 소박한 꿈. 비현실적 낭만? 한자락. 너무 시시해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도 괜찮았다. 꿈을 가지고 사는 삶은 희망이고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답답하게 밀폐된 회색의 아파트 숲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과천 의왕이 농촌이던 아득한 시절이었다. 안양이나 평택쯤, 딱 네 식구만 살 수 있는 아담한 집을 짓고 싶었다. 빨간기와 지붕밑에 다락방을 만들어 나만의 비밀 공간으로 하고 싶었다. 작은 창에 귀엽고 멋지게 레이스 커튼을 치리라. 그 창가에서 흙냄새 맡으며 푸른 들판을 내려다보면 좋은 글도 떠 오를 것이다. 누구의 방해없이 맘놓고 책을 읽다가 게으른 오수에 푹빠져 잠깐씩 낮잠도 자면 좋겠지. 


봄이면 연둣빛 여린 새싹들을 누구보다 먼저 맞이하고 다투어 피어나는 들꽃들에게 아는척 반가운 인사도 보내리라. 여름이면 리본찾아 예쁘게 커튼 묶어올리고 지나가는 솔바람 불러들이면 더위쯤 까짓거. 높직이 원두막같은 기분내서 참외도 깎아 먹으며 흘러간 추억을 더듬어 보리라.


낙엽 흣날리는 가을엔 추수끝난 들판에 심심한 허수아비 친구가 되어야지. 그리고 건넛마을 초가집 고목에 까치밥 붉은감을 꽃처럼 즐기리라. 소록소록 눈내리는 겨울철에는 부지런한 사람이 남긴 첫발자국을 따라 하얀길을 동무하며 걸어보련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푸근한 정서로 도시의 여인에게 유혹의 손길은 끝이 없다.   


30대 초반 나이에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여행자가 있었다. 지금처럼 여행이 자유로운 시대도 아닌 80년대에 . . .


그는 학생 때부터 사랑했던 여인과 일찌기 결혼도 했다. 고등학교 교사직을 맡고 있어 늘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늦게 사회생할을 하는터라 여행비 마련이 쉽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근무중인 아내가 생활을 책임지고 있었다. 직급이며 년봉이 본인보다 더 높아서 다행이었다. 자기 봉급은 차곡차곡 비축해서 여행비로 쓴다고 했다. 2세 계획도 당분간 뒤로 미루자고 약속했다는 N선생님.


그는 바쁜 와중에도 퇴근만 하면 상담실로 달려와 자원 봉사도 열심이었다.


마음 씀씀이도 따뜻했다. 매번 간식봉지를 들고왔다. 교대하는 누님같은 봉사자들에게 수고했다며 전했다. 소년같은 얼굴에 예쁜맘까지 보이니 착한 동생같았다.


두 살이나 연상의 여인과 일찍 결혼했다는 사실도 그 자상한 인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찌기 세계를 두루 섭렵한 여행가 ‘김 찬삼’씨의 여행기를 나는 참 좋아했다. 너무 재미있어 신문 스크랩까지 해 놓고 심심할 때마다 꺼내 읽곤 했다.


N선생님 이번 떠난 여행지는 어디일까?


세상은 넓고 나라도 많다는데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가. 잘 다녀오라는 인사로 부러움을 대신했다. 그가 돌아오면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수 있으니 참으로 기대가 되었다.   


하늘길이 빠르다고 하지만 그리도 빠르다는 사실에 놀랐다. 엊그제 떠난 것 같은데 그가 벌써 돌아왔다. 약간 그을은 얼굴이 아니라면 거짓말 같았다.    


“이번 여행은 정말 가슴 설레었습니다. 남태평양 어느 섬나라. 세상에 그토록 평화로운 나라도 있어 놀랐습니다.”

사뭇 흥분된 상태로 말하는 N선생님의 평소답잖은 모습을 보면서 신기했다.


“도시의 건물에 실내까지 들어온 새들이 자유롭게 모이를 쪼아먹어요 신기했어요 그냥 사람들과 함께 하더군요” 


너무도 평화로운 풍경에 그 누구라도 금방 친해질 것 같았다고 했다. 생김과 말은 달라도 이웃인양 다가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도시를 한발만 나서면 푸른 초원으로 가득한 초록의 나라. 그 들판을 자유로이 뛰노는 양떼들. . . .


너무 편해서 그대로 눌러앉고 싶었다. 아쉬운 발길을 돌리면서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고 했다. 그의 표정엔 아직도 미지의 꿈속을 헤매는듯 묘한 설레임이 남아있었다.


“그 나라에 가서 꼭 살아 보자고 아내와 굳은 약속까지 했습니다.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지겠죠.”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하얀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다. 문득 아득한 세월 저편에 N선생님이 생각났다. 


그가 살아보고 싶다고 그리도 흥분했던 나라가 바로 뉴질랜드가 아니던가. 내가 새롭게 뿌리내리며 제 2의 고국으로 살아가는 이 땅.  


요즘도 교민들 모임에 가게되면 사람들을 훑어보는 버릇이 여전하다. 그를 꼭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파파 할머니가 된 오여사 누님을 반백이 된 70대 노인이 알아나 볼런지? 동안의 청년같던 젊은이가 이미 아니어도 나는 단박에 알아볼 것 같은 N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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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날. 비치에 나가 산책을 할 때면 버릇처럼 북쪽 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 하늘끝 수평선. 하늘과 바다가 하나되어 온통 파란 세상에 시선이 머문다.


참 멀기도 하지. 너무 멀리 와 있어. 바닷물 밀려와 핥고 지나간 모래톱을 밟으며 혼자 내뱉는 입속 말에 갈매기가 대답한다.


끼륵끼륵 내 마음을 알았다고 위로라도 해주는 것 일까?


새떼들 한무리가 옆집 마당으로 바쁘게 낙하를 한다. 어김없이 빵부스러기 모이가 마당에 한가득. 심심한 폴 할아버지가 같이 놀자고 불러들인 친구들이다.


꿈으로 그렸던 박꽃처럼 하얀 레이스 커튼의 창가. 햇볕 쉬었다 나간 자리가 아직도 식지않고 포근하다. 책을 펴 들었지만 아무래도 부족했던 잠 이 먼저일 것 같다.


아침마다 누군가가 귓가에 속삭이는 말을 들으며 내 하루가 시작된다.


“당신은 운명이란 행운의 여신에게 고마워 해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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