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못한 이야기 ‘해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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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지못한 이야기 ‘해금강’

0 개 641 오소영

지인 j 님께!


H 여사와 우리 셋이 모이면 노후의 삶을 어디에서 살면 좋겠냐는 말을 자주 했었지요.


서울에서 나고자라 나이먹은 사람들끼리 시골살이를 동경하는 막연한 화제였습니다.


기억하시죠? 너무 먼데는 말고 충청도 어디쯤 하자고요.


H 여사는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아쉽다 했고요. J님은 이제부터 생각해 볼거라고 했어요.


나는 느닷없이 ‘해금강’ 이라고 말 했지요. 두분의 눈이 동시에 커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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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었으면 그리도 쉽게 나오던지요? 나 자신도 놀랐답니다. 연고나 친지가 있는 것도 아닌 황무지의 그 곳. 의아해 하는 두 분들보다 오히려 내가 더 황당 했어요.


오남매 일찌감치 출가시키고 남은 시간 부부함께 여행 다닌다는 우리언니 때문입니다.


다니던 중 ‘해금강’ 이 제일 좋더라고 두 분이 입에 침이 마를 정도 였으니까요. 아직 할 일 남아있어 꼼짝못하는 내겐 가슴 설레는 충격이었죠. 솔직이 언니가 많이 부러웠어요.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 ...


사실 지리에 무지했던 나는 북쪽 강원도 어디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뒤 얼마만큼 세월이 흘렀을까요? 갑작스럽게 j님이 먼저 이별을 고하셨지요. 사람의 운명이란 그렇게 한치 앞을 모르도록 정해진 것 이었을까요? 자녀들 따라 미국으로 간다고 허둥대며 공항으로 가시던 j님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품속을 파고드는 바람은 차가워도 눈부신 햇살은 그래서 더 반가운 봄이 찾아왔어요.


창 밖엔 제멋대로 자란 야생 부추꽃이 길게 목을 늘이운채 살랑거립니다. 내 게으름을 탓해 별로 예쁨받지 못하는 꽃무더기들.


갑자기 바위벽에 하늘거리던 노오란 나리꽃이 부추꽃에 겹쳐 보이는군요. 아주 먼 옛날에 보았던 꽃이 . . .


아스름한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하네요. 


어느날 문득 여행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도 정하지못한 갑작스러운 일탈이었다.


일단 서울역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목적지를 생각했다. ‘설악산’ 가는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로 들어갔다.


아뿔사! 하루에 두번 있다는 차는 이미 다 떠나고 없었다. 너무 허탈했다.


그렇다고 모처럼 만든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바쁜 걸음으로 서울역을 향했다. 10분쯤 후 발차하는 ‘여수’행 열차가 있었다. 서둘러 매표를 하고 뛰어내려가 대기하고 있는 차 에 올랐다.


들뜬 가슴을 가라앉히며 멀어지는 서울을 뒤로했다. 현실이란 속박된 굴레에서 풀려난 자유로움이 너무 시원했다.


평생의 꿈에 도전해 보는 낯선 통쾌함이랄까 그리 좋을수가 없었다.


오동도 동백꽃 자랑을 그리 많이 해 주던 옆집 영재엄마가 떠올랐다. 여수에서 친정어머니가 올라오시면 톡 쏘는 갓김치를 얻어먹곤 했다. 신천지를 만나게될 기대로 한없이 설레었다.


한 밤중에 내린 역 앞에는 불빛이 화려했다. 여기저기서 호객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왔다.


나이지긋한 한 아주머니를 따라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들은 소리는 있어서 돈 지갑은 주인에게 맡기고 잠자리에 누웠다.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파도소리가 낯선 나그네를 설레게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동도로 달렸다. 핏빛 동백꽃 어우러진 섬을 돌아보며 축축한 해풍을 가슴으로 안았다.


저 시원한 바닷바람에 한껏 몸을 맡겨보고싶었다. 눈에 보이는대로 부산행 여객선을 탔다. 오밀조밀한 남해안의 풍경을 욕심껏 머리속에 쓸어담았다.


배가 충무항에 닿을즈음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정신없이 배를 내려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들었다. 승리엄마 목소리에 잔뜩 반가움이 묻어왔다. 두말말고 빨리 자기집으로 오라는 재촉이 야단스러웠다. 그녀는 내가 정식 등단도 하기 전 내 글을 읽고 열렬한 팬이 되어준 젊은이었다. 울산에 살면서 편지도 보내오고 만나고싶다며 놀러오라고 자주 보챘다.


울산행 버스가 3시간 후에 있었다. 좀 지루할것같아 서성이는데 ‘해금강’이란 행선지를 붙인 버스가 앞을 지나갔다. 

해금강 이라니? 매표소로 다시 들어가 확인을 했다. 해금강 이 거제도에 있다니 놀랐다... . 언니가 이 먼곳까지 왔었다고?


흥분을 가라 앉히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그냥 갈것인가. 


울산 표를 물리고 해금강 행 표로 바꿨다. 승리 엄마에게 내일 가겠노라고 약속을 변경했다. 많이 미안했다.


전혀 에상치못했던 해금강 관광을 하게되다니 참으로 운이 좋았던 것이다.


거제도를 한참이나 달려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부두에서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배 안에는 이미 단체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갈매기 한쌍이 반기듯 배 주위를 선회했다. 무엇에 홀린듯한 기분으로 하늘과 닿아있는 바다를 바라봤다.


깎아 만든듯 다양한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푸른 이끼로 치장한 바위밑을 혀로 핥듯이 파도가 출렁댄다. 바위벽에 매달려 하늘거리는 나리꽃의 곡예는 해금강의 향연이었다. 머리위에 우뚝 소나무 한 그루를 이고있는 바위도 있다.


외로움을 달래는걸까? 손에 잡힐듯 뱃전에 찰랑거리는 검은 물빛은 깊이를 짐작케 했다. 그 물살을 가르고 십자로 된 바위 동굴을 잘도 빠져다니는 배, 아슬아슬한 묘기에 오싹하는 두려움과 현기증이 일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짜릿한 쾌감을 주는 특별함이라 할까? 덤덤한 일상을 털고나온 일탈의 보상같아 너무 좋았다. 


신이내린 신비의 자연, 그 아름다움을 필설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해금강 이란 이름에 너무도 걸맞는 풍경이었다.


배에서 내리니 해가 서산자락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언덕을 오르자마자 민박집 간판이 보였다.


나이드신 할머니가 대문옆 방을 안내해 주었다. 아침 식사까지 부탁을 하고 파도 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을 청했다.


눈이 떠진 아침 일찍 갯가로 달려갔다. 먼 발치에서라도 해금강 풍경을 한번 더 눈에 넣고싶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람? . .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었다. 어제의 해금강은 꿈 속에서 본 것이었을까? 해무에 덮여버린 그 곳은 온통 뿌연 포장속에 묻혀버렸다. 바다도 바위도 그 아무것도 없는 답답한 세상이었다. 시시하고 허무했다.


숙소로 돌아 오니 안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께서 안으로 들어와 함께 밥먹자고 불렀다.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어찌 내 마음을 그리도 잘 아셨을까? 마루에 오르니 내 밥상은 따로 차려져 있었다. 옆의 큰 상에는 할아버지가 계셨고 젊은 여인이 아기를 안고 앉아 있었다. 시집간 딸이 며칠전에 친정 나들이를 왔다고 인사를 시켰다. 소박한 밥상을 마주하며 콧등이 시큰해졌다. 꾸밈새는 없어도 할머니의 정성들인 손맛이 그대로 녹아있는 따뜻한 밥상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마주하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


떠날 시간이 조금 남아 마당 한켠에 수없이 늘어선 장독들을 구경했다. 젊은이가 살짝 곁으로 오며 말을 걸었다. 어머니 솜씨를 자랑하고싶은 모양이었다. 항아리 뚜껑을 열어 간장이며 고추장을 손 끝에 찍어 맛을 보여주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집장에 뭔가를 잃은 기분을 느꼈다. 올 때마다 이것들을 꼭 싸 보낸다고 그녀는 좋아했다.


마루끝에 앉아서 손주와 놀아주는 할아버지.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빈 그릇들을 챙겨들고 장독대로 온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시골집 풍경. 그 자연스러움이 왜 그리도 따뜻하고 정겹던지 . . . . 


“하룻밤만 잤어도 정들었어예, 언제인가 또 다시 꼭 오시이소”


이토록 사람을 반겨주다니, 눈물이 날만큼 감동이었다. 도시 사람들에게 없는 따스함이 자연스럽게 전해져왔다.


해금강 아름다운 바람 전해오는 길목에 조촐한 민박집 장만해 해풍과 친해지며 살고싶었다. 오가는 길손 맞으며 소박하게 늙고싶었다.

 

j 님, 거제도가 멀다고 충청도쯤 하자고 하셨던가요?


나도 j님처럼 아주아주 멀리 뉴질랜드까지 와있습니다. 바람에 실렸는지 구름에 떠밀려 왔는지도 모르는채로 . . . .


혼자남아 끝까지 서울을 지키고 있는 H 님이 우리 두 사람을 살짝 부러워 해요. 사실 H님은 예전부터 외국을 많이 동경했었거든요. 나와는 완전 운명이 바뀐거였죠.


그 때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제서야 전해 드리게 되었네요.


j 님도 이제 고령이 돼 셨을텐데 부디 건강하십시요. 그 옛날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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