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더 낮게 흐르는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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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더 낮게 흐르는 물처럼

0 개 537 템플스테이

인도네시아 방송인 압디와 그의 친구 친티아의 수원사 템플스테이


그 시작은 높은 산 깊은 샘이지만 물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지 않고 낮은 곳을 향해 흐른다.

그렇게 샘은 냇물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라는 이름의 넓이와 깊이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청년 압디의 인생 여정은

물의 행로를 닮았다.

인도네시아 유명 방송사 앵커에 올랐던 그는

돌연 한국으로 와 새롭게 방송 일을 시작했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언론인을 꿈꾼다.

그가 ‘물의 들판’이란 이름의 사찰,

수원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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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소 옆 전집, 전집 옆 찻집, 찻집 옆 주택-. 낮은 키의 가게와 주택이 정겹게 어깨동무하고 있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구도심, 주택 옆으로 한옥인가 싶게 기와를 얹은 전통양식의 키 낮은 담이 보이고 이내 주련글귀가 눈길을 멈추게 한다. ‘이 문에 들어오거든 안다는 것을 버려라. 알음알이 없는 빈 그릇이 큰 도를 이루리라. (入此門來莫存知解 無解空器大道成滿)’라는 한문이 이 곳이 수행도량임을 알려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 교구 본사 용주사의 직할사찰 수원사이다. 일주문 글귀는 준엄하지만 활짝 열린 대문이 마음 넉넉한 이의 품같은 온기를 자아내니 스르르 자력에 이끌리듯 안으로 들어섰다.


햇살은 찬란하지만 수은주가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 11월의 둘째 주 토요일 오후, 압디를 기다리는 30여 분 동안 우연히 이 문을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았다. 데이트를 하던 청춘남녀는 템플스테이 숙소를 겸한 관음전의 담벼락에 그려진 반야용선 그림을 신기한 표정으로 보다가 그것을 배경으로 신나게 기념사진을 찍다가 갔다. 친구 사이인 듯한 중년의 세 남성들은 ‘원수 갚지 말고 은혜 갚아라.’라는 한글 주련을 보며 “이 친구야, 언제 나한테 은혜 갚을 거야?”라고 농담하며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노부부, 가족들, 운동하러 가려던 길인 듯 농구공을 갖고 들어온 일군의 소년들이 들어왔다가 나갔을 무렵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경내에 들어서는 압디(Abdy Azwar Sahi)와 그의 친구 친티아(Chintya Fabyola)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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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시선은 왜 중생을 향해 있을까?


“안녕하세요? 인도네시아 사람 압디입니다. 현재 한국 방송(KBS)에서 인도네시아에 송출하는 방송의 프로그램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KBS의 한 프로그램을 보고 템플스테이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체험할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뻐요.”


“저는 친티아, 압디의 7년 된 친구입니다. 자카르타 인근 지역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지금 휴가를 맞아 여행하고 있어요.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는데 친구 압디의 소개로 템플스테이를 하게 되어 행운이에요.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 같아요.”


한국에 온지 7개월 되었다는 압디는 한국어로 말하는 것은 힘들어했지만 듣고 이해하는 능력은 좋은 편이었고 읽고 쓸 줄도 알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좋아했다는 친티아는 비록 문장을 구사할 순 없었지만 ‘친구’, ‘행운’, ‘아름답다’ 같은 한국어 단어를 이야기하며 미소 지었다. 두 사람과는 영어로만 소통할 수 있다고 미리 수원사에 양해를 구했는데 지도법사 법익 스님을 뵙고 걱정을 내려놓았다. 압디와 친티아 외에 4명의 한국인 참가자가 함께 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면서 스님께서는 한 줄은 한국어로, 한 줄은 영어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그 모습에서 따스한 배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처와 중생이 하나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간직한 일주문의 의미를 알려주시는 것을 시작으로 법익 스님은 극락대원전의 아미타부처, 만불전 석가모니부처, 관음전 관세음보살, 지장전 지장보살의 의미를 예의 그 섬세한 마음을 담아 설명해주셨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부처와 부처가 되기 위해 선업을 닦아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위대한 사람 보살의 의미가 새삼 가슴을 울렸다. 특히 지장전에서 지장보살을 응시하며 법익 스님께서 남긴 말씀의 여운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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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시선은 고통 받는 중생을 향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이 세상 모든 중생의 고통을 듣는 분이십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중생을 찾아가신다고 하지요. 우리는 종종 의인에 관한 뉴스를 봅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위해 기꺼이 행동하는 그는 바로 관세음보살의 다른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좌우에 각각 계신 문수보살님은 지혜를, 보현보살님은 복덕을 내리신다고 하고요. 지장보살님은 지옥의 중생을 다 구제하기 전까지는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신 분입니다. 이 때문에 지장보살을 대원본존(大願本尊)이라 하지요. 불교의 지향점이 이토록 큰 사랑, 자비임을 기억해주세요.”


극락대원전에서 저녁예불에 참석하고 나온 친티아의 눈가가 젖어있었다. 예불을 올리다가 우연히 본 노 비구니 스님의 모습에서 보살의 삶이란 얼마나 감동적인 것인지, 오랜 세월 수행자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한 잔의 차, 하나의 화두, 한 번의 기회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불교에서 유래한 것들이 꽤있는데 그 중 ‘다반사(茶飯事)’는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처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화두(話頭)’는 풀어야 할 어떤 삶의 문제를 일컫는다. 스님들에게 차란 즐기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방편이며 화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일념으로 참구하는 문제이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이루어진 차담시간에는 법익 스님으로부터 우리가 무심코 마셔왔던 차 한 잔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오묘한 화두의 여운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고 참선하는 바른 자세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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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수행자들에게는 수행의 방편이 아닌 것이 없지요. 그들은 차를 마시는 것과 선(禪)수행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초의 선사는 ‘차의 노래’라는 시를 여러 편 남겼는데 ‘차를 마시면 팔순 노인이 동자로 돌아온다’고 노래하기도 했어요(웃음). 자, 이제 함께 차의 색을 볼까요? 이 청정한 빛깔은 적광의 상태라고 합니다. 고요속의 밝음이지요. 이것은 또한 우리의 본래 마음이기도 합니다. 티끌 없이 고요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내 마음 자리임을 잊지 마세요.”

참가자들은 한 잔의 차를 응시하며 ‘본래의 마음자리’를 투영해보는 듯했다. 차실을 채워가는 차향처럼 스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화두는 ‘기묘한 말, 알쏭달쏭한 말’이라고 하는데 ‘말 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말’이라는 기록도 있어요. 선 지식과 수행자 사이의 문답에서 기원한 것으로, 수행자가 스승에게 의문점을 물었을 때 이를 깨치라고 제시하는 언어입니다. 남전 선사가 고양이에게 불성이 있는지 없는지 시비하는 제자들 앞에서 고양이를 들고 “고양이에게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바르게 말하면 이 고양이를 살려주겠다만 그렇지 못하면 베어 버리겠다!”고 호령한 일화는 유명하지요. 선사는 고양이 목을 베어 지옥고를 자처하면서까지 제자들의 시비(是非)와 유무(有無)의 집착을 끊어서 깨달음으로 인도했습니다. 후에 오직 조주스님만이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나가 버림으로써 시비 집착을 지적했지요. 이제,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것은 부채가 아닙니다. 이것은 무엇인가요? 템플스테이 끝나기 전까지 이 물음에 답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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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를 받아든 압디와 친티아의 표정은 신기함이 가득했다. ‘부채라고 불렀던 것이 부채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난생 처음, 화두를 들고 잠자리에 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싶었는데 어느새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낮게 흐르는 물의 지혜


압디는 취미부자이다. 여행, 쇼핑, 독서, 영화 관람, 그리고 음식을 즐긴다고 한다. 유난히 햇살이 밝았던 이튿날 아침, 친티아와 함께 공양간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아이처럼 즐거워 보였다. “전날 저녁공양 때 음식이 아주 맛있었어요. 친티아도 아주 좋았다고 하네요. 오늘 아침공양도 기대돼요. 스님들의 식사법인 발우공양도 배워보고요.”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고요한 침묵의 묵언 속에 발우를 펼치고 먹을 만큼의 음식을 담고 남김없이 먹은 후엔 숭늉과 마지막 단무지 조각으로 그릇을 말끔히 닦은 후 아귀에게 나누어줄 청수를 모으기까지 각 과정에서 공생과 회향의 가치를 배웠다.


화사한 아침햇살 속에 수원사 바로 앞으로 흐르는 수원천을 따라 걷기명상을 했다. 조용히 마음자리를 살피며 걷다가 천변 오리에게 공양 보시도 하고 화홍문을 지나 수원화성의 유명한 방화수류정을 바라보기도 했 다. 박물관에 들러 수원을 사랑했던 정조의 자취와 수원의 역사 등을 살펴보기도 하고 연무대에 마련된 국궁체험장에서 한국의 전통 활쏘기를 체험하며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날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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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원사로 돌아오는 길, 압디의 얼굴에 행복감이 어려 있었다.


“제가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전날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불교철학의 여운이 깊어요. 오, 스님께서 내려주신 화두는 아직 풀지 못했네요. 이틀 간의 수원사 템플스테이가 아주 오랫동안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뉴스 앵커와 언론인으로 활동하기 전에는 세상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부족한 사람이었어요. 언론인이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통찰력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쟁과 재난 등을 취재하며 제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책임감을 키웠어요.


언론인으로서 한국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박사과정에도 도전하면서 성장하고 싶어요. 그래서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의 발걸음에 맞춰 경쾌하게 흐르는 수원천의 소리가 그의 꿈을 응원하는 듯했다. 낮게 더 낮게 흐르며 더 넓고 깊어지는 물의 지혜를 간직한 청년 압디는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언론인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압디,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의 뜻은 신기하게도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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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수원사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 300

   031-245-9670  I  http://www.suwonsa.or.kr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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