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기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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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기쁜 날

rosenz
0 개 787 김성국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


파카 만년필로 손 편지를 써 보내고 싶고

아저씨용 삼천리자전거로 동네를 돌고 싶고

엿장수 가위소리에 병 하나 들고 나가 엿 한 가락과 바꾸고 싶고

지갑에 넣은 마지막 비상금 지폐 한 장을 사용해 보고 싶고

볼펜의 잉크가 다 떨어진 순간을 만나고 싶고

홑청 새로 입힌 이불 덮어쓰고 냄새 맡고 싶고

주번 나와서 칠판지우개 털어오라는 선생님 말씀 듣고 싶고

바지 뒤가 터져 윗도리 벗어 감싸고는 스릴을 느끼며 걷고 싶은 날


학교 나서는 길에 아궁이에서 데워진 

운동화를 신겨주고 목도리 단단하게

둘러 주는 어머니가 내 곁에 있는 날


전기도 없는 산골 집에서

해 질 녘 잠들었다가

아침에 눈 떠 비가 오면

할 일 없어 다시 돌아눕는 날


집 둘레 너도바람꽃, 구슬댕댕이, 꽝꽝나무 

재밌게 풀꽃나무 이름 알아가며

먼지 낀 내 이름은 잊히고 싶은 날


먹이 찾아 내려온 겨울 산 짐승에게

감자 고구마 던져주고 내년에는

그 녀석들 위해 더 많이 심고 싶은 날


장날에 텃밭 푸성귀 갖고 나가

후하게 쳐서 팔아 

고등어 한 손 사서

만찬을 생각하며 돌아오고 싶은 날


올 사람 없는 산골에

아주 작은 마루깔린 예배당 짓고

매 주일 교인은 아내와 나뿐

콩기름 칠한 예배당 마루 냄새 맡으며

풍금소리 듣고 싶은 날


이런 기쁨 잊고 살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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