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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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작가 <옌롄커 작가의 본상 수상 소감>

0 개 711 명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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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심사위원 여러분, 이번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중국 작가인 저에게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상소식을 전해 듣고서 제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떠오른 것은 여러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 말고 한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에 저의 손녀가 만 세 살이 되었을 때, 한가지 생활에 관한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모 기관에서 제게 그동안 중국과 해외 각지에서 받은 가장 중요한 문학상 관련 증서들의 원본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런 요구에 대해 저는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로 신바람이 나서 그 동안 국내외에서 받은 수상증서와 자료들을 서재에 한데 모은 다음, 종이로 된 원통에 넣어 우체국에 가서 우편으로 보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준비를 마치고 겨우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체국에 갈 채비를 하는 순간, 일생의 영예가 담긴 그 마법의 원통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통이 날개가 달려 제 서재 밖으로 날아갔을 리는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들이 갑자기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고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 모든 구석과 틈새를 너덧 번씩 샅샅이 뒤져보았습니다. 이어서 식구들을 전부 동원해 벽 아래와 문 뒤까지 집안 구석구석을 다 뒤졌지만 어둠과 빛이 교차하면서 먼지만 잔뜩 날릴 뿐이었습니다.


절망과 무력감이 몰려오자 저는 다시 한 번 태연자약하게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손녀에게 다가가 저의 영예가 다 들어 있는 그 마법의 원통을 보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손녀는 너무나 평온한 어투로 아주 간단하고 여유 있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버렸어.”


손녀에게 어디다 버렸는지 물었습니다. 손녀는 제 책상 위에서 그 원통을 집어 책상 밑에 있던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하더군요. 재빨리 다시 한 번 쓰레기통을 뒤져봤지만 쓰레기통은 이미 깨끗이 비워져 있었습니다.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했습니다. 좋은 마노 햇빛에 비춰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어서 식구들에게 누가 쓰레기통을 비웠는 물었습니다.



저희 집에 와서 잠시 묵고 있는 고향 손님이 자신이 청소를 하면서 비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확실히 쓰레기통 안에 희고 딱딱한 종이로 된 원통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식구들이 전부 밖으로 뛰어 나가 아파트 입구마다 설치되어 있는 대형 쓰레기통을 뒤지는 과정에서, 청소부들이 단지의 쓰레기를 전부 수거하여 단지 밖 쓰레기장으로 가져갔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쓰레기의 행로를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아들은 지역 쓰레기 보관소로 달려갔다가 황혼 전에 이미 쓰레기 처리장의 녹색 청소차가 쓰레기를 가득 싣고 베이징 외곽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창핑昌平 쓰레기처리장으로 갔다는 말만 듣고 돌아왔습니다.


쓰레기처리장 사람에게 베이징 교외의 창핑 쓰레기처리장에 가면 그 영예의 원통을 찾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바다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영예의 원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사건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서재에는 책과 컴퓨터, 책장만 남게 되었습니다. 상장과 영예증서, 중국과 세계 각국에서 받은 유리케이스 안에 담긴 영광과 자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재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게 썰렁하게 변했습니다. 추수를 끝내고 한 차례 바람의 습격을 받은 밭이나 들판에 질박한 황토 말고는 아득한 하늘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저는 매일 서재에 들어갈 때마다 가장 순수한 동심을 가진 어린 천사 같은 손녀가 저의 자랑과 허영을 전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고, 그것이 신비하고 절묘한 계산에 따른 것처럼 가장 공교로운 시간과 속도로 더 이르지도 않고 더 늦지도 않게 쓰레기처리장으로 가게 된 것이 하늘이 계획한 저의 글쓰기와 영광에 대한 진실의 유언이자 저의 글쓰기와 운명으로부터 온 진실의 계시록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가는 제 인생의 한 구간에서 신과 하늘의 암시와 징조를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하늘과 생활이 글을 쓰도록 지명한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순수한 작가라면 신령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가 절대로 화려하고 빛나는 위세를 걸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소박해야 하고 신이 내려주신 본연 그대로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침묵이 신의 언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빛과 떠들썩한 환호를 동반한 것들은 필연적으로 신이 아니라 생각이 신을 대신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신으로 가장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영예의 마술 원통을 잃어버린 순간에 이런 것들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이런 생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생명이 노년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매일 빛을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제가 처한 현실과 세계와 글쓰기에 대해 다시 사유하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만세 살이 된 어린 천사가 왜 제 서재에 들어와 일단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듯이 저의 모든 영예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는지, 그리고 시간의 전개에 있어서도 그렇게 공교롭게 모든 마디가 들어맞아 그 영예의 원통을 멀리 교외에 위치한 쓰레기처리까지 보내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쓰기와 명예는 이렇게 양립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물과 불처럼 서로를 용납하기 어려운 일일까요? 왜 소년시절의 저에게는 글쓰기의 목적이 배불리 먹고 농촌을 벗어나는 것이었고, 청년이 되어서는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남들보다 앞서 가는 것이었으며, 그 뒤로 이러한 목적이 어느 정도 실현된 다음에는 또 왜 글쓰기의 문제에 있어서 진실하고 정확한 이유와 당위성을 얘기하지 못하면서도 매일, 매달 매년 한 번도 쉬지 않고 독서와 글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일까요?


게다가 글쓰기를 시작하고 수십 년이 지나면서 생활 속에 어떤 뜻밖의 일과 번뇌가 발생하든지 간에, 그 번뇌와 뜻밖의 사건들, 그리고 스스로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경력과 고민들이 일단 서재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순간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고, 자신을 또 다른 자유로운 상상 속으로, 제가 진정한 제가 되는 세계 속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자신의 후반생에 글을 쓰면서도 왜 쓰는지 몰라 막막한 것에 대해, 왜 쓰는지 모르면서도 매일 쉬지 않고 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큰 위안을 얻습니다. 저는 아마도 중국 작가들 가운데 왜 글을 쓰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가장 무지몽매하면서 또 가장 고집스럽게 답답한 한 사람일 것입니다. 맨 처음으로 글을 쓰는 목적이 버스를 타면 A정거장에서 B정거장으로 가는 것처럼 명확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글을 쓰는 목적이 B정거장에서 C정거장을 바라보는 것처럼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정거장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제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C정거장에서 배회하고 방황하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방황하면서 찾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쉬지 않고 찾는 과정에서 동시에 남들이 저를 찾았습니다.


다른 사물이 저를 찾았습니다. 너무 많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뜻밖의 일들이 저를 찾고 저를 붙잡았습니다. 저의 생활 속에서는 너무나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들이 몸을 휘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넝쿨처럼 만연하여 저를 휘감고 있고, 그 모든 사건과 모든 이야기의 깊은 곳에 의외성과 운명의 우연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서재라는 공간 안에서, 그리고 서재 밖에서 제 인생을 변화시키고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일들이 전부 저의 계획과 안배를 초월합니다. 전부 저의 뜻밖의 슬픔이요 고통이자 즐거움입니다.


저는 일단 서재를 나서면 제가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서재에서도 이야기의 운명을 장악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특히 왜 쉬지 않고 글을 쓰면서도 바람에 흔들리듯이 운명의 안배와 계획에 따르게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운명은 쉬지 않고 거세게 흘러가는 강물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 작은 배에 지나지 않지요. 현실의 이야기는 운명의 정거장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비바람과 거리풍경, 사람들의 행렬과 천둥번개, 비가 지나가고 맑게 갠 하늘의 빛과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야기 속의 작은 부분이나 마디에 불과하지요.


사실 저는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거대한 현실 이야기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 단락이나 디테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서재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것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서재안이든 밖이든 간에 제가 모르는 누구 혹은 현실에 의해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세상과 사람들, 사물과 저 자신, 그리고 서재와 글쓰기 이야기와 작가를 구분해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써내는 소설이 좋은 소설인지 나쁜 소설인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제가 쓴 소설이 출판될 수 있는지 없는지, 출판된 다음에는 독자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의 글쓰기가 현실과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모든 곤경과 서로 얽히고 섞여 있다는 것은 잘 압니다.


고통과 상처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아름다움과 빛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여름이 되면 방 안에서 머리 없는 파리가 반짝거리는 유리를 향해 돌진하듯 날아가는 것을 종종 봅니다. 겨울이 되면 오래된 집에서 꼬리가 없거나 몸의 일부가 잘린 도마뱀이 어디론가 열심히 기어가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자신이 고향집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따라 벽 위를 황급히 달려가는 것이겠지요.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는 글쓰기는 실질적으로 유리를 빛으로 생각하고 돌진하는 머리 없는 파리이자 낡은 집 벽을 고향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하는 꼬리 잘린 도마뱀입니다. 현실과 글쓰기에 대한 저의 관계는 아마도 이처럼 머리 없는 파리나 꼬리 잘린 도마뱀의 맹목적인 비행이나 다급한 회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지성의 부족이나 황당함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생명의 아름다움과 빛으로 가득한 행위이지요.



고대 중국의 지식인인 장자莊子가 어느 날 한 논리학자와 함께 강변을 걷고 있었습니다. 장자가 강물 속의 작은 물고기들을 가리키면서 논리학자에게 말했지요.


“저 물고기들을 좀 보세요. 저렇게 자유자재로 헤엄을 치니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논리학자가 말했습니다.


“선생은 물고기도 아니면서 물고기들이 즐거운지 안 즐거운지 어떻게 아시나요?”


장자가 말했습니다.


“선생은 또 제가 아니면서 제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 아시나요”


저는 자신의 즐거움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저는 운명 속의 모든 것에 대한 감격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제 일생의 운명에서 제가 완전히 운명을 창조하지 못하고 백 퍼센트 운명이 오늘의 저를 창조했다고 한다면, 신도가 신이나 하나님에게 감격해야 하는 것처럼 저도 운명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저는 여러 차례 원망을 토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발자크는 자신의 지팡이에 ‘나는 모든 장애를 깨부쉈다’라고 새겼다. 카프카는 자신의 지팡이에 ‘모든 장애가 나를 깨부수고 있다.’라고 새겼다. 하지만 나는 뭐라고 새길 지팡이조차 없는 사람이다.”


지금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말을 할 리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저는 이미 운명을 받아들이고 운명에 감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제 글쓰기 인생의 길에서 운명의 모든 계획과 안배를 받아들이는 것은 혼자서 황량한 들판 위를 걸으면서 필연적으로 모든 비바람과 햇빛을 맞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더 이상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무언가에 대해 차가운 눈빛을 던지거나 야유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60세 생일에 저는 갑지기 혜안이 열리면서 죽음이 저를 향해 손짓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와 죽음은 잠시 차가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또 따스하고 우호적인 눈빛으로 서로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고는 악수를 나누면서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죽음, 잘 지냈지!”


죽음이 말했습니다.


“살아 있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이 있는 건가?”


“가장 쓰고 싶은 소설을 아직 쓰지 못했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장 쓰고 싶어 하는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네.”


죽음이 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조용히 서재로 돌아가서 네가 가장 쓰고 싶은 소설이 무엇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잘 생각해봐. 다 쓰고 나면 내가 다시 널 부르러 올게.”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약속이 생겼습니다.


그때 저를 등지고 돌아서 가는 죽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문득 정수리에 제호를 붓는 것처럼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 순간에 저의 손녀가 왜 그때 마침 공교롭게도 제 서재에 들어와 가장 순결한 천사의 손으로 글쓰기로부터 온 저의 모든 영예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신이 계획한 것처럼 톱니바퀴가 물리듯이 그 원통이 베이징 교외의 쓰레기처리장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 현실의 우연은 저의 그 영예가 쓰레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생명이 이미 인생의 막바지 구간에 들어서 있다고 이제는 서재와 글쓰기가 깨끗하고 순결한 것이 되어 책 읽기와 강의, 심미와 창조의 산실이 될 뿐만 아니라 가장 개인적인 의미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독특한 인식인 사랑과 빛을 발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도서관이라면 모든 작가의 서재는 설사 아주 좁고 누추하여 책상 하나와 책 몇 권밖에 갖춰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천국의 다락방이나 사랑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서관인 천국에서 크든 작든, 누추하든 화려하든 간에 모든 다락방과 사랑채는 영예의 증서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서재는 천국의 다락방이나 사랑채가 될 수 없겠지요. 우리는 범인이고 범속한 세상의 흙먼지 같은 존재일 테니까요.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며 영예와 격려, 조용한 사유와 교류를 필요로 하니까요. 제 서재에 있던 모든 영예가 쓰레기처리장으로 가버린 뒤로 저는 일찍이 제게 영예를 주었던 두 군데 수상심사위원회에 연락하여 증서를 재발급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기관에서 요구한 그 중요한 일을 처리할 수 있었지요. 그때부터 저는 증서들을 벽에 걸거나 제 서재의 책장 앞쪽에 진열하지 않고 책장 뒤쪽 깊숙한 곳에 보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탈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이 세계의 모든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주 타협하고 주저하면서 연약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사람들의 격려와 고무를 필요로 하기도 하지요. 때문에 저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서울의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선정위원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독특한 국제문학상은 한국의 위대한 작가 이호철 선생님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더군요. ‘이호철’이라는 세 글자는 문학인 동시에 문학을 초월합니다. 그 분은 사람과 자유, 평화의 상징이자 한 작가를 인간과 인류와의 관계로 맺어주는 정신의 유대입니다.


과거에 이 상을 수상했던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저는 가장 부끄러운 수상자일 것입니다. 인생 만년의 글쓰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것과 관련하여 저는 아무런 논쟁이나 반박, 저항이 없이 운명의 계획과 조치, 순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게는 젊은 시절의 분투와 목표가 없습니다. 생명의 마지막 구간에서의 글쓰기 속에 침묵과 무언, 미소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 저는 철저하게 서재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호철 선생님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산굴을 지키며 쉬지 않고 글을 쓰셨던 것처럼 자신을 너무나 부조리하고 혼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퇴출시켜 서재와 펜, 원고지를 지키겠습니다. 조용함과 적막을 지키면서 세상과 거리를 두겠습니다. 사람들과의 왕래를 줄이고 논쟁하거나 강함을 다투지 않겠습니다.


제가 다투고 싸워야 하는 유일한 사람은 저 자신이고 저 자신의 펜과 원고지일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점점 약해지는 인생의 격정 속에서 어떤 현실적 목적을 위해 도대체 뭔지, 어떤 책인지, 왜 쓰는지 모를 몇 권의 책, 혹은 한 권이나 반 권의 책을 쓰기보다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인생의 만년에 조용히 천국의 사랑채 같은 서재에 들어앉아 고요와 적막 속에서 편안한 미소를 지으면서 어둠 속에서 여명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죽음의 도래를 기다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6월 30일 베이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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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 산하한 번에 다 필 수도 없겠지만한 번에 다 붉을 수도 없겠지.피고 지는 것이 어느 날 문득득음의 경지에 이른물방울 속의 먼지처럼보이다가도 안 보이지.한… 더보기

동종업계 이직제한

댓글 0 | 조회 1,198 | 2024.04.23
고용재판의 절대 다수는 피고용인이 고용주를 고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씩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고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종업계의 이직을 제한하는 동종업계 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