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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

2 4,564 왕하지


아내에게 입을 좀 벌려보라고 하고 입안을 들여다보니 모든 게 멀쩡하였다. 목젖이 붓지도 않고 입천장도 멀쩡하고 혓바닥도 매끈거렸다.
 
지난 일요일은 아내가 리더라고 하여 성당에 일찍 갔는데 아내는 성혈 분배자들을 정하고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보통 때는 아내가 성혈을 분배하지만 리더인 날은 신부님과 함께 성체를 분배 해 준다.

아내는 성체를 분배할 때마다 ‘더 바디 오브 크라이스트’라고 말을 하는데 미사가 끝난 후에도 교유들과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를 하였다.
 
“여보 한국 아가씨는 안 왔어?”
 
“못 봤는데...”

왕가레이로 취직을 한 한인아가씨가 지난일요일 성당에 처음 나왔었다. 아내가 밑반찬이라도 주려고 가져갔는데 성당에 안 온 것이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한인아가씨에게 전화를 하였다. 점심때인데 밥줄 생각은 안하고 아내는 전화통 앞에서 계속 깔깔거렸다. 아마 1시간은 넘게 통화한 것 같다. 그것 참 이상하다. 딱 한번 성당에서 만났을 뿐인데 저렇게 할 말이 많단 말인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오후에는 중국아줌마 취가 채소를 준다고 전화를 했는데 한 시간 반 이상이나 통화를 하고 있었다. 순전 영어로, 아니, 영어로도 그렇게 할 말이 많단 말인가,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되었다.
 
그렇게 떠들어 대면서도 물 한모금 안 마시는 것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원래 대화란 50대 50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내는 80% 이상 말하고 듣는 것은 20% 이하 밖에 안 된다. 게다가 듣는 사람이 얼마나 곤혹스러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 그것 또한 대단할 따름이다.

저녁을 먹을 때 아내가 아이들과 떠들어 대는데 아이들이 한마디 하면 아내는 몇 마디씩 하였다. 나는 밥이 언칠 것만 같아 좀 주위를 주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대화란 말이야, 상대편이 말하면 ‘아~ 그래,’ 하고 그냥 넘어갈 때도 있어야 되는데 말 끝마다 꼭 토를 달고 비유법을 쓰고 이것저것 들춰내고... 그러다보면 한도 끝도 없이 시장바닥이 되는 거야, 그러니 제발 누가 말하면 ‘그래~’라고 말하고 그만 입을 다물라고,”
 
아내가 시장바닥이면 어떠냐고 계속 떠들어 대었다. 나는 혈압이 더 오르기 전에 밥숟갈을 빨리 놓는 수 밖에 없었다.
 
밖에서 담배 한대 피우고 들어와 보니 아내가 또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막내처남이 또 주식을 해 수 천만 원 빚져서 장인어른에게 이번에는 절대 돈 해 주지 말라고 아내가 강력히 말했건만 기어이 장인어른이 돈을 해줬다는 것이다. 처형, 처제들과 통화를 하고 나니 족히 두 시간은 넘게 떠들은 것 같다. 아내의 입이 너무 불쌍해 물 한 컵을 떠다 주었더니 안 마신다고 손사래를 친다. 야, 입이 완전 철판이야, 나이가 들면 기운이 다 입으로 모인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정도 일 줄이야...
 
“제발 입 좀 쉬면서 말해,”

“말하는데 어떻게 입을 쉬어~”

오늘 아내의 총 대화 양을 따져보니 얼핏 계산해도 내가 1년 치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말이 적은데다가 왕가레이 시골에 살고 있으니 별로 할 말도 없고 말할 기운도 없다. 나는 대학에서 이론 강의 시간이 제일 곤혹스러웠다. 말도 어눌한 대다가 금방 입이 타오르고 침이 사방으로 튀기고 물을 계속 마셔야 하고 손은 자꾸 담배 쪽으로 가고... 쉬는 시간이면 복도 끝에서 담배를 두 가피씩이나 피워댔다. 대화를 할 때는 줄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노상대화를 좋아했었다.
 
“당신 말이야 간호사 공부하고 싶다했는데 선생님 되는 공부하는 게 어때? 그래서 온종일 떠들어 대는 거야, 과목도 말 많이 하는 과목을 맡아서 아주 야간수업도 하고 주말수업도 하고, 진저리나도록 떠들어 대는 거야.”

그렇게 진저리나도록 떠들어대다 보면 지치고 입이 부르터 때론 조용해 질수도 있겠지,

강철처럼 단단하고 긴 입을 꾹 다물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키위 새를 본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키위 새를 그렸는데 밤송이처럼 생겨서 멋들어지게 그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키위그림이 금방 팔렸다. 키위 새가 조용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지는 몰라도..
트루
어제가 어버이 날이라 오랜만에 성남사시는 친정엄마하고 몇시간을 통화했습니다.처음 30분은 이런저런 애들 크는 얘기로 즐겁다가 점점 동네 원두막에서 술친구들하고 몇시간째 얼큰하게 걸치시는 아버지의 뒷담화로 1시간을 넘게 얘기했습니다.아버지 술얘기가 도마위에 오를땐 무조건 엄마편을 들어줘야 합니다.그렇게 해드려야'오랜만에 속이 다풀린다'하며 끊으시기에 어버이날임도 잠깐잊고 마구마구 맞장구 쳐드렸습니다.
전화를 끊고나니..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에게 조금 민구스러워 아버지에게도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엔 아빠가 최고라는 둥 역쉬 아빠만한 사람은 없다는 둥 썰을 풀고 나니 아빠가 한마디 쓱 하십니다. "우리끼리만 이러니까 엄마한테 미안 딸꾹~ 하잖냐~딸꾹~ 엄마랑은 통화했냐?"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햅죠."아빠! 뭘 엄마 눈치를 봐요? 엄마랑은 통화할 것도 없어! 그냥 아빠가 최고라구~"
난 정말 박쥐같은 지지배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남편도 왕하지님처럼 생각했을 것같습니다.
우리마누라 어찌그리 말이 많을까..쯧쯧
왕하지
이렇게 긴 댓글은 또 처음이로군요. ㅎㅎㅎ,
동네 원두막에서 친구들과 몇 시간째 술을 드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너무 그립습니다. 나는 맨날 혼자서 조용히 잠깐동안 마시는데... ㅠㅠ,
그런데도 우리 아내는 술 마신다고 잔소리가 무척 많답니다.
어버이 날 어머니 속도 다 풀어드리고, 또 최고의 아버지로 모셨으니 정말 효도하셨습니다. 부모님껜 자주 전화 드려야지요. 따로따로, ㅎㅎㅎ,
예전에 용돈도 따로따로 많이 받으셨겠어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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